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 실패와 성공의 교훈] 탈모치료제의 탄생: 미녹시딜 & 프로페시아
제 아버지께서는 누구든지 완벽한 탈모약을 개발하면 떼돈을 벌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곤 하셨습니다. 저 역시도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나 아쉽게도(?) 저는 탈모 연구와는 거리가 먼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탈모를 겪고 있기 때문에 완벽한 탈모약이 개발되기를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약물은 현재 탈모치료제로 쓰이는 약들인 미녹시딜(Minoxidil)과 프로페시아(Propecia)입니다. 비록 이 약들은 우리가 꿈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완벽한 탈모약은 아니지만, 이들이 현재 탈모약의 대표명사로 불리는 약들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해당 약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를 소개하겠습니다.
1. 미녹시딜과 프로페시아의 탄생
미녹시딜개발의 시작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Upjohn Company라는 제약회사에서는 궤양(Ulcer)을 치료할 목적으로 화합물을 합성했습니다. 많은 후보 물질 중에서 엄선한 물질을 개를 이용한 동물실험에 사용했는데, 아쉽게도 목적과 달리 궤양 치료에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실험에 사용된 화합물이 혈관을 확장시켜 혈압을 낮추는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이 화합물을 조금씩 변형시켜 200개가 넘는 화합물을 합성했고, 그중 하나가 1963년에 만들어진 미녹시딜입니다. 이 회사는 이후 이 약물을 가지고 고혈압 치료를 위한 임상시험에 들어갔습니다. 임상시험을 수행하던 중에 흥미롭게도 이 약을 복용한 환자들에게서 털이 많아지는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착안해 미녹시딜을 국소적으로 머리에만 바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도출되었고, 그러한 생각은 결국 미녹시딜을 국소적으로 바를 수 있는 용액 형태로 제작해 머리에 바르는 시도를 낳았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1988년에 바르는 남성 및 여성 탈모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았습니다1. 궤양치료제로 시작한 약이 고혈압 약이 되었고, 고혈압 약이 또다시 탈모 치료제로 완성된 것입니다. 미녹시딜은 먹는 형태의 고혈압 약으로 1979년에 FDA 승인을 받기도 했지만, 다른 좋은 고혈압 약들이 있기 때문에 미녹시딜이 고혈압 약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현재는 미녹시딜의 특허가 만료된 상태이기 때문에 다양한 복제약(Generic drug)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일반약으로 분류되어 의사의 처방 없이도 구매할 수 있습니다.
프로페시아는 미녹시딜에 비해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약입니다(프로페시아는 약의 브랜드명이고 약의 이름은 Finasteride입니다). 프로페시아는 5-alpha reductase라는 효소의 기능을 막는 억제제이며, 본래 전립선 비대증을 치료하기 위한 약으로 제약회사 Merck에서 1980년대에 개발되어 1992년에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미녹시딜의 경우처럼 프로페시아의 임상시험 과정 중에 환자들에게서 빠지던 머리카락이 줄어들고 머리카락이 자라는 부작용(?)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발견에 기초하여 프로페시아는 1997년 남성형 탈모약으로 FDA 승인을 받게 되었습니다2. 프로페시아는 미녹시딜과 달리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약이며, 바르는 약이 아니라 먹는 약입니다.
2. 미녹시딜과 프로페시아의 작용 기전
미녹시딜과 프로페시아는 우선 사용법이 다릅니다. 미녹시딜은 국소적으로 머리에 바르는 약이지만, 프로페시아는 먹는 약입니다. 이 두 약은 서로 다른 기전을 통해 탈모를 치료합니다.
미녹시딜은 혈압약으로 승인을 받았던 만큼, 혈관을 확장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미녹시딜이 머리에 국소적으로 발리게 되면, 이로 인해 모낭으로 가능 혈류가 증가되어 머리카락의 생성이 촉진되며 더 건강한 머리카락이 만들어집니다. 이러한 원리로 작동되기 때문에 미녹시딜은 남성과 여성의 탈모 모두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반면 프로페시아는 남성형 탈모에만 적용되는 약입니다. 프로페시아의 타깃이 되는 5-alpha reductase라는 효소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Testosterone)을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 (Dihydrotestosterone, DHT)으로 바꾸는 효소입니다. 5-alpha reductase에 의해 만들어진 DHT는 모낭에 있는 수용체에 결합해 모낭의 위축을 일으키고, 이러한 모낭의 위축은 결과적으로 머리카락을 가늘게 할 뿐 아니라 머리카락이 자라는 주기를 짧게 만들어 머리카락이 더 많이 탈락되도록 합니다. 따라서 DHT 농도가 높은 경우 남성형 탈모가 발생하게 되는데, 5-alpha reductase를 억제하는 프로페시아는 DHT 농도를 낮춤으로써 남성형 탈모 속도를 늦추는 효과를 줍니다3 (그림 1).
그림 1. 프로페시아의 기전
테스토스테론에서 만들어지는 DHT는 모낭의 위축을 일으키는 원인 물질이다. 프로페시아는 테스토스테론이 DHT로 바뀌는 과정을 막음으로써 DHT 농도를 떨어뜨려 DHT에 의한 탈모를 막는다.
미녹시딜과 프로페시아는 현재 FDA의 승인을 받은 유일한 탈모치료제입니다. 다만 그 작용 기전에서 알 수 있듯이 탈모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녹시딜의 경우 영양분의 공급을 더 주는 효과이지만 근본적으로 탈모가 발생하는 원인을 잡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프로페시아의 경우에도 그 원인이 되는 DHT를 줄이기는 하지만, 이미 사라진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탈모 치료제라기보다는 탈모 지연제 혹은 탈모 예방제로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수도 있겠다고 여겨집니다. 게다가 프로페시아의 복용을 멈추면 탈모가 다시 발생하고, 이때 탈모가 더 심하게 진행되는 것 같은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는 사실 그동안 빠졌어야 할 머리카락이 프로페시아에 의해 잠시 수명이 연장되었다가 프로페시아의 영향력이 사라졌을 때 그 운명을 받아들여 탈락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두 약 모두 근본적으로 탈모를 해결하지는 못하고 탈모를 지연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프로페시아는 복용을 일찍 시작할수록 그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탈모가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는, 이미 사라진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 효과가 적다고 합니다. 이미 빠진 머리카락을 다시 자라게 할 수 있는 탈모 치료제가 나온다면 도입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떼돈을 벌기에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3. 결론
이번에 소개한 미녹시딜과 프로페시아는 모두 임상시험 과정에서 발견된 부작용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개발된 약입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으나 부작용이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운 좋은 발견입니다. 이러한 발견이 가능했던 것은 임상 시험 과정 중에 나타나는 사소한 변화까지도 놓치지 않고 보고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하는 일이 임상 시험이 있기 전까지의 연구 및 개발이기 때문에 사실 임상 시험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운 좋은 발견은 임상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연구 과정에서도 발견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작용이나 실패로 여겨질 사안까지도 놓치지 않고 발견하는 관찰력과 이를 응용해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참신한 발상이 돋보이는 예시가 바로 오늘 소개한 탈모약의 발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출처
1. Guinter Kahn, Inventor of Baldness Remedy, Dies at 80 - NYTimes.com. https://web.archive.org/web/20141011000754/http://www.nytimes.com/2014/09/20/business/guinter-kahn-inventor-of-baldness-remedy-dies-at-80.html.
2. Zito, P. M., Bistas, K. G., Patel, P. & Syed, K. Finasteride. xPharm: The Comprehensive Pharmacology Reference 1–4 (2024) doi:10.1016/B978-008055232-3.61749-0.
3. Propecia Oral: Uses, Side Effects, Interactions, Pictures, Warnings & Dosing - WebMD. https://www.webmd.com/drugs/2/drug-5471/propecia-oral/detai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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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통신원(제약회사김박사(필명)) 등록 2024.12.05
출처: [BRIC Bio통신원] https://www.ibric.org/s.do?KpVPaVgX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