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18화. 위로
나의 박사 4년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 주인공의 면상을 보자마자 분노가 일었다. 그는 삐쩍 마른 체형의 중동 사람 같아 보였다. 다가서서 말을 걸어보려는 찰나 동료인 듯한 사람이 선수를 치는 바람에 나는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고, 포스터 세션에서 제대로 대화하자고 맘먹었다. 그도 내 포스터를 봤을 테고, 내용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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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세션이 시작되고 여러 사람에게 질문을 받고 대답도 하면서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그러나 온통 내 머릿속은 그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거의 두 시간이 다 지나갈 무렵이 되어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분노를 느꼈고, 몇 시간 전 마주쳤을 때 적극적으로 말을 걸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분명히 내 포스터 내용을 알 텐데도 얼굴조차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화가 났다. 나를 무시하는 건가 싶은 마음에 내 가슴은 쉴 새 없이 쿵쾅대고 있었다.
두 시간이 다 되고 사람들은 각자 포스터를 접기 시작했다. 나도 그러려던 순간 한 사람이 와서 내 포스터를 물끄러미 보는 것이었다. 설명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알려달라고 말하고 나는 하는 수 없이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Hi, I saw another interesting poster which has the same story as yours except the mouse model (안녕하세요. 저는 마우스 모델만 다르고 똑같은 스토리를 가진 다른 포스터를 봤어요).” 나도 안다고 태연하게 말하며 그 발표자가 오길 기다렸는데 안 왔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렇게 응답하는 것이었다. “Actually, I am the second author of the poster. We submitted the manuscript to the Cell journal a month ago and received reviewers’ comments around at noon today. That’s why he, I mean the first author, was not able to come to your poster. He got very excited because the reviewers’ comments were very positive (사실 저는 그 포스터의 두 번째 저자예요. 우린 한 달 전에 이 내용으로 논문을 Cell 지에 투고했고, 오늘 낮 12시경에 심사 평가를 받았어요. 그래서 그 발표자가, 첫 저자요, 이 포스터릉 보러 오지 못함 거예요. 그는 지금 굉장히 흥분해 있어요. 심사 평가가 상당히 긍정적이었거든요).”
나는 그녀의 친절한 말을 듣고 그 발표자가 왜 이번 포스터 세션에 나타나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지만, 나의 분노는 이젠 질투까지 합세하여 더 커지기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패배의 쓴잔을 마시는 것밖에 없었다. 손을 쓸 수 없는 상황. 완벽한 패배. 이것이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었다. 하필 태어나 처음 나와보는 이국 땅 캐나다에서 말이다. 표시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그녀는 내 표정을 보고 내 심정을 간파한 것 같았다. 내 이메일을 알려달라고 했다. 자기가 그 사람에게 전달해 주고 연락하라고 말할 거라 했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던 나는 그녀의 노트에 내 이메일을 적어 주었다.
다음 날, 학회는 오전에 마무리되고 랩 사람들은 밴쿠버 구경을 간다면서 다들 들떠 있었다. 하늘은 청명하게 빛났고 뭉게구름이 드문드문 피어 있었다. 길거리에선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들렸고, 멀리서 들려오는 경적소리도 아름답게만 들렸다. 평화 그 자체였다. 그러나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내 앞은 온통 검은 구름이 가득한 것 같았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냄새나고 불쾌한 진창 길인 것 같았다. 민폐가 될까 봐 함께 할 수 없다고 말한 뒤 나는 혼자서 길을 나섰다. 그냥 바다가 보고 싶었다. 반대편에서 보는 태평양은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했다. 거기서 큰소리로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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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전한 패배자인 것 같았다. 무려 Cell 지에 논문을 투고해서 한 달 만에 긍정적인 리뷰를 받았다는 건 몇 달 후면 온라인으로 논문이 게재된다는 뜻이었다. 한국 학회에서 최우수상을 두 번씩이나 받고 구두 발표 때마다 훌륭하다는 칭찬을 들어왔었기에 내가 이 캐나다 학회에서 느꼈던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장 핵심적인 발견은 ‘비혈구 세포의 유전적 결함으로 인한 혈구 세포의 이상 현상’이었는데, 이것이 내 것보다 먼저 논문으로 게재된다는 건 곧 스쿱 당하는 (scooped) 것이었다. 물론 유전자와 마우스 모델이 다르기 때문에 여전히 논문으로 낼 수는 있었다. 그러나 개념적인 진전이 전무하기 때문에 결코 임팩트가 높은 저널에는 논문을 게재할 수 없을 것이었다. 나의 첫 해외 학회는 결국 내게 커다란 절망감을 안겨준 꼴이었던 것이다. 그날 혼자 바라본 태평양의 반대편은 우울하기만 했다.
밴쿠버 바닷가와 연결된 공원 벤치에 앉아 몇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졌고, 나는 어젯밤 랩 사람들이 어렵사리 예약한 저녁식사 자리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마침 어느 한국인 모녀가 옆 벤치에 앉더니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웬 한국인인가 싶은 마음과 울적한 마음에 한국어가 들리니 반갑기도 해서 자리에 좀 더 앉아 있었다. 대화라기보다는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의 조언이었다. 딸인 것 같은 여성은 잠잠히 듣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안 나지만,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성공만 지향하는 사람은 성공을 이루지 못하면 실패자가 되고, 성공을 이룬 뒤엔 목적을 상실하게 되지만, 강함을 지향하는 사람은 성공하든 성공하지 못하든 상관없이 계속 강해질 뿐이라고. 인생은 그냥 정진하는 것이라고. 꿋꿋하게 버티고 견뎌내는 것이라고. 인생의 본론은 영화 같이 반짝이는 어느 한순간에 있는 게 아니라 비루하게도 보이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 있는 것이라고. 성공도 실패도 과정일 뿐이라고. 그 작은 극점에 연연하지 말고 전체 기울기가 상승하는 인생을 사는 게 맞지 않겠냐고. 너는 실패한 것도 아니고 꿈을 이루지 못한 것도 아니고, 단지 그 극점에서 벗어난 것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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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리고 드디어 눈이 뜨이는 것 같았다. 조그만 우물 안에 갇혀 그것이 모든 세상이라 믿고 아등바등 대던 내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내 상황을 직시할 수 있었다. 과연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었다. 나는 과학이 좋아 과학을 선택했고 평생 과학을 하면서 살겠노라고 다짐했다고 믿었건만, 그건 과학이라는 단어 아래 숨어 나의 이기적이고 유아적인 욕망,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유명 인사가 되고 힘을 가진 자가 되어 남들 앞에서 떵떵대고 싶어 했던 파렴치한 욕망을 숨기기 위한 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저 과학으로 성공하고 싶었던 것이고 과학으로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싶었던 것이다. 과학은 나에겐 나를 더 돋보이게 해주는 수단일 뿐이었던 것이다. 즉, 나는 Nature나 Cell 지에 논문을 실을 정도로 훌륭한 연구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거기에 논문을 싣고서 그로 인해 따라오는 부차적인 이익에 눈이 멀었던 것이다.
부끄러웠다. 한없이 부끄러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벼운 마음이 되어 버스를 타러 길을 나섰다. 걸으면서도,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계속 생각했다. 하루 종일 생각했지만, 그때와는 달랐다. 그 어머니의 조언을 듣기 전과 후의 내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나는 어느새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매몰되었다가 거기로부터 빠져나와 자유와 해방을 만끽하며 지경을 넓히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작은 결론도 내릴 수 있었다. 수치와 죄책은 가끔 마음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문 역할도 하는가 보다,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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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과학자로서 자기 객관화의 여정 속으로 첫 발자국을 뗀 어린아이와 같았다. 과학자는 열심히 연구만 하면 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소통이 중요하다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것도 국내에서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국내 학회에서는 상까지 받을 정도로 나의 연구 결과는 독보적이었지만, 국제 학회에서 그것은 2인자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후 국제 학회의 정보를 파악하기 시작했고,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누가 무엇을 발표하는지 최대한 알아내려고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그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실험이 성공할 때보다는 실패할 때가 많은 것처럼, 연구도 잘 되는 시기보다는 잘 안 되는 시기가 많다는 엄연한 사실을 실제 체험을 통해 받아들이게 되었다. 평생 과학자로 살기 위해서는 단순히 뛰어난 능력과 뜨거운 열정만이 아니라 실패 앞에서도 낙담하지 않고 툭툭 털어버리고 다시 꿋꿋이 일어서서 전진할 줄 아는 힘 (이를 Grit 그릿이라고 한다)이 더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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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 자리에 와 보니 다들 나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시철이가 이제 좀 괜찮냐?, 라며 조심스럽게 물었고, 나는 이제 괜찮아,라고 응답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여러 가지 음식을 시켜서 서로 나눠 먹고 마시는 동안 나의 염려는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있었다. 실험실 가족들이 고마웠고,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그렇게 캐나다 밴쿠버의 마지막 밤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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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히어로(필명)) 등록일2024.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