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지 못한 과학자의 삶] 연구 커리어는 끝났고
“너, 다시는 연구할 생각 하지 마라.”
논문 서브미션을 마치고 지도교수님은 학위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 물으셨다. 나는 학위를 받으면 포닥을 나가서 연구를 계속하러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교수님은 다시 생각해 보라고 재차 말리셨다. 리비전을 하던 어느 날, 교수님은 내 진로에 대해 질문이 아닌 답을 내리셨다. ‘네가 실패한 것을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며 지도 교수님은 다시는 연구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못 박아 말씀하셨다. 관뚜껑에 못이 박혔고, 어릴 적부터 이어온 과학자가 되겠다던 내 꿈은 그렇게 묻혔다.
사실 그즈음에는 나 스스로도 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까, 연구를 계속해야 하나 확신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교수님의 말씀이 쐐기를 박았다. 정말 끝이었다. 마이너 리비전이 끝나면 디펜스만 남아있는데, 내가 가려했던 길은 막혔다. 이제 무엇을 위해 학위를 받는지 알 수가 없었다. 관성이었다. 꾸역꾸역 학위 과정을 끝까지 마무리하고, 디펜스가 끝나자마자 아무 계획도 없이 바로 연구실을 떠났다.
지금에 와서 얘기지만, 그게 썩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나 역시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계속해서 연구를 하겠다는 마음은 어쩌면 내 진심이 아니라 반발심으로 인한 아집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건 졸업하고 한참이 지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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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졸업을 앞두고 나는 일련의 경험들로 인해 자존감이 박살 나있었다. 누군가는 그 상태가 되어야 박사 졸업을 할 준비가 된 거라고 했지만, 글쎄. 나는 세상의 그 누구도 그런 상태가 되는 경험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때 나는 취업 준비도 아예 하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지도교수가 공인한 실패한 박사였고, 내 학위는 가치가 없는 가짜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무서웠다.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연구실로 레퍼런스 체크가 가면 합격이 취소될 거 같았다.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대기업이나 정출연 연구소 같은 곳은 내가 감히 도전할 수 없는 곳이었다.
너무 힘들었다. 박사 졸업을 했는데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그러던 와중에 지인으로부터 본인 회사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회사 규모는 작았고 상당히 박봉이었다. 주변에서 염려와 만류의 말이 들렸다. 그때마다 나는 다녀보지 않은 회사를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대변하며 취업 결정을 합리화했다. 그렇게 말리던 사람들을 억지로 설득하고 나는 그 회사에 입사했다.
다른 곳에 갔다면 어땠을지는 모르겠다. 그런 가정은 의미가 없다. 다만 그 회사에 입사를 한 것이 금전적인 면을 제외하면 결과적으로 나에게 꽤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그곳에서는 나는 가장 유능한 직원이었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역량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대표가 외부에 좋은 직원을 영입했다고 자랑을 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도 교수님 앞에서 나는 무능하고, 인격적으로도 문제가 있어서 사회생활도 제대로 못 할 불량품이었다. 박사 학위를 주긴 하는데, 어디 가서 그거 쓸 생각은 말라는. 그래서 나는 졸업을 하고서도 몇 년 동안이나 스스로 박사라고 말하려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모든 것이 달랐다.
나는 회사의 기술 자료들을 빠르게 습득했다. 늘 읽거나 쓰던 논문들의 형식에 비하면 회사에서 사용하는 연구 자료들은 굉장히 단순하고 쉬웠다. 사람들은 다들 친절하고 상냥했다. 분명 내가 인격적인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웬걸. 나는 부서 직원들과 두루두루 잘 지냈다. 교수님이 틀린 거였다. 나는 당신이 말했던 것처럼 무능한 불량품이 아니었다. IF가 높은 논문을 써드릴 재주는 없었을지 모르지만, 작은 논문 한 편쯤은 될 수 있는 연구를 구상하고 제안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
나는 그때 왜 그 한 사람의 평가에 매몰되었을까. 연구실에 있을 때는 내 하늘을 모두 덮고 있던 교수님이, 조그마한 중소기업의 월급쟁이가 되고 나니 나랑 똑같은 크기의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그 사람의 평가는 그저 내 인생의 아주 specific 한 부분에만 적용되는 평가일 뿐이었다. 그걸 왜 몰랐을까. 왜 나까지 나를 그런 사람이라고 굳게 믿었을까.
돌이켜 보면, 내게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연구실의 선배든, 후배든, 연구실 밖의 친구들이든, 다들 나에게서 이런저런 장점들을 발견하고 얘기해 줬다. 하지만 나는 그 이야기들은 하나도 듣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정말 그러한가?’라는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
우스운 일이다. 연구를 한다는 사람이 왜 의심을 하지 않았을까. 누군가로부터 어떤 사실에 대한 주장을 들었다면 그 주장을 받아들이기 전에 응당 타당성을 검토해야 한다. 실험은 다각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연구를 하며 가장 경계한 것이 편향을 갖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대상으로 한 주장에 대해서는 엄청난 편향을 가지고 단 한 명의 주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였다. 마치 종교처럼.
나는 이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안다. 내가 입학할 때와 비교해서 졸업할 때까지 학위 과정을 무사히 마친 동기들의 수는 1/3 정도다. 다들 중간에 포기하고 떠났다. 그들이 떠난 이유는 대부분 사람으로 인한 상처였다.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지도교수를 바꾸는 것, 나를 계속해서 미워하고 비아냥대며 괴롭히는 사람을 바꾸는 것, 내 결과를 자꾸 훔쳐가는 사람의 심성을 뜯어고치는 것. 그런 건 불가능하다. 다만 그런 이유들로 ‘내가 괜찮은 사람인가’에 대한 의심이 들고, 스스로를 미워하기 시작했다면 다시 돌아보기를 바란다. 내가 편향된 시선으로 나를 향한 평가 데이터들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연구자가 되는 과정에서 필수로 배운 것 아닌가. 데이터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취합하여 타당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 학위 과정 동안은 그것을 스스로에 대해서도 적용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보았을 때에도 나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면 고치면 된다. 문제 해결의 시작은 문제의 인식이라는 것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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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암바사맨(필명)) 등록일2024.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