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와 박사사이] 아… 이 작은 생물 따위에 질 거야?
전 편에서 말했듯이, 곤충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자연 다큐멘터리와 곤충도감 등 책과 영상을 통해 생물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예를 들어,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알에서 부화하는 장면, 애벌레가 번데기로 변하는 과정, 번데기에서 성충으로 탈피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짧게는 1시간에서 길게는 6~10시간 동안 졸지도 않고 주전부리를 먹으며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이 경험 덕분에 나는 성인이 된 후에도 나의 인내력에 대해 조금은 자부심을 가졌다.
2018년 5월, 처음으로 실험실에 발을 들여놓은 나는 애기장대라는 이름도 생소한 식물을 연구하게 되었다. 파브르 곤충기를 읽으며 곤충학자를 꿈꾸던 내가, 생명공학과에서 식물을 연구하게 될 줄이야. 그러나, 이 작은 식물에서 시작된 연구 여정은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힘든 도전이었다.
그래서 실험실에서 실험하는 것에 대해 막연한 걱정은 없었고, 오히려 자신감이 넘쳤다. 그리고 실제로도 좀 잘했다. 그런데 좋아서 하는 것과 해야만 해서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석사 과정 때는 나름 인내력이 있었는데, 박사 과정으로 넘어가면서 인내력은 바닥나고 악기(독기?)로 붙잡고 버티는 느낌이었다. 아마 그때가 나의 슬럼프였을지도 모른다(나중에 더 심도 있게 다뤄보겠다.).
힘든 일인 건 알고 있었고, 내가 원해서 선택한 길이니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기가 어려웠다. 그럴 때마다 위인전에서 읽었던 수많은 위인들의 선비정신을 떠올리며, 필자 본인이 조선시대 선비들과 달리 처자식이 없는 미혼이라는 점에 감사했다. 나 자신만 챙기면 된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2년 동안의 석사 과정은 누구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사 과정은 정말 큰 마음을 먹고 도전해야 한다. 훗날 나중에 진정 본인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하려면 생각할 필요 없다. 그냥 해야 한다(김연아의 아침 명언이 떠오른다.).

(ⓒ Screenshot from https://www.youtube.com/watch?v=Q0-MOh1nx44)
석사~박사를 지내면서 정말 수많은 노동을 한다. 공부를 엄청 하는 사람들(박사, 석사)이 막노동이랑 별반 차이 없는 노동을 진짜로 한다. 필자는 대학생 때 건설현장에서 친구와 같이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는데 솔직히 건설현장 잡부가 일이 더 편하다(진심으로).
실험실에서 '삽질'이라는 말이 정말 맞는 표현이다. 사수 형님이 시키는 대로 일하고, 알려주는 대로 실험을 해도, 처음에는 똑같이 해도 내 손으로 하면 실패했다. 이 것은 처음에 실험 배우는 연구자들이면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아니더라도 결국은 언젠가 “어? 왜 안돼?”).
필자의 친구들은 다양한 실험실에 있는데 가장 흔한 모델 생물은 쥐와 미생물이다. 쥐 연구실과 미생물 연구실보다 애기장대 식물 연구실의 좋은 점은 식물 배양실이 진짜 평온하고 힐링하기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험실 진학을 하고 좋았던 점 중에 하나다. 식물 연구실에서 대부분 연구하는 애기장대는 우리 인류가 사용하는 모델 생물 중 하나다. 실험을 위해 씨앗을 소독하고 무균 배지에 심는 과정은 생각보다 까다로운데. 첫 단계는 씨앗 소독이었다. 다들 보통 그냥 흙에 씨앗 뿌리고 키우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다 절차가 있다. 자칫하면 씨앗이 상할 수 있기에, 소독 과정은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작은 실험실에서 수많은 씨앗을 일일이 소독하는 일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무균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매번 장갑을 갈아 끼고, 주변을 70% 에탄올로 소독하며 UV를 틀어놓는 건 습관이 되고, 일회용 실험도구들을 철저히 새것으로 관리하는 것은 기본이다.
씨앗을 무균 배지에 심고 나면, 약 2주 후에 본격적인 실험이 시작된다. 이때가 가장 바쁜 시기이다. 씨앗을 심기 전에 암처리를 하는 2~3일간 어떤 실험을 할지, 그리고 각 실험 목적에 따라 다양한 처리를 해야 하고, 실험에 필요한 시약들을 그 기간 안에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는 단순한 일처럼 보이지만 상당한 인력과 시간이 소모된다(필자는 이때 드라이랩을 고려하지 않은 과거의 자신이 미웠다.). 작은 씨앗들이 자라면서 매일같이 그것들을 돌보고, 실험 데이터를 기록해야 했다. 모델생물이라서 엄청 단순할 줄 알았던 애기장대는 생각보다 까다로운 모델 생물이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고충이 있었다. 씨앗 소독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오염, 무균 배지에서의 곰팡이 발생, 그리고 실험 중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들. 하지만 이런 고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론상 곰팡이가 도저히 자랄 수 없게 철저하게 살균/무균 상태를 유지했을 때에도 곰팡이가 자라며, 곰팡이가 안 자랐던 프로토콜 그대로 해도, 챔버의 상태에 따라서 곰팡이가 창궐하기도 한다… 때로는 작은 실수 하나가 큰 문제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아갔다. 그리고 가장 좋은 해결책은 실패를 할 것이라는 가정하에 백업 실험의 백업 실험을 준비하는… 양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머리가 안 좋으면 몸이 고생한다…).
이런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도 애기장대를 연구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그 작은 식물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생물학의 기초 원리를 이해하고, 다양한 실험 기법을 익히며, 연구자로서의 성장을 경험했다. 무엇보다, 연구의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감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실험하는 대학원생들을 위해 하는 말은… 실험 실패를 통해 좌절하기보단 “질 거야?”라는 자기 세뇌 질문으로 자극받고 포기하지 말길… 그리고 고충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애기장대, 초파리, 대장균 등 같은 작은 모델 생물도, 그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과 배울 점이 숨어 있다. 연구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길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BRIC(ibric.org) Bio통신원(추락주의(필명)) 등록일2024.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