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과학상식 바로잡기] 탄 음식은 다 건강에 나쁠까?
우리나라는 전쟁을 겪고 난 후, 세계에서 어느 나라도 해내지 못한 경제 성장을 이룩한 나라다.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을 짓고 나면 생기는 눌은밥을 그냥 버리지 않았다. 먹을 것이 부족한 이유도 있었지만 밥알 한 톨도 귀하게 생각해서 그냥 버리지 않았던 생활습관이 선조들의 삶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밥솥에 붙은 누룽지는 주전부리가 넉넉하지 않던 시절에 훌륭한 간식이 되어주었는데 딱딱하게 건조된 누룽지를 그대로 먹기도 했지만 표면에 설탕을 뿌려 단맛을 강화해 먹기도 하였고, 물을 조금 부어 끓여서 먹기도 했다.
우리가 주식으로 이용하는 쌀에는 고형분의 90% 이상이 녹말로 구성되어 있는데, 쌀에 함유된 녹말은 다른 식품의 녹말에 비해 소화흡수율이 뛰어나고 소화기관에 자극을 덜 주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1] 누룽지는 밥솥 안쪽 표면과 맞닿는 밥알들이 타면서 만들어진다. 밥을 짓는 과정에서 쌀알 하나하나는 수분을 흡수하여 익어 가는데, 밥솥의 바닥에 위치한 밥알들이 가장 강한 열과 압력을 받기 때문에 탄화되면서 누룽지가 생기게 된다. 누룽지는 잘 익은 밥과 달리 많은 수의 탄소를 함유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밥솥에서 밥이 익을 때의 높은 온도로 인해 밥알 내부의 수분이 증발되는 반면, 탄소는 남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탄소가 많이 함유된 누룽지는 몸속의 각종 독소들을 해독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누룽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흰쌀밥은 갈색으로 변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아미노 카보닐 화합물 때문에 누룽지가 구수한 맛을 갖게 된다.
밥이 탄화되어 만들어진 누룽지의 녹말 성분은 저항성 녹말(Resistant starch) 가운데서도 RS3에 해당된다. RS3은 포도당의 소화흡수율을 지연시켜 혈당이 빠르게 오르는 것을 방지해 준다. [2] 따라서 누룽지를 먹는 것이 당뇨가 있는 사람에게 혈당을 조절하는 면에서 장점을 가질 수 있다. 또한 누룽지는 수분함량이 낮기 때문에 적은 양을 먹어도 오랫동안 포만감을 유지할 수가 있다. 건조한 누룽지가 몸속에서 수분을 흡수하여 부피가 커지기 때문에 포만감을 느끼는 것인데, 다른 한편으로는 포만감을 느끼기 전에 과한 양의 누룽지를 섭취하게 될 경우, 탄수화물을 과도하게 섭취한 것이 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올바른 방법으로 섭취할 경우, 다이어트식으로 활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비만 환자에게도 좋은 건강식품이 될 수가 있다.
누룽지를 물에 끓여서 먹을 때 생긴 물을 숭늉이라고 하는데, 숭늉에는 탄수화물 성분 가운데 포도당과 덱스트린이라는 단당류가 가장 많이 함유되어 있다. 이러한 단당류들은 소화기관에서 흡수가 잘 되기 때문에 소화불량이 있는 사람이 숭늉을 먹었을 때 속이 편하고 소화가 잘 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맵고 짠 음식을 먹은 후에 숭늉을 마시면 숭늉의 구수함이 입안을 중화시켜 개운함을 느끼게 해줄 수도 있다. 또한 숭늉에는 에탄올(C2H5OH)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서 항산화 작용을 하는데 누룽지의 항산화 활성은 수분 함량 및 갈변화 정도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3]
가마솥을 사용하던 과거에는 밥을 지을 때마다 조리 온도와 시간을 조절하기가 어려워 누룽지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현재 판매되는 전기밥솥은 어떤 쌀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조리 온도와 시간이 설정된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가 있어 밥을 태우지 않을 뿐 아니라 용기의 표면이 불소수지 혹은 세라믹으로 코팅되어 있어 밥이 눌어붙는 것을 막아준다. 따라서 요즘에는 밥을 짓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발생되는 누룽지 대신에 밥을 프라이팬 같은 도구에 올려 누룽지를 직접 만들기도 한다. 또한 누룽지 제품이 판매되기도 하는데, 항산화 작용이 있는 여러 가지 재료들을 첨가한 제품들이 출시되기도 했다. [4] 이는 지난 30년 동안 매년 쌀 소비량이 감소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국내 쌀 사용량을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누룽지는 밥이 익는 과정에서 높은 열과 압력에 의한 탄화과정으로 생긴다. 탄 음식에는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들어 있기 때문에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누룽지에는 이러한 발암 물질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탄 음식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발암물질은 벤조피렌(Benzo pyrene: C20H12)으로 다환 방향족 탄화수소의 일종이다. 벤조피렌은 육류나 어류를 불에 구워 조리할 때, 재료가 탄 부위에 생길 수 있으며 특별히 재료에 있는 기름 성분이 불에 떨어져 탈 때 생기는 연기에 많이 포함되어 있다. 벤조피렌은 그 구조에 따라 a형과 e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중 a형은 WHO(세계보건기구) 산하의 국제암연구소(IARC: 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에 의해 1급 발암물질로 규정되었으며, 두 가지 형태 중 a형이 더 흔하다.
벤조피렌의 위험성은 18세기 때부터 발견되었는데, 서양의 굴뚝 청소부들에게서 암이 자주 발견되었으며 19세기에는 연료 제조업계의 노동자들에게서 피부암이 많이 발견되었다. 이는 작업 중에 벤조피렌에 많이 노출된 결과 암이 발생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벤조피렌에 의한 암 발생은 체내에서 벤조피렌이 분해될 때 생기는 디올 에폭사이드(Diol epoxide)라는 물질이 DNA 결합하여 변형을 일으키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5]
그렇다면 탄 음식을 먹었을 때 암에 걸릴 위험은 얼마나 커질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탄 음식이 소화기관으로 들어가면 호흡기를 통해 들어갈 때보다 그 위험도가 크게 감소한다. 우리 몸의 소화기관에서 각종 유기물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가 분비되기 때문에 벤조피렌과 같은 물질들도 대부분 처리가 된다. 따라서 일부러 음식을 태워서 먹지 않는 이상 우리 몸에 들어온 소량의 벤조피렌과 같은 성분들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할 것은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연기를 들이마시는 것이다.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연기에도 벤조피렌과 같은 발암물질이 포함될 수 있는데, 소화기관과 달리 호흡기관에서는 이러한 물질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할 장치가 없다. 그러므로 최대한 조리 시에 연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가급적 연기를 들이마시지 않도록 해야 한다. 최근에는 벤조피렌이 휘발성 물질이기 때문에 음식 조리 시 발생하는 연기에는 벤조피렌이 적게 검출된다는 의견도 있다.
어쩌면 탄 음식을 먹는 것과 조리 시 발생한 연기에 의한 건강의 위협은 다소 과장되었을 지도 모른다. 암이 생기기에는 너무 적은 양이기 때문에 신경 쓰지 말고 먹어도 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오히려 걱정하면서 신경을 쓰는 것보다 편한 마음으로 먹는 것이 더 건강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나는 이미 먹은 것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건강에 대해서만큼은 최대한 엄격한 기준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적절한 조치는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해 누룽지를 먹었다면, 이제는 건강을 위해 먹는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음식들이 탈 때 생기는 벤조피렌과 같은 발암 물질도 누룽지에는 거의 들어있지 않다. 오히려 먹었을 때 속이 든든하고 항산화 작용으로 인해 건강을 지켜주며 소화도 잘 되게 한다. 건강한 삶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 요즘, 누룽지야말로 탄 음식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생각을 바로잡아주고 우리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최고의 음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1] P. Chatakanonda, S. Varavinit & P. Chinachot.(2000). Effect of Crosslinking on Thermal and Microscopic Transitions of Rice Starch. Lebensmittel-wissenschaft und-technologie-food science and technology 33(4), 276-284. DOI : 10.1006/fstl.2000.0662
[2] Lee, Y. H., & Oh, S. H. (2004). Effect of resistant starch on human glycemic response. Korean Journal of Community Nutrition, 9(4), 528-535.
[3] Yang, J. W., & Choi, I. S. (2016). The Physicochemical Characteristics and Antioxidant Properties of Commercial Nurungji Products in Korea. Korean journal of food and cookery science, 32(5), 575-584.
[4] Kim, M. K., & Cho, S. C. (2020). Analysis of Physicochemical Properties of Nurungji Added with Various Materials. Journal of Convergence for Information Technology, 10(2), 102-108.
[5] Meehan, T., & Straub, K. (1979). Double-stranded DNA stereoselectively binds benzo (a) pyrene diol epoxides. Nature, 277(5695), 410-412.
그림 출처.
# https://casamama.modoo.at/?link=5txo7obe
* 기사 작성에 도움을 주신 진유님께 감사드립니다.
의학약학 서규원 (2020-09-23)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220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