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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지 못한 과학자의 삶] 성공하지 못한 과학자들에게

산포로 2024. 6. 25. 08:28

[성공하지 못한 과학자의 삶] 성공하지 못한 과학자들에게

 

내가 석박통합 과정으로 입학했을 때 함께 입학한 동기들의 수는 50명 남짓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학위 과정에서 중도하차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박사 학위를 무사히 받고 졸업한 동기는 채 스무 명이 되지 않는다. 나는 학위 기간 내내 동기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다. 소위 말하는 인싸였다. 그래서 개개인의 사정들에 대해 들을 일이 많았다. 친하게 지내던 동기가 언젠가부터 시들시들 말라가기 시작한다. 웃음에 물기가 없다. 바삭하니 꼭 사람이 동결건조된 것 같다.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괴로움을 토로하는 일이 잦아지다가, 어느 시점부터 그조차도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래도 이따금 마주칠 때마다 ‘우리 같이 힘내자’며 서로를 격려한다. 그리고 어느 날, 한 잔 하자며 불러서는 청천벽력 같은 이별 통보를 한다. 포기하고 나간다는 이야기다. 함께 입학해서 기숙사 룸메이트로 지내던 가장 친한 동기를 시작으로 나는 그 이별을 해마다 숱하게 겪었다. 처음에는 온갖 감정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영향을 받았지만, 어떤 이별은 익숙해지는 게 가능하기도 한가 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떠나는 동기가 생기면 ‘현명한 선택’을 했다며 축하해 줬다. 그렇게 자조적인 농담들로 낄낄 대며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숙취에 비척대며 연구동으로 향했다. 

 

학위 내내 이런 일을 겪으며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위 과정의 완성 여부는 개개인의 역량과 무관하다는 사실이다. 무난히 학위를 마치고 박사를 받은 동기 중에는 인성이 개차반이고 실력은 형편없는 사람이 있다. 성격도 좋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으로 일을 잘해서 모두가 가장 먼저 졸업할 것이라고 말했던 동기는 모두가 상상도 못 하는 타이밍에 그만뒀다. 애석하게도 학위를 받느냐 마느냐의 여부에 운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학위 과정을 무사히 완수하기 위해서는 운이 굉장히 중요하다. 지도교수를 잘 만나고, 연구 주제를 잘 받고, 연구실 분위기가 무난한 것. 이것만 해도 엄청난 어드밴티지가 생긴다. 요즘은 좀 나아졌는지 모르겠다. 내가 입학할 때만 해도 연구실과 지도교수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가 어려웠다. 가감 없이 사실대로 얘기해 줄 수 있을 만큼 친한 사람이 그 연구실에 있으면 모를까, 우리 연구실에 올지도 모를 학생이 보낸 메일에 연구실 분위기를 사실대로 말해줄 사람은 없었다. 지도교수는 더하다. 입학하기 전에는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기 어렵다. 대외적으로 보이는 모습 또한 믿을 것이 못된다. 그렇다고 가서 앞으로 내 지도교수가 될지도 모를 사람에게 이것저것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학을 갓 졸업하는 나이에 이런 일들을 노련하게 하기도 어렵다.

 

최대한 알아보았고, 처음에는 최고의 선택을 했다고도 생각했지만 결국 나는 뽑기에 실패했다. 학위 과정에서 중도하차 한 동기들도 대부분 그랬다. 성실하지 않은 것도, 성적이 나쁜 것도, 성격이 모난 것도 아니었다. 연구가 막혀서 그만두는 경우는 없었다. 누군가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며 떠났다. 그들이 선택한 곳은 그들이 연구자로 성장하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그들은 선택한 스승으로부터 적절한 가르침을 기대할 수 없었다. 나 또한 그랬다. 돌이켜보면 도대체 나는 왜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버텨낸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지도교수의 평가대로 실패한 과학자인가? 그렇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학위 과정 중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졸업 요건을 간신히 턱걸이로 채우고 졸업했다. 그 이후에는 연구와는 무관한, 아주 살짝 발만 걸친 곳에서 커리어를 이어갔다. 졸업하고 10년이 다 되도록 내 이름이 적힌 논문은 단 한 편도 더 나오지 않았다. 연구자로서 아무런 성과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 나 자신이 연구에의 열의를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생명의 신비를 밝히고, 노벨상을 받을 만큼 중요한 발견을 하겠다며 야심 차게 학위를 시작할 때의 마음은 오간데 없다. 오히려 과학에 반발심마저 생겼다. 여전히 네이처 뉴스레터 따위를 구독하긴 하지만, 미묘하게 고까운 마음이 있다. 특히,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순수 학문으로서의 과학을 말하는 사람들을 더 날카롭게 보게 되었다. 연구 자체의 중요성과 성취를 그 연구를 하는 사람과 분리해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연구 성과에 감탄하기에 앞서, 저 사람은 좋은 PI일까, 저 연구는 실험실의 학생들을 불행하게 만들어서 얻어낸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들을 먼저 한다. 내가 다시 학계로 돌아갈 리는 없다. 과학자를 독립적인 연구를 하며 논문을 발표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면 내 성취는 0에 무한히 가깝고, 분명 과학자로서는 실패했다. 

 

이런 뼈 아픈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한때는 내 인생의 전부였던 ‘과학자로서의 성취’가 이제는 그저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회사에 다니고, 사업을 준비하고, 대외 활동을 왕성하게 하면서 나는 내가 여러 가지 환경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태함을 알게 되었다. 그 각각의 환경에서의 나는 모두 다른 평가를 받았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가 어느 한 시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세상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 어느 환경에서의 나도 온전히 완벽하고, 철저히 쓸모없지는 않았다.

 

내가 잘하는 것이 있다. 학위 과정 동안 과학자로서 훈련받은 기술들을 더 나은 삶을 위한 기술로 적용하는 거다. 학위 내내 수도 없이 많은 그래프를 그렸다. 하나의 동일한 데이터 세트를 가지고 그래프를 이리도 그려보고, 저리 바꿔서도 그려봤다.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더 예쁘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y축에 수를 표현하는 다양한 단위들을 적용해보기도 했다. 혼재한 데이터들을 적절한 그래프로 잘 그려냈을 때, 그 데이터들은 더 이상 숫자 뭉텅이가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결과가 되고, 유의미한 발견이 된다.

 

이걸 인생에도 똑같이 적용해 본다. 내 삶의 데이터들을 모아 본다. 산재한 데이터들 중에는 그럴싸한 것도 있고, 쓸모없어 보이는 것도 있다. 그래프를 그린다고 상상해 본다. X축과 y축을 무엇으로 둘 것인가.  그 선택에 따라서 무의미하게 산재한 데이터들로부터 유의미한 가치가 있는 결과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가령, 나의 경우를 예로 들면, 연구와는 무관한 의전 챙기기는 학위 과정을 기준으로 보면 쓸모없고 비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회사나 사회생활을 기준으로 보면 나를 유능한 사람으로 평가받게 하는 꽤 쓸모 있는 스킬이다. 그래프를 그리는 방법은 학위 내내 배웠으니, 내 삶을 두고 그런 그래프를 그리는 건 훨씬 쉬울 거다. x축을 어떻게 설정했을 때, 그리고 y축을 어떻게 설정했을 때, 나의 삶의 데이터가 유의미한 결과가 되는지, 생각해 본다. 그 결과로부터 further study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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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암바사맨(필명)) 등록일202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