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지 못한 과학자의 삶] 박사님이 영업을 어떻게 그렇게 잘하세요?
“박사님이 영업을 어떻게 그렇게 잘하세요?”
내가 입사한 회사는 B2B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였지만 그 고객사의 규모가 개인이나 다름없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클레임은 그들로부터 발생했다. 그 사실을 아직 모르고 즐겁게 회사를 다니던, 수습 기간도 끝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내 자리의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자마자 온 사무실에 다 들릴 만한 고성이 들렸다.
다짜고짜 뭔가를 마구 따지고 있었다. 놀란 직원 몇 명이 내 자리로 왔다. 수화기를 가만히 들고 하는 말을 찬찬히 들어 보았다. 발송일과 배송일을 헷갈려서 생긴 문제였다. 물건이 도착하는 줄 알고 직원을 하루종일 기다리게 했는데 물건이 오지 않아서 낭패를 겪었다는 거다. ‘상식적인 문제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네, 네 하며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때까지 기다렸다. 한참을 씩씩 대며 일을 똑바로 하라고 소리를 지르다가 한참을 차분히 들어주니 좀 진정이 된 모양이었다. 그때부터 내 말을 시작했다. 우리 직원이 헷갈린 것 같다는 말로 당신 잘못이 아님을 짚어주고, 우리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문제를 먼저 이렇게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불편을 겪게 해 드려서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화기 너머의 고객은 조금씩 진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기분이 제법 좋아져서 앞으로도 잘해달라는 당부로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끊고 곁에서 대화를 다 듣고 있던 직원들이 나를 위로하기 위해 다가왔다. 하지만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 정도쯤이야. 아무 상처도 되지 않고 심박수조차 바꾸지 못한다. 정말 별일 아니었다. 이런 전화는 하루 종일 받아도 딱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이 사람들은 최소한 말이 통하기는 하지 않나.
그 일이 있은 후, 어느 날 같이 점심을 먹던 직원이 말을 했다.
“박사님은 보통 박사님이랑 다른 거 같아요.”
“무슨 말이세요?”
“아니 우리가 박사님이라고 하면 막 공부만 하시고 그럴 거 같은데, 저는 그런 전화받으면 막 심장이 뛰고 당황해서 울 거 같은데, 너무 능숙하셔서요.”
“하하.. 그런가요?”라고 겉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박사 과정을 했으니까 그게 쉬운 거예요.’
고객사와의 미팅을 하며 자주 들은 말이 있다.
“어떻게 박사님이 이렇게 영업을 잘하세요?”
그럴 때마다 멋쩍게 웃으며 속으로 생각한다.
‘박사니까요.’

다른 나라의 상황은 겪어본 적이 없어서 모른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한 과정에서 연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생각보다 적다. 연구 외적으로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애석하게도 상식 밖의 일들도 있었다.
연차가 낮을 때는 연구실 분위기를 파악하고, 눈치껏 일을 찾아서 하는 게 필요했다. 연차가 높아지면 랩장이 되어 연구실의 연구 외적인 일들, 가령 학생들 사이의 관계나, 시설, 설비 등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우리 연구실은 의전을 챙길 일이 많았다. 외국에서 손님들이 자주 오셨다. 그때마다 이 분들을 위한 일정표를 짜야했다. 공항으로 모시러 가고, 숙소를 예약하고, 미팅 일정을 어레인지 하고, 주말에는 관광 코스도 짜야했다. 적절한 식당도 섭외해야 했고, 가이드를 해야 될 때도 있었다.
학위 과정 동안 나는 내 부모보다 지도교수의 취향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선물은 반드시 교수님의 마음에 들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독특한 취향을 파악해서 해마다 돌아오는 여러 날들에 교수님을 실망시키지 않을 선물을 골라야 했다. 선물을 받은 교수님의 반응 하나에 연구실의 공기가 달라졌다. 내 부모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선물을 좋아하는지는 몰라도, 계절에 따라 상황에 따라 교수님이 좋아할 만한 선물은 기가 막히게 골랐다. 시간이 들어도 선물은 반드시 백화점에 가서 샀다. 온라인으로 살 수가 없었다. 색이나 디테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실 때에는 직접 교환하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무슨 색을 좋아하시는 지도 안다.) 선물을 드리면서 이 선물을 구매한 목적과 교수님께서 어떻게 사용하시면 되는지에 대해서 브리핑을 하고, 마지막에는 ‘안에 선물 교환용 영수증이 들어있으니 혹시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교환하시면 됩니다’라는 말을 꼭 붙였다. 이걸 몇 년을 했다.
회사 영업은 오히려 쉬웠다. B2B 사업을 했기에 계약서 상의 갑을이 있을지언정, 비즈니스로 만난 사이라 다들 서로를 존중했다. 규모가 큰 거래에서 대기업의 말단 직원들이 소위 말하는 갑질을 하는 경우는 종종 있어도, 최소한 직접 미팅을 하는 팀장급 직원이나 연구원들 중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부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었다. 게다가 나는 주로 해외사업부에서 일을 했기에 더욱 그런 경험이 없었다. 계약서는 굉장히 싸늘할지언정, 적어도 면대면으로 만났을 때는 정중하고 상냥했다.
솔직히 이런 부분에서 유능하다는 사실이 불쾌하다. 기분이 좋지 않다. 학위 과정 동안 그 쓸데없는 고생들을 이렇게까지 익혔다는 사실이 억울하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연구자로서 배운 것들 외에 몸에 익은 기술들이 내가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 꽤나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잘 지내고 있으니 긍정적으로 보려고 한다.
그 지독한 박사 과정을 해냈다면 연구 말고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훈련된 부분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걸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팔자에도 없는 기획과 세일즈, 마케팅 등의 일을 하고 있지만, 전혀 어렵고 낯설지가 않다. 나는 아직도 이 일을 잘하고 있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BRIC(ibric.org) Bio통신원(암바사맨(필명)) 등록일2024.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