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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피린 장기 복용, 약일까 독일까

산포로 2010. 12. 14. 11:46

아스피린 장기 복용, 약일까 독일까

 

 

암 예방 효과 있다 vs 위장출혈 등 부작용 위험
 
지난 가을 전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키며 희망과 감동의 메시지를 전해준 칠레의 매몰 광부 사건 때 아스피린이 잠깐 화제에 오른 적이 있었다. 지하 700미터 속에 갇힌 광부들의 생존 소식이 처음 전해진 직후 그들에게 가장 먼저 전달된 것은 우유와 비스킷 등의 식량 및 젤 형태의 영양제, 그리고 아스피린이었기 때문이다.

 

지하에 매몰된 광부들에게 아스피린이 가장 먼저 제공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매몰된 지하 700미터 지점은 습도가 매우 높고 고온이 지속되는 열악한 환경이다. 이런 환경에 있다가 지상으로 구조되어 올라올 경우 갑작스런 기압의 변화 때문에 혈전이 생성돼 심장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 아스피린이 제일 먼저 투입된 것이다.

 

1899년 류머티즘 치료제로 탄생한 아스피린은 유행성 독감 치료약으로 명성을 날리면서 안전하며 복용이 간편한 해열진통제로서 단번에 전 세계의 가정상비약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아스피린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처럼 놀라운 진통 효과를 발휘하는지 그 정확한 작용기전이 밝혀진 것은 1971년에 이르러서였다.
 
인체에 상처가 생기면 손상된 세포는 통증을 일으키는 ‘프로스타글란린’이라는 화학물질을 분비한다. 아스피린은 이 물질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 ‘사이클로옥시게나제-2(COX-2)’라는 효소의 작용을 차단하는 작용을 한다. 그로 인해 염증 반응이 약해지면서 통증이 줄어들게 되는 것.

 

그런데 아스피린은 COX-2뿐만 아니라 이와 구조가 비슷한 COX-1의 작용도 방해한다. COX-1은 위점막 보호 물질과 혈전 형성물질을 합성하고 혈액 응고를 추진하는 트롬복산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 효소이다.

 

때문에 이 효소가 작용하지 않으면 혈액 응고가 되지 않으며, 혈전이 잘 생성되지 않게 된다. 이 같은 작용 기전이 알려진 후 아스피린은 관상동맥질환 같은 심혈관질환의 예방 및 치료제로도 부상하게 됐다.

 

심혈관질환 예방의 최선책

 

심혈관질환 예방 약제로 20년 동안 사용되고 있는 아스피린은 미국심장학회와 미국당뇨학회에서 가족력 및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등 심혈관질환 위험인자를 보유한 50세 이상 남성 또는 60세 이상 여성에게 복용이 권고되고 있다. 또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심혈관 질환 예방을 위한 필수 약물 리스트에 아스피린을 포함시키고 있다.

 

대부분의 심장질환 전문의들은 현재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심혈관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스피린 복용이라고 입을 모은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해열 및 진통제로 사용되는 아스피린보다는 심혈관질환 치료용인 저용량 아스피린의 판매가 무려 10배 이상 많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의 피터 로스웰 박사팀은 일본 연구팀과 공동으로 연구를 수행한 결과, 매일 저용량 아스피린을 장기 복용할 시 여러 종류의 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약 25% 정도 줄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특히 대장암 환자 중에서 아스피린을 꾸준히 복용한 사람의 경우 사망 가능성이 35% 낮았으며, 20년 동안 아스피린을 복용한 사람의 경우 직장암 발병 위험성이 24% 정도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아스피린의 암 예방 효능에 관한 연구는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 10월 미국 연구팀은 아스피린을 장기 복용할 경우 방사선 치료 및 수술을 받은 전립선암 환자들의 사망 위험률이 절반 이상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암세포가 혈관 속으로 들어가 전이가 일어날 때는 혈액 응고를 담당하는 혈소판에 달라붙어 면역세포로부터 보호를 받는데, 아스피린과 같은 항응고제를 복용할 경우 이런 과정이 차단되기 때문인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또 아스피린의 장기 복용이 유방암 및 난소암의 발병률을 줄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유방암이나 난소암은 여성 호르몬에 많이 노출될수록 걸릴 위험이 커지는 병인데, 아스피린이 여성 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

 

아스피린이 위암 세포의 자살을 유도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지난 2007년 영국 에든버러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 아스피린과 유사한 계열의 비스테로이드 소염진통제가 위암 세포의 자연적인 사멸을 유도했다는 것.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아스피린을 장기 복용하면 위장관 출혈 등 위장장애에 걸릴 위험이 오히려 높아진다. 아스피린을 평균 6.4년간 정기적으로 복용한 남성들의 경우 1천명당 3건, 여성들은 1천명당 2.5건 꼴로 위장관계 내출혈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다.

 

또 소화불량 및 소화성궤양, 위염 등도 아스피린이 일으키는 흔한 부작용에 속한다. 따라서 이를 예방하려면 아스피린의 장기 복용시 위장보호제도 함께 복용해야 한다.

 

아스피린의 아이러니
 
아스피린의 이런 아이러니는 다른 증상에서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아스피린은 임신이 직접적인 원인이 돼 발생하는 질환인 자간전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하지만 아스피린은 임신 후반기에 지연임신을 유발할 수 있는 등 임산부에게 매우 좋지 않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2004년 네이처지에 게재된 미국 메릴랜드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임신한 쥐에게 아스피린을 먹였더니 새로 태어난 수컷 새끼의 경우 정상 쥐에 비해 성적 충동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

 

또한 암의 예방 효과에 대한 연구결과도 그렇지 않다는 연구가 상반되고 있으므로 암 예방에 대한 아스피린의 효과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한편 아스피린의 장기 복용이 심혈관질환 예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부작용인 위궤양과 위장출혈 위험만 높일 뿐이라는 연구결과도 최근에 나왔다. 영국 에든버러대 연구팀이 발목-상완 혈압지수가 낮아 말초동맥질환 위험이 있지만 증상은 나타나지 않은 3천여 명을 대상으로 8년간 관찰한 결과, 아스피린을 투약한 그룹과 위약을 투약한 그룹 간에 심혈관질환 발생률에서 차이가 없었다는 것.

 

그 대신 아스피린의 부작용인 위장 출혈 및 위궤양이 나타나는 사람은 위약 투여군보다 훨씬 많았다고 한다.

 

페니실린 및 스테로이드와 함께 인류가 발견한 3대 명약으로 꼽히며 지난 100년간 가장 많이 팔린 약으로 기록돼 있는 아스피린의 효과 및 부작용에 대해서는 현대 의학도 아직까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지금도 매년 3천500여 편의 관련 학술 논문이 쏟아져 나올 만큼 활발히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말이다.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0.12.14
http://www.sciencetimes.co.kr/article.do?todo=view&atidx=0000046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