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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까지… 인간에게 다 주고 떠나는 돼지

산포로 2022. 2. 25. 10:37

심장까지… 인간에게 다 주고 떠나는 돼지

인간의 장기 크기와 모양 닮아 이식 용이
돼지 심장 이어 췌도·각막도 이식 성공 가능성

 

 

올해 초 사상 처음으로 돼지의 심장이 사람에게 이식됐다. 기존에 이식에 사용되던 돼지 심장 판막과 피부 등에 이어 심장까지 이식에 성공한 것이다. 식용으로만 생각했던 돼지가 그야말로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고 떠난 셈이 됐다. 어쩌면 돼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고마운 존재일지 모른다.

 

◇최초 돼지 심장 이식 성공… “이종 이식 연구에 한 획”


지난달 10일 미국 매릴랜드대 의대 연구진은 말기 심장병 환자에게 유전자를 변형한 돼지 심장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환자 동의를 얻은 의료진은 같은 달 7일 이식 수술을 실시했으며, 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환자는 맥박이나 혈압 등 큰 문제없이 회복 과정에 들어갔다. 말기 심장병으로 인간의 심장조차 이식할 수 없었던 환자가 돼지 심장을 품은 채 생명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이번 이식 수술은 돼지의 심장을 인간에게 이식한 최초 사례다. 그동안 돼지의 판막이나 피부를 이식하거나 뇌사자에게 신장을 이식한 사례는 있었으나, 살아있는 인간에게, 다른 장기도 아닌 심장을 이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식 후 환자의 과거 범죄 사실과 윤리적·종교적 문제 등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기도 했으나, 어찌됐든 이번 이식은 이종(異種) 장기 이식 연구 분야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 됐다. 전문가 역시 이종 이식을 통한 인류의 이식 장기 부족 문제 해결에 한 발 다가섰다는 점에서 돼지 심장 이식 수술이 갖는 의미를 높게 평가했다. 가천대 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김광원 교수는 “이식에 필요한 사람의 장기를 얻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동물의 장기를 대신 이식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인간과 장기 비슷한 돼지, 이식 위한 모든 조건 갖춰


현재 인간과 동물 간 이종이식 연구는 각막, 췌도, 신장, 심장 등 모두 돼지의 장기를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다. 과거 원숭이 등을 활용한 이종 이식 연구가 진행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모든 연구가 돼지의 장기를 인체에 안전하게 이식하는 데 맞춰져 있다.

 

왜 돼지일까. 기본적으로 돼지와 인간은 장기의 크기, 모양 등이 매우 닮아있다. 돼지의 심장 크기는 인간의 94%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돼지와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는 소, 염소 등은 인간과 장기의 크기나 모양이 매우 다르다.

 

이처럼 인간과 장기가 비슷한 돼지를 무균 시설에서 사육할 수 있다는 점 역시 큰 이유다. 동물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기 위해서는 감염 문제를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한다. 오랜 기간 가축화된 돼지는 다른 동물에 비해 인수공통감염병 위험이 적고, 무균 시설에서 대량으로 사육 가능하다.

 

물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식용 돼지들이 이식에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장기 이식을 위해 길러지는 돼지들은 철저히 ‘장기 이식용’으로 무균 시설에서 사육된다. 면역 거부 반응을 줄이기 위해 유전자 변형 과정을 거치는 점을 고려한다면 ‘만들어진다’는 표현이 적합할 수도 있다. 이번 심장 이식에 사용된 돼지 또한 인체 면역체계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3개 유전자와 돼지 심장 조직의 과도한 성장을 유도하는 1개 유전자를 제거했으며, 인체에서 외부 장기를 받아들이는 역할을 하는 인간 유전자 6개를 삽입했다. 비교적 유전자 변형이 용이하다는 점은 돼지가 이종 이식에 활용되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이쯤 되면 돼지는 인간에게 이식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이종 이식, 병 고치는 가장 편한 방법 될 것”


전세계적으로 돼지를 활용한 이종 이식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더 많은 돼지의 장기가 인간에게 이식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돼지 췌도와 각막의 경우 이식 성공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크기가 크지 않은 데다, 면역거부 반응이 다른 장기보다 빨리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식에 실패할 경우 생명과 직결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다른 방법으로 대체하거나 재시도가 가능하다는 것도 이점으로 작용한다. 돼지 췌도를 이용한 이종 이식 연구는 현재 국내에서도(가천대 길병원) 진행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종 이식에 성공한다면 인류가 직면한 이식 장기 부족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광원 교수는 “돼지 장기를 이용해 사람을 치료 가능하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될 경우, 치료에 필요한 돼지를 대량으로 사육해 필요한 장기를 더욱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문제가 생긴 장기를 이종 이식을 통해 대체할 수 있다면 병을 치료하는 가장 편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헬스조선 (chosun.com) 전종보 기자 입력 2022.02.24 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