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스토리텔링으로 만나는 내 연구] 척수손상 치료제 개발연구 첫걸음

산포로 2022. 12. 2. 09:08

[스토리텔링으로 만나는 내 연구] 척수손상 치료제 개발연구 첫걸음

 

그림출처: 픽사베이

 

모든 것이 완벽한 토요일 밤이었다. 오로지 나를 위한 밤. 나는 내 인생이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완전히 풀렸다고 생각했다. 나의 건강한 육체와 나의 삶을 사랑했다. 세상도 나를 사랑했다. 그날 밤 집을 나서기 전, 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위야, 너 그냥 결혼하지 말고 오랫동안 나랑 같이 살자.” 나는 아버지의 소원처럼 평생 같이 살 것 같은 모습으로 아버지를 다시 마주했다. “당신은 앞으로 영원히 걸을 수 없을 겁니다. 손가락도 절대 움직이지 못할 거예요.” 꿈이 아니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 박 위 <위라클> 에필로그 중에서 -


척수손상 환자이면서 유튜버로 활동하는 박 위 님의 책 일부를 소개하며 이 글을 시작한다.

나는 ‘척수손상 (spinal cord injury)’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척수손상 후 신경계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알아보고, 그 변화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떻게 하면 그 변화를 조절하여 척수손상 이후 발생되는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를 연구한다.

척수는 척추뼈 속에 존재하며 뇌와 온몸을 연결해 주는 고속도로 역할을 하는 신경조직이다. 척수 안에는 운동신경세포, 감각신경세포가 존재한다. 그리고 척수에는 뇌에서 받는 정보를 말초신경에 전달하고, 말초신경에서 받은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통로인 축삭 (axon) 다발이 지나간다. 마치 송전탑에서 나오는 전기를 각 집에 전달해 주는 전신주 위의 전깃줄처럼 척수는 우리 몸의 운동과 감각을 “연결” 하고 있다.

척수가 손상된다는 것은 바로 뇌와 몸의 단절을 의미한다.

다이빙을 하다가 목뼈가 부러지거나, 추락이나 폭력, 교통사고 등으로 척추뼈가 부러지면 척추뼈 안에 존재하던 척수신경이 뼛조각 등으로 인해 찔리거나, 눌려서 끊어지게 된다. 이러한 척수의 끊어짐은 뇌의 신호가 온몸 구석구석에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글 초반에 소개한 <위라클> 에필로그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내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척수에 있는 운동신경세포가 죽었으니 움직임의 명령이 전달될 수 없고, 신경 전달 통로인 축삭이 끊어졌으니 감각 정보 또한 뇌로 전달할 수 없어 환자는 느낄 수도, 움직일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척수손상은 손상이 어디에 발생했는지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 다른데, 아래 그림처럼 손상된 위치 이하의 운동, 감각기능이 소실되게 된다. 손상 위치에 따라서 하반신 마비 환자가 될 수도, 전신 마비 환자가 될 수도 있다.

 

그림출처: www.escif.org/spinal-cord-injury

 

안타깝게도 뇌, 척수와 같은 중추신경계는 한번 손상되면 복구가 거의 불가능하다. 도마뱀 꼬리가 잘린 후 재생이 되듯 인간의 척수신경도 잘렸지만 재생되어 다시 ‘연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인간의 중추신경계의 재생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척수손상 환자들은 평생 휠체어에 의존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 

척수손상은 나이가 들어 발생하는 치매나 파킨슨병과는 달리 나이와 관계없이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발생하는 질병이다. 갑자기 생기는 뇌졸중, 심근경색 등은 전조증상도 있고, 평소 혈관질환 관리를 잘 하여 예방할 수도 있다. 암이나 당뇨도 예방 또는 관리가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하지만 척수손상은 미리 예방을 할 수도 없고, 발병 후 관리를 통해 병 진행 속도를 조절할 수도 없다. 그냥 누구에게나 하루아침에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이다. 척수손상 환자가 되었다고 해서 수명이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일생을 휠체어와 보호자에 의존해서 살아가야만 하는 질환이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질환이 아닐 수 없다.

척수손상으로 인해 환자는 신경의 단절뿐 아니라 사회로부터의 단절도 경험하게 된다. 직장, 학교, 운동, 여행 등등 그냥 당연히 내 삶이었던 모든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뼈아픈 단절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척수손상이 가장 안타까운 난치성 질환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현재 병원에서 척수손상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는 치료제는 없다. 고용량의 스테로이드 제제인 메틸프레드니솔론을 급성기에 사용되기는 하지만, 효과는 매우 미미하고 부작용은 커서 실제 처방되지 않는 실정이다. 그래서 나 같은 연구자들의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척수손상 치료제는 어떻게 개발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척수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다. 척수 안에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연결되고 기능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손상을 받았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각각의 이벤트에 대한 대책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척수를 구성하는 세포는 크게 4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신경세포 (neuron)이다. 신경세포는 뇌의 명령을 받고 몸으로 전달하거나 몸의 감각 정보를 받고 뇌로 전달하는 모든 것을 총괄한다. 신경세포에서 신경신호를 전기신호로 바꾸어 전달하게 될 때 신경세포에서 신호가 나가는 통로가 축삭이다. 축삭은 송전탑에서 만든 전기가 이동하는 전선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두 번째는 희소돌기아교세포 (oligodendrocyte)이다. 희소돌기아교세포는 미엘린수초 (myelin sheet)를 만들어서 축삭을 감싸는 역할을 한다. 미엘린 수초는 전선을 감싸고 있는 피복과 같다. 신경전기신호가 새지 않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세 번째는 성상교세포 (astrocyte)이다. 성상교세포는 신경세포 주변에서 영양공급과 밸런스 유지를 도와준다.

네 번째는 소교세포 (microglia)이다. 소교세포는 척수 내 면역을 담당한다. 뇌와 척수에는 면역세포가 없다. 면역세포는 혈액 내 백혈구인데 뇌와 척수는 혈액-뇌 장벽으로 보호되고 있어서 백혈구 등이 들어올 수 없는 구조를 가진다. 대신 이 소교세포가 면역작용을 하여 혹시나 발생되는 이물질이나 이상반응을 감지하고 처리하는 기능을 한다.

척수가 손상을 받으면 이 네 가지 세포는 서로 다른 운명을 맞이한다.

신경세포와 희소돌기아교세포는 세포사멸 프로그램이 작동되어 죽게 된다.

이와는 달리 성상교세포와 소교세포는 죽지는 않지만, 활성화가 되어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세포 크기도 커지고, 발생된 비상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여러 물질을 분비하며 대처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도한 활성이 오히려 척수의 회복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자, 우리는 척수손상이 발생했을 때 척수 내 세포들이 겪게 될 운명을 파악해 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치료제 개발을 위해서는 하나하나 그 운명을 되돌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신경세포와 희소돌기아교세포의 죽음을 막고, 성상교세포와 소교세포의 활성을 막는 방법.

그게 뭘까?

이 질문에서부터 치료제 개발연구는 시작된다.

 

스토리텔링으로 만나는 내 연구 닥터리 (바이오벤처)

 


20년째 척수손상 치료제 개발 중인 엄마 과학자입니다. 논문이 아닌 스토리텔링으로 척수손상의 병리 현상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의학약학 닥터리 (2022-12-02)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470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