[암(癌)에게서 배우다] <96회> 세포 성형
지난 8월 말 NCI(National Cancer Institute, 미국 국립암연구소)는 2022년도 사업계획 및 예산안을 발표했다. 도입 메시지에서 소장은 미래를 위한 지속적인 투자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가운데서도 기관의 최우선 순위는 암 연구에 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내년은 국가암법(National Cancer Act, 1971) 제정 50주년이 되는 해인데, 법 제정 이후 그간 기초과학분야에 지속적으로 투자했기 때문에 오늘날 암 진료에 있어서도 진보를 이룰 수 있었다며, 앞으로 새롭게 투자해야 할 암 연구 아이템으로 ‘약물 저항성(Drug Resistance)’, ‘분자 진단(Molecular Diagnostics)’, ‘비만과 암(Obesity and Cancer)’, ‘암생존자(Cancer Survivorship)’ 등 4개 분야를 제시했다.
‘암에 걸렸다. 적절한 항암제를 써서 효과를 보았고 그로 인해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몇 달 만에 암이 재발하였는데 이젠 더 이상 약이 효과가 없다‘ 암 치료 과정 중의 가슴 아픈 이야기이자 흔한 이야기 중 하나다. 암세포의 약물 저항성이 문제인 것인데, 이는 암 치료에 있어 가장 큰 도전과제 중 하나로 남아있다.
암세포가 약물 저항성을 갖게 되는 원인 중 하나로 암세포의 성형(Plasticity) 능력을 꼽는다. 2006년 이래로 과학자들은 항암제(EGFR inhibitors) 치료를 시행한 암환자에게서 비소세포폐암이 소세포폐암으로 변화함으로써 항암제를 무력화시키는 현상을 발견하고, 암 세포의 이러한 성형능력으로 인한 약물 저항성 획득 사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세포 성형(Cell plasticity)이란 세포가 자신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 기능(표현형)까지 바꿀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변화하고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통해 암 세포는 암 치료제에 저항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호르몬 치료를 받는 전립선암 환자와 피부암(Melanoma) 및 유방암 환자에게서도 이런 현상이 보고되고 있다.
각 암 종마다 고유의 세포 성형 패턴을 보이기도 하지만, NCI가 지원한 한 연구에서는 여러 암 종을 아우르는 공통의 생물학적 기전을 밝히기도 했다. 비소세포폐암과 전립선암 세포의 성형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효소(EZH2)를 발견한 것이다. 이는 암이 시작된 몸의 부위별로가 아닌 특정 유전자 이상에 따라 항암제를 처방하는 정밀 종양학(Precision Oncology)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라 할 수 있다.1)
인체 몸 안에 있는 암세포가 얄궂게도 항암제를 피하기 위해 이 성형술을 이용한다면, 성형하는 김에 암세포를 아예 정상 세포로 만들어 버릴 순 없을까? 국내 연구진이 이와 같은 발상을 하고 초기 원천기술 개발에 성공했다니 참 반가운 소식이다.2)
치아를 가지런히 하고 튀어나온 입을 들어가게 하는 치아교정. 한 겹의 눈꺼풀을 두 겹으로 만드는 쌍꺼풀 수술 등 외모를 성형하는 수술이 보편화된 시대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예전 학창 시절에 배운 것이 생각난다고 섣불리 젊은 사람에게 말했다가는 ‘옛날 사람’인 것만 인증하고 면박당하기 일쑤다. 몸을 세워 도를 행하여서 후세에 이름을 드날려 부모님을 드러내드리는 것이 효도의 마침3)이라는 그 다음 구절은 속으로만 되뇌일 수밖에 없다. 아무튼 옛날엔 성형기술이 미흡한 탓도 있겠지만, 외모 성형보단 자아실현을 더 권장했다.
자아 실현을 이루기 위해서는 젊은 날 지루하고 고통스런 준비의 과정을 감내해야만 한다. 세포 성형도 그 모양과 기능을 함께 바꾸는 것이듯, 외모 성형도 거기에서 그치지 말고 그 긍정적 측면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기능적 행동의 변화가 중요하다.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무작정 즐기면 된다고, 즐기는 사람을 이길 자 없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거짓말이라는 것이다.4) 인생의 중요한 전환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그간 있어왔던 자잘한 변화와는 마치 반대 방향이라도 되는 듯 대단한 결심과 실행력이 필요하다.
암환자를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는 암세포 간 성형이 아닌, 암세포 자체의 정상세포로의 대변화가 필요하다. 인생의 의미 있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특히 배움의 시기에 있는 방황하는 학생에게는 일상의 패턴을 뒤흔드는 대전환의 결단이 시급하다.
‘딸아, 많이 사랑한다.’
* 참고자료
1) https://www.cancer.gov/research/annual-plan/directors-message 및
https://www.cancer.gov/research/annual-plan/scientific-topics/drug-resistance#targeting-cancer-cell-plasticity
2) https://news.joins.com/article/23678109
3) https://namu.wiki/w/%EC%8B%A0%EC%B2%B4%EB%B0%9C%EB%B6%80%20%EC%88%98%EC%A7%80%EB%B6%80%EB%AA%A8
4) https://www.youtube.com/watch?v=V5qMyIFnVh8
암(癌)에게서 배우다 바이오휴머니스트(필명)
과학자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어설픈 휴머니스트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 바이오분야 전공 대학졸업후, 제약사를 거쳐, 현재는 십수년째 암연구소 행정직원으로 근무중. 평소 보고 들은 암연구나 암환자 이야기로...
의학약학 바이오휴머니스트 (2020-09-18)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218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