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9화. 한밤의 실험실
생물학 대학원 생활은 특별한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흔한 직장인들처럼 아침 9시에 출근하고 저녁 6시에 칼퇴근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대학원생들의 출근은 보통 아침 9시에 이루어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특별한 실험 스케줄이 잡히지 않았을 때의 얘기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전날 밤늦게 실험이 끝났다면 아침 9시 이후에 출근할 수 있고, 아침 일찍 실험 스케줄이 잡혔다면 새벽에도 출근할 수 있다. 퇴근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저녁 6시 즈음에 퇴근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저녁식사 시간이기 때문이다. 저녁 6시 퇴근은 그러므로 1차 퇴근이다. 특별한 일정이 없다면 대학원생들은 저녁 먹고 한두 시간 뒤에 다시 랩으로 출근한다. 그리고 밤 10시에서 11시 정도에 진짜 퇴근을 한다. 즉 자고 먹고 씻는 시간 외에는 랩에 온종일 붙어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적어도 내가 대학원생 때는 그랬다.
물론 20여 년이 지나 미국 생활을 10년 넘게 하고 온 나로서는 그 시절 대학원생 일과가 다분히 한국 특이적인 문화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월화수목금토일이 아니라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우스갯소리는 한국 대학원생의 일과를 단적으로 말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시간을 랩에서 일한다고 해서 초과 수당을 받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열정페이 따위로 일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엔 자발적이고 순수한 열정이 늘 함께 머무르기 때문이다. 단, 랩을 이끄는 리더는 대학원생들의 이러한 순수한 열정을 이용하려고 하지 말아야 하며, 대학원생들은 월급에 연연하지 않고 박사학위를 받기 전 이 순수한 열정에 꼭 빠져보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2004년이 되고 대학원 2년 차가 되면서 나는 실험실 막내 역할을 갓 들어온 두 대학원 신입생에게 양도할 수 있었다. 김효영과 윤수준. 효영이는 나처럼 학부생 때 군대를 다녀온 97 복학생이었고(지욱이 동기이기도 했다), 수준이는 민수처럼 박사특례를 신청한 00학번 후배였다. 이 둘은 각자 확실한 캐릭터로 랩에서 금방 자리를 잡게 되는데, 효영이는 마치 체육학과 학생인 것 같은 포스를 내며 배드민턴이면 배드민턴, 축구면 축구, 농구면 농구, 탁구면 탁구, 어느 스포츠 하나 빼놓지 않고 랩 사람들보다 압도적으로 잘했다. 거의 매일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배드민턴을 치러 갔는데, 나중에 이 습관 때문에 교수님과 불화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효영이 덕분에 2년 뒤 여러 랩과 함께 했던 워크숍에서 우리 랩이 랩 대항 축구 경기에서 승리를 거머쥐기도 하고, 과 전체 체육대회에서 배드민턴 우승을 하기도 한다. 반면, 수준이는 말로만 듣던 S 과학고 수석 졸업, P 공대 수석 졸업이라는 훈장을 단 수재였다. 모든 교수님들은 수준이가 자기 랩으로 와줬으면 좋겠다고 바랄 정도였다. 그런 수준이가 상대적으로 신생 랩이었던 우리 랩으로 지원을 했던 것이다. 또한 수준이는 화도 잘 안 낼 정도로 성격이 온순하기로 유명했는데, 그가 가장 화났을 때 했던 말이 “아이 참…”이라는 사실은 지금도 전설로 남아 있다(이 문장에서 끝에 붙은 점점점에 주목하라. 느낌표가 아니다!). 이에 반해 효영이는 조금 거친 성격의 소유자였다. 가끔 선배인 우리 돼지 삼형제에게 대들기도 하고, 아주 가끔 교수님께 대들기도 했다. 그런데 실험 하나는 그 누구보다도 잘해서 과학자의 역량을 따져 보자면 부족한 게 없었다. 그래도 랩 사람들은 효영이를 바라볼 때 조금은 인성적인 측면을 걱정했고 괘씸하게 여길 때가 많았다. 그러나 표현이 거칠어서 그렇지, 알고 보면 효영이도 순진무구한 청년이었다. 수준이는 나중에누구나 예상했던 대로 박사 학위를 성공적으로 받고 미국에서 박사후연구원 과정에서 Cell에 한 편, Cell Stem Cell에 두 편을 내고 K 공대 교수로 금의환향한다. 그러나 효영이는 지금 뭘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효영이도 박사를 받고 미국으로 박사후연구원을 갔다고 알고 있는데, 그 이후로 연락이 끊겼기 때문이다. 적어도 손은 좋았으니 어디선가 테크니션이나 연구원으로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설마 체육 선생님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겠지?). 결코 굶어 죽을 녀석은 아니니까.

우리 돼지 삼형제는 전날 밤 여우웃음에서 사장님을 통해 들었던 지욱이의 이해할 수 없는 말과 내가 자기 전에 뒤늦게 확인한 쪽지 내용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효영이가 운동복 차림에 배드민턴 가방을 등에 메고 저녁 8시 넘어 2차 출근을 했는데 옆에서 우리 얘기를 들었는지 대뜸 “형들이 지욱이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요?”라면서 말했다. 평소 돌직구를 잘 던지는 효영이의 말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우리는 말없이 효영이를 쳐다보았는데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이었다. 맏이인 시철이가 친절하게 “우리가 뭘 잘 모르는데?”라고 했고, 효영이는 “됐어요. 이미 끝난 일이잖아요.”라고 말을 매듭지으려고 했다. 그때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민수가 제안을 했다. “형들이 한 잔 살 테니까 두 시간 뒤에 통집에서 보자.”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남은 실험을 마무리했다. 민수는 형광 현미경 사진을 찍으러 갔고, 시철이는 PCR을 돌리러 갔으며, 나는 마우스 꼬리에서 뽑은 DNA로부터 어느 마우스가 정상 마우스이고 어느 마우스가 넉아웃 마우스인지를 알기 위해 PCR이 끝난 샘플 90개를 아가로즈 젤 (Agarose gel)로 전기영동하기 위해 로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 11시 경이되고 우리는 약속한 대로 통집으로 향했다.

지욱이 동기였던 효영이는 지욱이에 대해서 꽤 많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 학번 후배라 잘 몰랐는데, 효영이는 지욱이의 기숙사 룸메이트였고 같은 부산 출신이었으며 심지어 같은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했다. 어릴 땐 부모님들끼리도 서로 알고 지냈다 했다. 그러나 지욱이가 고 1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고 2 때 후 재혼을 했는데, 계부와의 관계가 나빠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그 이후 집에도 잘 안 들어가고 종종 효영이 집에서 신세를 지기도 했단다. 효영이와 효영이 부모님은 지욱이의 사정을 잘 알기에 별 다른 건 묻지 않고 자기 집처럼 사용하게 했다고 했다. 여기까지 듣고 우리 돼지 삼형제는 언제나처럼 서로 그만 좀 먹으라고 소리치면서도 각자 안주를 세 접시나 비우며 그러려니 하며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다음 말을 들으며 우린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젓가락을 놓고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고 3 때 지욱이가 다니던 학원에서 어떤 삼수생을 만났는데 그 만남 이후 지욱이는 효영이 집에 더 이상 머물지 않고 줄곧 그 삼수생 집에서 지냈다는 것이다. 효영이는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수능을 치고 난 직후 그 삼수생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어느 날 지욱이가 갑자기 찾아와서 대뜸 말하더란다. “올림픽에서 여자 핸드볼이 금메달을 못 따서 그래.“ 그 말을 듣고 효영이도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싶어 오랜만에 찾아온 지욱이를 바라보다가 한동안 동거했던 사람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니 정신적으로 충격이 좀 있었나 보다, 하며 그 말을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효영이의 얘기는 갑자기 시간을 건너뛰어 왕경태로 이어졌다. 왕경태와 친해지면서 지욱이는 효영이를 포함한 동기들과의 교류를 일제히 끊었는데,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고 3 때의 사건이 겹쳐졌고, 소름이 돋았다는 말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말을 들을 때 소름이 돋았다. 어젯밤 쪽지에서 확인한 지욱이의 메시지와 여우웃음 사장님으로부터 전해 들은 지욱이의 말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아마 남은 돼지 둘도 그랬을 것이다. 민수는 눈이 다시 빛났고, 시철이는 젓가락을 손에서 완전히 내려놓았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머리가 재빠른 민수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음, 그러니까 스포츠 경기의 승패와 지욱이 지인의 죽음 사이에 무슨 연결 고리가 있나 보군.” 기다렸다는 듯이 시철이가 받아쳤다. “그런데 두 사건은 좀 다르지 않냐? 핸드볼 경기가 졌을 때 그 삼수생이 죽었지만, 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는 우리가 이겼는데 왕경태가 죽은 거잖아. 그리고 이번엔 지욱이 스스로도 죽었고 말이야.” 그때 효영이가 끼어들었다. “적어도 지욱이가 자살할 애는 아니에요. 그럴 거라면 고 3 때 했겠죠.” 돼지 삼형제는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철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건 효영이 니 말이 맞는 것 같다. 자살할 애가 휴대전화를 백사장에 놔두고 바다로 들어갔을 리가 없잖아. 전화기를 백사장에 놓고 들어갔다는 건 다시 돌아오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게 맞지 않겠어?“ 맥주 한 잔에 얼굴이 벌게지고 허리띠까지 푼 시철이가 모처럼 P 공대생의 날카로움을 선보였다. 그리고 말을 계속 이어갔다. ”지욱이는 자살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쳐. 그럼, 왕경태는? 왕경태는 자살이었을까?”

한동안 침묵이 흘렀고 가장 먼저 민수가 말문을 열었다. “그럴 가능성도 충분한 것 같애.“ 그리고 민수는 몇 달 전 나와 함께 포항 앞바다를 가면서 해주었던 얘기를 모두에게 다시 들려주었다. 한 가지 얘기를 추가하면서 말이다. 그 이야기는 왕경태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몇 주 전 왕경태의 옛 지도교수가 신문에 나온 기사였다. Y 대학의 Y 교수를 고소한 어느 대학원생의 탄원서였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 교수가 누구인지 전혀 생각지도 않고 기사만 읽었는데, 민수가 얘기를 꺼내자마자 나는 곧바로 신문에 나온 Y 교수가 왕경태의 옛 지도교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Y 성을 가진 생명과학부 교수는 Y 대학에서 단 한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소름이 돋았다. 탄원서는 그 교수의 갑질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그 교수가 저지른 갑질의 피해자는 왕경태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자 효영이가 말을 받았다. “저도 그 기사 봤어요. 형들이 생각하는 그 교수 맞아요. 저는 지욱이 통해서 경태 형의 이야기를 조금 전해 들었거든요. 그 기사 아래에 제보자 이메일이 나와 있던 것 같은데, 제가 이메일을 보내볼게요. 그 제보자는 뭔가를 더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어느덧 ‘손에 손 잡고’가 흘러나왔고 우린 시간 안에 안주를 더 못 시킨 것을 뒤늦게 후회하며 통집을 빠져나왔으며 그 일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민수와 시철이는 기숙사로 들어갔고, 나는 두 번째 PCR을 돌려놓기 위해 실험실을 다시 찾았다. 아침이면 다른 사람들이 PCR 기계를 서로 먼저 사용한다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 최근 들어 자주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밤늦게 미리 돌려놓으면 아침에 가서 그냥 전기영동만 하면 되는 터라 아침에 불필요한 경쟁을 피할 수 있고 시간적 여유도 확보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나는 88마리의 유전자형을 확인해야 했고 대조군 두 샘플을 합쳐서 총 90개의 PCR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조금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밤, 아니 새벽 1시경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험실엔 수준이와 남순이가 있었다. 남순이는 수준이와 함께 실험실에 들어왔던 연구원이었다. 남순이는 그다음 해에 대학원생으로 입학하게 되어 실험실 가족이 된다. 그 둘도 이제 막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왔는지 실험실 한쪽 구석에 있던 컴퓨터 책상 바닥에 앉아 스케이트를 벗고 있었다. 너네 아직 안 가고 뭐 하고 있어?, 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수준이가 남순이의 스케이트를 벗겨주는 장면과 헬멧을 벗고 땀이 범벅이 된 얼굴로 서로를 웃으며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재빠르게 질문을 바꾸었다. “너네… 사귀냐?” 남순이가 말했다. “모르셨어요? 오빠 빼곤 다 아는데.” 이럴 수가! 나는 내가 랩에서 가장 먼저 둘이 사귄다는 사실을 알아챘다고 여겼건만 내가 마지막이었다니! 수준이는 말없이 그저 싱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얼굴이 빨개져 바보가 되어버린 나는 묵묵히 후드 앞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90개 PCR을 헷갈리지 않고 진행하기 위해 DNA 샘플과 팁의 위치를 맞추었다. 참고로, 둘은 2년 뒤 결혼식을 올린다. P 공대에도, 한밤의 실험실에도 낭만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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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히 어로(필명))등록일2024.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