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12화. 논문
과학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열매는 아무래도 논문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논문은 월화수목금금금 하며 다년간의 소중한 시간(주로 이십 대 중후반)을 연구에 전념해서 얻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가시적 열매다. 논문에 살고 논문에 죽는다, 라는 말은 적어도 생물학자에게는 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평소에 열심히 일하더라도 논문이 없다면, 그 사람의 과거는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무효화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과정은 잊히고 결과만 남는다. 열매 없는 인고의 시간은 이력서 상에 기록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기간은 그저 공백기간일 뿐이고, 무엇을 했는지 증명할 수 없는 과거일 뿐이며, 앞으로도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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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에게 대학원 생활은 박사후연구원 생활의 전신이기에 대학원생은 연구에 있어서 만큼은 아마추어이면서도 프로인 이중 정체성의 소유자가 된다. 갓 대학을 졸업하여 연구란 것을 경험하지 못한 갓난아기와도 같기 때문에 아마추어이며, 밥벌이로 월급을 받을뿐더러 다른 직업을 시간상 가질 수 없기 때문에 프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서로 상반된 것 같아 보이는 두 정체성을 모두 가진 존재가 바로 대학원생이다. 연구를 배워가면서도 배움만으로 끝낼 수 없고, 반드시 논문이라는 결과를 뱉어내야만 자신의 과거(보통 석/박 혹은 통합 과정을 마치려면 평균 6년 정도 소요된다)와 자신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논문이란 게 연구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 어떤 일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훌륭한 논문을 업적으로 가지기 위해서는 흔히 말하는 운도 필요하다. 여기서의 운이란 만남과 타이밍을 의미하며 노력이나 실력으로 얻어낼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지칭한다. 만남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지도교수와의 만남이다. 지도교수가 과연 대학원생들이 좋은 논문을 낼 수 있도록 제대로 지도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업적이 훌륭하여 교수가 되었으나, 리더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교수들도 꽤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이 또한 인간관계에 속하고, 인간관계는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 지도교수의 랩에 들어가라거나 들어가지 말라고 호언장담할 수 없다. 둘째, 프로젝트와의 만남이다. 지도교수를 잘 만났다 하더라도 프로젝트가 좋아야 한다. 너무 도전적인 주제를 맡게 되면 남들 박사학위 받을 때가 되어서야 겨우 연구의 실마리를 찾아낼지도 모른다. 반대로, 너무 쉬운 주제를 맡게 되면 시간에 비해 배우는 것도 없고 임팩트 있는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하게 되며 결국 이것은 좋은 논문을 낼 수 없게 만든다. 그렇다면 적당한 프로젝트란 어떤 것일까?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연구란 자고로 뚜껑을 열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단, 이 두 만남은 스스로의 노력과 판단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점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겠다. 연구의 세계는 불확실성의 세계다.
만남에 이어 훌륭한 논문을 남기며 박사학위를 받는 대학원생이 되기 위해 필요한 두 번째 운은 완벽한 타이밍이다. 하필 대학원에 진학할 무렵,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분야가 각광을 받기 시작하고, 마침 그 분야의 대가 교수 실험실에서 대학원생을 모집해서 지원했는데 합격이 되어 들어갔더니 마침 적당한 프로젝트가 본인에게 주어졌고 열심히 했더니 시행착오를 많이 거치지도 않고 뭔가 새로운 결과를 찾아내게 되어 정상급 논문을 출간하게 되는, 로또 맞은 것 같은 경우를 상상하면 되겠다. 즉, ‘하필 그때’ 혹은 ‘마침’이라는 우연이 적어도 두 번 이상 연이어 생겨야 한다.
그러나 완벽한 만남과 완벽한 타이밍으로 대학원생을 시작했다 할지라도 끝에 가서는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할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 경우 역시 본인의 노력 부족이나 능력 부족이 아니라 철저히 본인이 어찌할 수 없는 힘에 의해서 좌절의 맛을 볼 때다. 실제로 지금도 많은 연구자들은 자신이 수년간 연구해 온 내용이 다른 그룹에 의해 먼저 논문으로 출간되어 버려 가장 먼저 발견 혹은 밝힌 사람이라는 영광의 면류관을 빼앗기고 있다. 내가 발견하지 않으면, 혹은 내가 밝히지 않으면, 누군가는 그것을 먼저 발견하거나 밝혀내게 된다. 결국 발견과 증명은 거의 대부분이 시간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내용이, 혹은 비슷한 내용이, 세계 어느 나라 어느 그룹에서 연구하고 있는지 미리 파악하는 능력도 고뇌의 쓴 잔을 마시지 않기 위한 좋은 전략이라 할 수 있겠다.
2005년 이른 여름, 내 이름이 들어간 첫 논문이 출간되었다. 나는 열 명 정도 되는 공저자 중 하나일 뿐이었지만, 맨 앞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바로 민수였다. 연구 논문은 보통 두 명 이상의 저자 명단이 기재되는데, 그 연구를 이끌며 가장 큰 공헌을 한 연구자가 첫 저자가 되고, 그 연구를 가능하게 한, 즉 연구비를 제공하고 그 연구의 모든 책임을 지며 논문으로 출간이 되면 타 연구자와 교신할 사람이 마지막 저자가 된다. 마지막 저자는 보통 교신 저자라고 하며, 한 랩에서 주도한 연구 논문이라면 교신 저자는 주로 지도교수가 된다. 민수는 자기가 만든, 비록 배아 단계에서 죽어 많은 실험을 할 수 없었지만 생물학계에서 아주 중요하면서도 새로운 유전자의 기능을 밝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넉아웃 마우스로 논문을 내게 된 것이었다. 그 논문은 우리 랩에서 우리가 손수 만든 마우스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 논문은 그 이후 쏟아져 나올 여러 편의 논문들의 발화점 역할을 하게 된다. 때마침 민수가 만든 조건부 넉아웃 마우스가 여러 조직에서 드라마틱한 표현형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중엔 몇 년 후 내가 첫 저자로 논문을 쓰게 될 마우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너무나도 정상이었던 넉아웃 마우스 프로젝트를 접고서, 당시 내가 맡고 있던 프로젝트는 유방의 발달과 유방암에 관련되어 있었다. 지도교수님이 미국에서 금의환향하실 때 들고 오셨던 넉아웃 마우스의 표현형 중 하나가 그 주제와 연관되어 있었고, 우리는 민수가 넉아웃 한 유전자가 유방의 발달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그 유전자에서 비롯되는 단백질에 대한 항체가 여의치 않았던지라 그 유전자의 발현 패턴을 알기 위해 나는 암컷 마우스의 유선 조직을 채취하여 파라핀 침투를 시킨 뒤 블록을 만들었고, 4 마이크로미터 두께의 조직 단면을 얻어 민수가 넉아웃 한 유전자 (편의상 Mind라고 하자)의 RNA 염기서열과 상보적인 염기서열을 갖는 RNA 조각을 그 단면에 갖다 붙이는 실험을 했다. 이른바 In situ hybridization이라 불리는 실험으로써 그 당시 랩에는 전혀 세팅이 되어 있지 않았다. 대학원 3년 차였던 내가 랩을 대신하여 세팅하게 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이 실험을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까닭은 이 실험만큼 나에게 트라우마를 안겼던 실험은 여태껏 없었으며, 내겐 며칠밤을 새면서도 실패를 거듭했던 유일한 실험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에는, 마치 쉽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 밀키트처럼, 실험자가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아도 주어진 매뉴얼대로 실험을 진행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In situ hybridization 키트를 판매하기 때문에 한결 쉬워졌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높디높은 장벽과도 같은 실험이었다.
조직 절편에 붙일 Probe라고 부르는 RNA 조각을 얻는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간단한 PCR과 In vitro transcription을 할 줄 알면 되었다. 18 킬로 베이스페어의 표적 벡터를 만들어본 나로서는 그 정도의 클로닝은 식은 죽 먹기와도 같았다. 문제는 준비한 Probe가 조직에 성공적으로 붙도록 절편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핵심은 조직 안에 있는 Mind 유전자의 메신저 RNA가 망가지거나 오염되지 않게 유지하고 Probe를 붙인 다음에도 절대 오염 방지를 준수해야 하는 점이었다. 이를 위해 실험에 사용될 모든 유리 기구들은 섭씨 400도에서 구워졌고, 증류수에는 RNA 분해 효소를 무력화시키는 물질인 DEPC가 처리되었다.
얼마나 신중을 기했는지 모른다. 동시에 연구비를 아껴야 하는 상황이었던지라 돈으로 구입해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도 모두 우리는 손으로 만들어서 사용했었는데, 이런 제한적인 상황까지 겹쳐 나의 In situ hybridization 실험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시작부터 마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3일이었고, 무수히 많은 스텝들이 실험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3일을 기다려 결과를 확인해서 예상대로 되지 않았을 때면 나는 도대체 어떤 스텝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몰라 하나부터 열까지 가능성의 경우의 수를 떠올려 일일이 점검해 가며 몇 주간을 보냈다.
대여섯 차례 정도 반복된 실패 끝에 마침내 원하는 결과를 보게 되었을 때 나는 마치 천국이 열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몇 시간에 걸쳐 결과를 볼 수 있는 실험 하나를 실패해도 충격이 꽤 큰데, 3일짜리 실험을 대여섯 차례 실패했다는 것은, 특히나 그땐 내가 내 손에 대해 은근한 자신감이 충만했던 때였기 때문에 더욱 실망과 좌절의 나날들을 보냈던 것 같다. 정말 그렇게나 기다리던 점심 식사도 하기 싫었고, 마지막 결과를 확인하는 스텝인 발색 과정을 지켜보면서는 적당한 세기에서 멈추기 위해 그 자리를 지키느라 실험실에서 잠을 이룬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끝내 성공을 이루어서 망정이지 만약 그 실험이 실패로 기록되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며칠 아니 몇 달은 휴식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실험이야 원래 잘 안 되는 거라는 사실을 이제야 만고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책 한 권 읽은 놈이 가장 무서운 것처럼, 실험 조금 해보고 잘한다는 소리 들었다고 해서 나는 나 자신을 너무 과신했었다. 그 경험 이후 나는 조금은 겸허해졌으며, 연구자로서 살아간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때의 실패는 결국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숱한 실패 가운데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줄 아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성공하는 것보다 더 대단한 것은 실패한 뒤 무너지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아가, 꺾여도 계속하는 마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건 실험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돼지 삼 형제 세 부부가 통집으로 만났던 날은 사실은 내가 수차례의 실패 끝에 처음으로 In situ hybridization을 성공시켰던 날이었다. 민수와 시철이가 고생했다며 나를 위로할 겸 마침 아내들도 시간이 괜찮아서 한자리에 모인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주연이의 사건을 목격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날 주연이가 울면서 말해주었던 충격적인 얘기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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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히어로(필명)) 등록일2024.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