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 상어의 페니스는 어떻게 진화했나 - 진화발생생물학적 관점에서
상어, 가오리, 홍어와 같은 연골어류의 수컷은 기각(clasper)이라는 생식기를 진화시켰다. 기각이란 수컷의 배지느러미(pelvic fins)에 있는 한 쌍의 페니스 유사 기관(penislike organs)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연골어류의 수컷들은 음경이 두 개 달렸다고 보면 된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에서, 저자 존 롱 박사(고생물학)는 많은 지면을 수컷 상어의 기각과 성행위를 해설하는 데 할애했다.
상어의 성행위 장면을 가까이서 관람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가까이 가면 위험하다. 그러나 LA 롱비치에 있는 퍼시픽 아쿠아리움과 같은 현대식 수족관에 가면, 상어와 가오리 등을 지근거리에서 마음껏 관찰할 수 있다. 심지어, 때로는 그들이 당신의 머리 위로 헤엄쳐 지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리 점잖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처럼 멋진 장소에서 성(性)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맹인이 아닌 이상, 수컷 상어의 양쪽 배지느러미 뒤에 매우 길쭉한 물건이 하나씩 매달려 있는 것을 쳐다보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길쭉한 물건들을 ‘기각’이라고 부르는데, 과거에는 ‘짝짓기할 때 암컷을 꼼짝달싹하지 못하도록 붙드는 보조기관’쯤으로 여겼었다. 그러나 거듭된 관찰연구 결과 그것은 단지 ‘암컷을 붙잡는 보조기관’이 아니라 어엿한 삽입기관(intromittent organ), 즉 암컷의 몸 속 깊숙이 삽입되어 정포(spermatophore)를 전달하고 나오는 생식기관인 것으로 밝혀졌다. 쉽게 말해서 그것은 수컷의 배지느러미 뒤에 부착된 한 쌍의 페니스라고 볼 수 있다.
상어를 비롯한 연골어류들의 짝짓기 행동은 종(種)마다 매우 다르고, 어떤 경우에는 매우 터프하기도 하다. 기각과 배지느러미의 해부학적 구조 역시 종마다 다르다. 예컨대 은상어와 퉁소상어 등의 전두류(Holocephali)는 기각이 머리 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머리에는 ‘기각 비슷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이것을 촉수(tentaculum)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연골어류의 생식기 형태와 짝짓기 패턴은 기본적으로 대동소이하다고 할 수 있다.
상어의 기각을 해부해 보면 길다란 연골막대로 이루어진 관(tube) 모양을 하고 있고, 이 연골은 배지느러미 내부의 골격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어가 성숙해감에 따라 기각의 연골에 탄산칼슘 결정이 축적되면서 석회화가 진행된다. 석회화된 기각은 단단하고 강력해진다. 사실, 기각의 강직도(rigidity)는 상어의 나이를 가늠하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다. 예컨대 백상아리 수컷의 경우 몸 길이가 3.5m, 기각의 길이가 40~45cm인데, 기각을 만져 보면 매우 딱딱하다.
상어의 기각은 포유류의 페니스와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보면 된다. 평소에는 고무처럼 부드럽고 탄력이 있지만, 그 속에 혈액이 충만해지면 단단하게 발기한다. 성숙한 기각은 완벽한 방향전환이 가능해, 암수 상어가 얼굴을 마주보며 정답게 사랑을 나눌 수도 있다. 그런데 망망한 바다에서 짝짓기를 오래 계속하다 보면, 삽입된 기각이 암컷의 생식기에서 빠져나오지 말란 보장이 없다. 이런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 기각의 끝부분에는 작은 갈고리나 가시가 돋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들은 외부의 비늘이 변형되어 생성된 것으로 보인다.
상어, 가오리, 전두류의 수컷은 모두 기각을 갖고 있지만, 머리에 ‘촉수’라는 이름의 부속 성기(accessory sexual organ)를 가진 것은 전두류밖에 없다. 초승달 모양으로 생긴 촉수는 교미를 돕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혹자들은 이것을 ‘머리에 달린 페니스’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건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촉수가 암컷을 유혹하거나 짝짓기 자세를 바로잡는 데 사용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 역시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전두류는 워낙 프라이버시에 민감해서, 야생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한 번도 들킨 적이 없다.
상어의 성행위를 가장 잘 기술한 사람은 하와이 대학교의 팀 트리카스 박사다. 그는1985년 발간한 책에서, 흰지느러미암초상어(Triaenodon obesus)의 성생활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그의 친절한 설명을 들어 보기로 하자: “먼 발치에서 암컷을 발견한 수컷 상어는 일단 암컷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암컷의 자태에 마음이 끌리면, 잠깐 동안 작업를 걸다가 이내 암컷의 목과 가슴지느러미를 깨문다. 입을 크게 벌린 다음, 가슴지느러미로 암컷을 붙잡아 자신의 입 안으로 – 마치 삼킬 것처럼 – 집어넣기도 한다. 전희를 끝낸 두 마리의 상어는 머리를 해저에 대고, 물구나무를 선 상태로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수컷은 어느 틈엔가 발기한 기각을 암컷의 생식기에 삽입하기 시작한다.” 흰지느러미암초상어의 성행위는 몇 분 만에 끝난다. 그러나 시간이 짧다고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전희가 서투른 수컷은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심사가 뒤틀린 암컷은 종종 수컷의 이마나 등지느러미를 깨물어 끔찍한 흉터를 남기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수컷 상어의 구애 및 짝짓기 행위가 때로는 매우 거칠게 진행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수컷의 성격이 까칠할 거라고 속단하지는 마라. 그건 성격 상의 문제라기보다는 신체특성 상의 문제다. “암컷 상어의 피부는 매우 두꺼워, 격렬한 몸짓을 하지 않고서는 기각을 삽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청상아리(Prionace glauca)의 복부(배지느러미 뒷부분)를 예리한 칼로 갈라 관찰한 바에 의하면, 암컷의 살갗은 비슷한 체구의 수컷보다 약 2배 두껍다고 한다. 일처다부제(polyandry)를 영위하는 남방 노랑가오리(Dasyatis americana)의 경우, 암컷은 짧은 시간에 여러 마리의 수컷과 연달아 교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암컷이 몸을 뒤집어 수컷과 마주보는 자세로 교미하며, 지속시간은 20초 미만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상어를 비롯한 연골어류 수컷의 기각의 생김새와 용도에 대해서는 나름 상당한 연구결과가 축적되어 있다. 하지만 진화발생생물학(이보디보) 관점에서 바라본 기각의 진화과정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수수께끼가 풀렸다. "성호르몬이 Shh(Sonic hedgehog)라는 유전경로를 조절함으로써 기각을 진화시켰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연구진은 작은 가오리(Leucoraja erinacea)의 알을 실험실에서 부화시킨 다음, 배아발생 과정을 면밀히 관찰했다. 암컷과 수컷의 배아를 비교해 보니, 기각은 배지느러미 발생 후기에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기각이 형성되는 지느러미 부분에서 Shh 경로의 활성화 상태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Shh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중에서도 척추동물의 부속지(appendage) 발달을 추동하는 역할을 한다.) 분석 결과, 수컷은 Shh의 활성화기간이 암컷보다 1개월 더 긴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이 수컷의 지느러미에서 Shh의 활성을 억제하자 기각의 발생이 감소했고, 암컷의 Shh 활성을 촉진하자 - 마치 수컷처럼 - 기각이 생겨났다. 연구진은 이상의 연구결과를 정리하여, 지난 달 <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수컷의 Shh 스위치를 오랫동안 켠 주범이 무엇인지를 연구했다. 그 결과 성호르몬인 안드로겐이 핵심 용의자로 떠올랐다. "상어, 가오리, 홍어와 같은 연골어류들은 진화 과정의 어느 시점에서 성호르몬을 이용하여 부속지 발생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조절하는 방법을 진화시켰다. 그리하여 Shh의 스위치를 오랫동안 켬으로써 수컷의 성기발생을 촉진한 것"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진에 의하면, 이번 연구결과는 척추동물의 페니스가 진화한 과정은 물론, 고생대 데본기에 살았던 판피어류(placoderms)의 기각이 발생한 과정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한다. 판피어류는 오래 전에 멸종한 어류로, 온 몸이 딱딱한 껍질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존 롱 박사에 의하면 척추동물 최초로 성기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 참고
1. 존 롱, 『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 pp. 52~57
2. Katherine L. O’Shaughnessy, Randall D. Dahn & Martin J. Cohn, "Molecular development of chondrichthyan claspers and the evolution of copulatory organs", Nature Communications, 14 April 2015.
※ 기사 출처: http://news.sciencemag.org/biology/2015/04/how-shark-penises-evolved
원문출처 ; http://news.sciencemag.org/biology/2015/04/how-shark-penises-evolved
KISTI 미리안 『글로벌동향브리핑』 2015-05-05
http://mirian.kisti.re.kr/futuremonitor/view.jsp?record_no=256109&cont_cd=G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