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지 못한 과학자의 삶] 예비창업패키지 사업계획서 쓰기
예비창업패키지 (줄여서 ‘예창’이라고 한다.)를 알게 된 건 정말 우연한 계기였다. 그전까지 나는 감히 내가 사업을 할 거라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기에 창업의 세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무했다. 다만, 꽤 오래전부터 앱을 만드는 데에 관심이 있었다. 제대로 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아이디어만 가지고 있는 딱 그 정도의 상태였다. 그러니 겁도 없이 단체 채팅방에 개발자를 구한다며 글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때 나의 말을 귀담아 들어줬던 친구가 몇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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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가 악화되어 실직한 이후로 나는 두문불출했다. 방에 처박혀서 이불 밖으로 나가기조차 큰 결심이 필요한 그런 상태가 한 달 넘게 계속되다가 서서히 예전의 컨디션을 회복을 하고 있었다. 그즈음에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내가 정신병으로 실직한 상태이며, 경력 공백이 길어지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등줄기가 저리며 온몸에 열이 올랐다. 내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오는 몸의 반응이다. ‘무얼 먹고살아야 하나’,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하나’ 등의 현실적인 고민을 하며 답답증을 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잘 지내냐는 안부로 시작한 인사는 아직도 앱 개발에 관심이 있냐는 물음으로 이어졌다. 무슨 상황인지를 물었다. 자신의 동생이 개발자인데, 이번에 팀으로 앱 개발을 시작하며 같이 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일전에 내가 앱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를 비쳤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연락을 준 것이다. 몹시 고마웠다. 바로 연락처를 전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상황을 찬찬히 설명했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단어가 있었다. 그는 ‘예창’을 준비한다고 했다. 이제야 고백한다. 나는 그때까지 ‘예창’이 뭔지 몰랐다. 하지만 대충 아는 척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들어보니 앱을 개발해서 사업을 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사업 아이템이 명확하지 않고, 수익 실현 방안에 대한 계획은 전무했다. 어쩌다 보니,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것들을 고려하시면 좋겠다는 조언을 하는 것으로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바로 ‘예창’을 검색해 봤다. ‘예비창업패키지’의 줄임말이었다. 그런데 이 ‘예비창업패키지’라는 것에 갑자기 회가 동했다. 좀 더 찾아보니 사업을 하겠다는 사람에게 나라에서 돈을 지원해 주는 사업이란다. 창업을 하겠다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도,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는 사업이 그렇게 많은지도 처음 알았다. 그야말로 별세계였다. 본래 추진력이 거의 없는 성격이지만, 한 번씩 난데없이 일을 저지르는 일이 있는데, 그 해에는 ‘예창’이 그것이었다.
사업계획서 접수 마감일까지 약 2주 정도가 남아있었다. 찾아보니 몇 년을 도전해서 성공한 사람도 있고, 몇 달 전부터 열심히 준비해서 합격한 사람도 있었다. 글을 근사하게 잘 쓰는 데도 합격하지 못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런 것을 한 번 해보는 데에 의의를 두자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예창을 신청할 때는 내 사업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선택해야 하는 것들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신청 분야다. 신청 분야는 일반 분야와 특화 분야로 나뉘는데, 그중 특화 분야에 소셜벤처가 있었다. 소셜벤처가 뭔가 하고 자세히 읽어보니 사회적 기업과 같은 말인 것 같았다. 원래 처음 예창을 신청하려 했을 때 사업 아이템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런데 ‘소셜벤처’ 분야에 대한 설명을 보자 바로 생각이 정리되었다. 우울증 환자의 회복을 위한 앱을 사업 아이템으로 하여 소셜벤처 분야로 지원하기로 했다.
사업계획서를 내고 심사자들이 평가를 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사항이 몇 가지 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창업자가 본인의 아이템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다. 우울증은 내가 십수 년째 함께해 온 지병이며, 그 과정에서 우울증에 대한 이해나 회복을 위한 시도에 대한 경험이 많았다. 정신과 치료도 다양한 곳에서 받았으며, 심리 상담 치료도 받은 적이 있다. 지독한 우울증을 앓으면서 사회생활을 해냈고, 성과도 많이 냈다. 그 과정에서 환자로써의 노하우가 많이 쌓였다. 무엇보다, 실직하고 공황장애로 칩거하는 동안, 시중에 나와있는 우울증 관련 앱들을 많이 찾아봤다. 뭐라도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서였는데, 내 상황에 도움이 되는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런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그 앱 아이디어였다.
우울증은 엄연한 질병이고, 따라서 이 병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 신경정신과 전문의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의 전문성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이것이 시중의 우울증 관련 서비스에 한계를 부여했다. 제공되는 서비스가 공급자의 시각에서 디자인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문성은 확보되었지만, 깊은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경우에 공감되는 포인트가 없었다. 거창한 상담 서비스나 반듯하게 갖춰진 명상 서비스도 좋지만, 우리는 더 사소하고, 작고,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어떤 활동이 필요했다. 여기서 ‘우리’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나는 수요자의 입장에서 디자인한 우울증 관리 앱을 만들겠다고 사업계획서에 썼다. 사업계획서의 주요 항목 중 ‘기존 서비스 (경쟁자)와의 차별점’을 기술해야 하는 단락이 있다. 이 부분은 심사위원이 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데에도 중요한 지표가 된다. ‘마인드카페’를 비롯하여 시중에 나와있는 걸출한 우울증 앱과 차별화된 포인트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수요자 입장’에서 만들어진 서비스라는 것이었다.
소셜벤처 분야의 주관기관인 벤처기업협회의 사업설명회에 참석해서 사업계획서 작성에 대해 궁금한 점을 해소했다. 우울증 관련 앱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유경험자라는 강점 외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나는 생물전공자다. 앱 개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컴퓨터 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고맙게도 내 요청을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사업계획서에 기술자문위원이 추가되었다. 알고 있는 인맥을 총동원했다. 치료를 받았던 신경정신과 선생님들도 자문위원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나에게 부족한 전문성을 확보했다. 그 밖에도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나는 사업계획서를 완성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VC로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 보여주고 ‘잘 썼다’는 평가를 받고, 원서 접수 마감일 하루 전에 미련 없이 지원을 마쳤다.
잊고 지내고 싶었지만, 매일 될까 안될까 생각하며 예창과 관련해서 올라온 영상이나 글을 읽었다. 사업계획서를 준비할 때는 시일이 넉넉하지 않아서 그런 자료들을 많이 보지 못했다. 지원서를 등록하고 나서 찾아보니 점점 더 자신이 없어졌다. 이런 류의 지원서를 쓸 때 ‘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나는 대부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업계획서 작성을 지도하는 강사가 있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합격을 위한 성공 공식이 예창에도 있었고, 내 사업계획서에는 그런 것이 반영되지 않았다. 그래서 합격은 어렵겠거니, 했지만, 결국 서류 심사에 합격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경쟁률이 꽤 높았다고 한다. 이따금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들을 보게 된다. 그러고 나면 그대로 따르지 않으면 망할 것 같은 불안이 생긴다. 경험상, 주최 측의 작성 가이드를 벗어난 것이 아니면, ‘이렇게 해서 합격할 수 있는 것’도, ‘그렇게 하지 않아서 탈락하는 것’도 딱히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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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암바사맨(필명)) 등록일2024.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