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특집] ‘냉탕과 온탕’ 담금질 들어간 글로벌 업계
3가 독감백신 반전부터 항암제 수술전후 보조요법의 재평가까지
[메디칼업저버 양영구 기자] 2024년 갑진년(甲辰年)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일상으로 돌아온 2024년은 글로벌 제약업계가 다시금 본연의 업무인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고, 새로운 데이터를 발표하거나 상용화해 시장에서 자리잡기 시작한 한 해였다.
제약업계의 사명은 신약 개발을 통한 환자 치료인 만큼 많은 의약품이 시장에 나와 돌풍을 일으켰고, 질병 치료 패러다임을 바꿨다.
비단 치료 패러다임의 변화는 신약의 출시가 대표적 이유는 아니다. 그동안 활발하게 사용된 의약품의 효능 검증 절차가 이뤄지기도 했고, 환경 변화로 새로운 국면을 맞기도 했다.
본지는 2024년 글로벌 제약업계를 되돌아보게 만든 사건 5가지를 꼽아봤다.
① ‘냉탕과 온탕’ 담금질 들어간 글로벌 업계
② 명암 엇갈린 약물들
3가 독감백신의 반전
2024년은 3가 독감백신에게 호재의 해였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24년 남반구 인플루엔자 시즌 입찰 백신을 기존 4가에서 3가로 전환할 것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2024~2025년 북반구 인플루엔자 시즌 입찰도 기존 4가에서 3가 백신으로 전환됐다.
과거 인플루엔자 백신은 3가 백신으로 공급돼 왔다. 하지만 2012~2013년 북반구 인플루엔자 시즌과 2013년 남반구 인플루엔자 시즌부터 4가 백신으로 전환됐고, 최근까지 4가 백신이 공급돼 왔다.
이 때문에 오는 2025년이면 3가 인플루엔자 백신은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2024년 3가 인플루엔자 백신은 기사회생했다.
WHO는 2020년 3월 이후 야마가타 계통 바이러스가 검출된 적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4가 백신에서 야마가타 계통 항원을 제외한 3가 백신으로의 공급을 권고했다.
WHO 인플루엔자 백신 구성 자문위원회는 “2020년 3월 이후 야마가타 계통 바이러스의 자연 발생이 확인된 바 없어 감염 가능성이 낮다고 봐야 한다”며 “인플루엔자 백신에 야마가타 계통 항원을 포함시키는 것은 더 이상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WHO 권고에 따라 글로벌 제약업계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CSL 시퀴러스는 2024~2025년 인플루엔자 시즌 동안 모든 백신에서 야마가타 계통 항원을 제외한다고 발표했다.인플루엔자 예방은 백신 공급의 민첩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유다.
GSK도 2024~2025년 인플루엔자 시즌부터 4가 인플루엔자 백신 대신 3가 백신으로 전환해 공급할 방침이다. WHO와 글로벌 제약업계의 이 같은 움직임은 국내 기업들도 움직이게 했다.
지난 9월 질병관리청은 2025~2026년 필수예방접종 국가지원사업(NIP)의 인플루엔자 백신을 3가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GC녹십자, SK바이오사이언스 등 국내 기업도 WHO와 질병관리청 결정에 따라 기존 공급하던 4가 인플루엔자 백신에서 3가 백신으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췌장암 신약 10년만의 등장
10년 만이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올해 2월 입센 오니바이드(성분명 이리노테칸 리포솜)를 췌장암 1차 치료옵션으로 허가했다.
2013년 젬시타빈+아브락산 허가 후 처음이다. 오니바이드는 췌장암의 가장 흔한 유형이면서도 치료옵션이 현저히 부족했던 췌장 선암에 사용할 수 있는 신약으로 주목받고 있다. 오니바이드는 이리노테칸을 봉입화(encapsulazation)해 체내 전달 기술을 높인 게 특징이다.
췌장 선암의 표준치료는 젬시타빈+아브락산 병용요법이다. 2013년 당시만 해도 젬시타빈 단독요법에 비해 전체생존(OS) 등 주요 효능 평가에서 의미 있는 개선을 보이며 혁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10년 만인 올해 췌장 선암 치료의 혁신 타이틀은 오니바이드로 옮겨갔다.
오니바이드는 2017년 임상3상 NAPOLI1 연구를 통해 표준치료에 실패한 전이성 췌장암 2차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다. 이후 임상3상 NAPOLI3 연구로 1차 치료제로 입성했다.
연구에는 이전에 항암화학요법을 받은 경험이 없는 전이성 췌장 선암 환자 770명이 포함됐다. 이들은 오니바이드+옥살리플라틴+류코보린+플루오로우라실 병용요법 투여군(NALIRIFOX군)과 젬시타빈+아브락산 투여군(표준요법군)에 1:1 무작위 배정돼 치료를 받았다.
연구 결과, NALIRIFOX군은 표준요법군에 비해 사망 위험을 16% 낮추면서 1차 목표점을 충족했다(95% CI 0.71~0.99; P=0.0403). OS 중앙값은 NALIRIFOX군 11.1개월, 표준요법군 9.2개월이었다.
주목할 부분은 사망 위험 16% 개선에도 1차 치료옵션으로 허가됐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항암제의 경우 사망 위험을 20% 이상 감소시키지 못하면 유의미하지 않다고 간주한다. 그럼에도 FDA가 허가한 이유는 췌장암 치료옵션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연구를 진행한 미국 UCLA대학 Zev A. Wainberg 박사는 “그동안 전이성 췌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됐지만 목표점을 달성하지 못했다”며 “NALIRIFOX 요법은 전이성 췌장 선암 환자의 OS를 개선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믿었던 수술 전후 보조면역요법의 배신?
항암 분야에서 대세로 자리한 수술 전후 보조면역요법의 효능이 올해 도마 위에 올랐다. 폐암을 중심으로 면역항암제를 수술 전후 보조요법에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암종에서 활용되고 있지만, FDA가 효능을 지적하면서 변화가 감지됐다.
FDA는 수술 전과 후 면역항암제를 이용한 보조요법을 추가하는 것을 두고 효능 차이를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아스트라제네카 면역항암제 임핀지(성분명 더발루맙)에서 시작됐다. 임핀지는 임상3상 AEGEAN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절제 가능한 성인 2~3b기 비소세포폐암 환자 적응증 허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FDA는 해당 연구 설계로는 환자가 수술 전과 후 시점 모두에서 임핀지의 효과를 얻었는지 알 수 없다고 봤다. 수술 후 임핀지를 보조요법으로 투여하면 심각한 부작용과 독성에 노출될 수 있고, 임상적 이점이 없을 수 있어 잠재적 과잉치료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를 두고 FDA는 임핀지 사용 시기에 따른 효능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것을 요구했고, 더 나아가 모든 암종에서 수술 전후 모두 면역항암제 보조요법을 추가하는 것과 각 단계에서 면역항암제를 추가하는 치료법 사이의 효능 차이를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연구를 설계해야 한다는 주문까지 이어졌다.
이 같은 FDA 결정은 BMS 옵디보(니볼루맙)의 절제 가능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인 CheckMate-816 연구 결과와 비교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국내 학계는 반응이 엇갈렸다. 일각에서는 FDA 주장처럼 수술 후 면역항암제 보조요법이 과잉 치료의 위험을 높일 위험이 있다며 최적 투여기간을 연구하도록 권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암종마다 수술 전후 보조요법의 효과 차이는 다른 만큼 전체 암종에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주장이 맞섰다.
[송년특집]메디칼업저버 양영구 기자 입력 2024.12.23 0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