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병 뉴런의 생사, 이런 기제로 결정된다
ApoE 단백질·MHC -1 복합체, '폐기 대상' 분자 꼬리표 생성
새로운 '치료 표적' 기대…저널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논문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환자는 뇌의 뉴런(신경세포)이 서서히 퇴행하다 사멸해 점차 기억과 인지 능력을 상실한다.
그러나 알츠하이머병이 생겼다고 해서 모든 뉴런이 이런 과정을 똑같이 따라가는 건 아니다.
뇌의 일부 영역에 존재하는 특정 유형의 뉴런이 이런 퇴행에 더 취약하고, 퇴행하는 뉴런 중에서도 결국 사멸하는 게 있는가 하면 살아남는 것도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를 설명하는 분자 메커니즘을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의 글래드스턴 연구소 과학자들이 발견했다.
이 기제가 작동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건 ApoE(아포지질단백 E)와 MHC -1(주조직 적합성 복합체 클래스 1)이었다.
ApoE는 뉴런 내에서 면역 반응 물질을 제어했고, ApoE 수위가 높은 뉴런이 퇴행에 더 민감히 반응했다.
연구팀은 6일(현지 시각) 저널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UCSF의 신경학 교수이자 논문의 수석저자인 후앙야둥(Yadong Huang) 박사는 "아포지질단백과 뉴런 사멸의 연관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건 처음"이라면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에 새로운 길이 열릴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ApoE는 오래전부터 이 분야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ApoE는 2·3·4 세 가지 유형이 있는데 이 중 4형(ApoE 4) 생성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상대적으로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단핵 RNA 시퀀싱(single-nucleus RNA sequencing) 기술로 건강한 생쥐와 알츠하이머 생쥐의 뇌 조직을 비교 분석했다.
이는 하나의 세포 내에서 각기 다른 유전자의 발현 도와 RNA 전사 비율을 알아내는 기술이다.
연구팀은 또 중증도가 서로 다른 알츠하이머병 환자, 경증 인지 장애 환자 등의 뇌 조직 관련 데이터를 건강한 대조군과 비교했다.
ApoE 유전자의 발현 도는 개별 뉴런에 따라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차이는 같은 아류형(subtype)에 속한 뉴런들 사이에서도 비슷하게 발견됐다.
또 ApoE 유전자의 발현 도는 면역 반응 유전자의 발현과 깊은 상관성을 보였다.
연구팀은 특히 ApoE 유전자가 높은 수위로 발현하면 MHC -1 유전자가 켜진다는 것에 주목했다.
MHC -1은 뇌 발달 과정에서 과다한 시냅스(뉴런간 연접부) 제거에 관여하는 분자 경로의 구성 요소 중 하나다.
ApoE가 뉴런 내 MHC -1 발현을 조절함으로써, 면역계가 어느 뉴런을 식별해 제거할지 결정하는 걸 도울 거라는 추론이 가능했다.
ApoE와 MHC-1가 높은 수위로 발현하는 뉴런의 비율은, 신경 퇴행과 알츠하이머병의 진행 정도에 따라 등락했다.
ApoE가 유도하는 MHC -1의 발현과 뒤엉킨 타우 단백질 집합체 사이의 인과관계도 드러났다.
이렇게 변형된 타우 단백질의 뇌 조직 침적은 알츠하이머병의 특징이자 신경 퇴행의 유력한 예측 지표다.
그럼 이런 발견을 종합한 결론은 무엇일까?
후앙 박사는 "정상 ApoE는 일부 손상 뉴런의 MHC -1 유전자를 활성화해 '나를 집어삼켜'라는 신호를 생성하게 한다"라면서 "그런 다음 면역 세포가 파괴해야 할 세포에 이 신호로 표시를 남긴다"라고 말했다.
알츠하이머병은 이렇게 손상 뉴런을 정상적으로 제거하는 과정이 과잉 활성화해, 다수 뉴런의 진행성 결실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번 연구에선 또 노화한 뇌가 특정 뉴런의 ApoE 양을 정상 수위 위로 밀어 올리는 스트레스 요인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게 재차 확인됐다.
알츠하이머병의 위험 요인으로 꼽히는 APOE 4가 발현하는 뉴런은 특히 이런 스트레스 요인에 취약하다고 한다.
핵심은 뉴런에서 ApoE가 과도히 늘어나면 MHC -1이 강하게 발현하면서 해당 뉴런에 '파괴 대상' 표시가 붙는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병 뇌에 존재하는 같은 유형의 뉴런이라 해도 선택적으로 신경 퇴행이 이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ApoE 수위에 따라 파괴 딱지를 붙이는 MHC -1의 발현 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후앙 교수는 "알츠하이머병과 다른 신경퇴행질환의 (뉴런) 파괴 과정을 교란하는 새로운 치료 표적이 후속 연구에서 드러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서 어떤 뉴런은 살리고, 어떤 뉴런은 폐기할지를 결정하는 ApoE와 MHC-1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게 연구팀의 다음 목표다.
[연합뉴스]
매일경제 (mk.co.kr) 입력 : 2021.05.07 17:3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