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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를 배우다] 둘째는 딸을 원하시나요?

산포로 2024. 3. 11. 15:28

[생명윤리를 배우다] 둘째는 딸을 원하시나요?

 

 

우연에서 선택으로

 

『우연에서 선택으로, 유전자 시대의 윤리학』(로도스 출판사)이라는 책은 제가 석사학위를 졸업하면서 선배님들께 선물로 받은 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제가 박사과정에서 무엇을 더 공부하고 배워가야 할지를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했습니다. 철학, 법학, 사회학, 자연과학 등의 주요 학과가 아닌 무언가 경계에 있는 학문, 학제적 연구를 주로 하는 학과로, 대학원에만 개설되어 있는 협동과정이라는 특성상 해당 분야에서 학문을 전문적으로 계속해나가는 박사학위를 선택한다는 일은 앞으로의 불투명한 진로와 ‘업’으로써의 돈벌이를 고려했을 때 사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시간을 생각했을 때 공부하는 과정이 단절될 우려도 컸고 이렇게 박사학위를 받아서 방구석에 걸어놓기만 하려나 하는 고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개인적 성향과, 정답이 없는 생명윤리 분야에서 다양한 학문적 접근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고 울타리와 같은 새로운 범위들을 발견했을 때 찾아오는 즐거움과 감사함은 계속해서 공부를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정자성별 선택이 가능한 인공수정기술의 발달

 

최근 정자성별 선택이 가능한 인공수정기술에 관한 기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면서 위에 언급한 책의 제목처럼 과거에는 우연이라고 여겼던 일들이 선택 가능한 일들로 대두되면서 생명윤리적 고민들이 현실화되었습니다. 역시 세상은 생명윤리라는 학문을 필요로 한다는 일종의 자부심에 얼른 기사를 찾아 읽어보았습니다. 기사의 내용과 관련 논문의 내용을 보니 이전에도 조금 다른 방식이지만 기술적으로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인 미국의 한 연구팀에서 발표한 내용을 요약하자면 정자의 염색체가 남성(Y)인지 여성(X)인지에 따라 무게가 약간 다른 점을 이용하여 정자를 성별로 선별한 뒤, 부부가 원하는 성별로 인공수정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딸을 원하는 부부는 79.1%로 딸 배아를 얻는 데 성공했고, 아들을 원하는 부부 역시 79.6% 아들 배아를 얻었습니다. 게다가 실제 배아를 자궁에 이식해 출생까지 가능하였습니다. 

 

만약 생명윤리에서 다루는 주요한 원칙인 위험과 이익에 대한 합으로 이를 바라보자면, 해당 기술은 과거 일부 위험요소를 지녔던 성별선택 기술에 비해 정자 무게만으로 성별을 판독하기 때문에 대상자에게 미치는 위험과 해의 측면에서는 위험을 최소화하였고, 대상자가 원하는 치료(요구)의 실현을 이루기 때문에 임상에서 활용 가능성을 높인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 이익과 사회적 이익에 대한 논의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쟁적인 이유는 성별 선택 기술을 사회에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것에 있어서 사회가 성별 선택이 가능해지는 만큼 무엇인가는 잃어야 할 것이 발생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사회가 논의하고 합의하는 과정과 절차가 곧 과학기술의 실현에 있어 선행되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번 개인적 차원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첫째 아이를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계획임신은 아니지만 얼마 전 둘째를 임신하면서, 남편은 둘째가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초음파를 볼 때도 의사 선생님께서는 첫째는 성별이 뭐예요? 둘째는 딸을 원하세요?라고 별다른 의도 없이 물어오셨습니다. 저희 부부는 자연스럽게 둘째가 딸이면 엄마에게 좋고, 아들이라면 첫째에게 좋겠다 싶은 생각인데 딸이면 좋죠라고 답했습니다. 물론 둘째가 남자아이여도 아이를 반기고 사랑하는 데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이때 딸이길 바라는 마음은 순전히 개인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만약 정자성별 선택이 가능했던 사회라면(당연히 보험의 혜택은 없고 부부가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고 가정할 때,) 우리 부부가 이것을 선택하였을까를 생각하였을 때 어쩌면 별 고민 없이 선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사회적 차원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 개인들이 자신의 욕망에 근거하여 아이의 성별을 선택했을 때 어떻게 될까요? 인구학적인 성비가 불균형해질 가능성이 높아질 텐데, 이러한 성비의 불균형이 사회에 가져오는 영향력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정자의 성별을 선택하는 일은 윤리학에서 쉬이 거론되는 ‘미끄러운 경사길’ 논의처럼, 어느 순간 정자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다른 기능들을 선택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둘째는 딸을 원하시나요?

 

'예, 원합니다‘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욕망은 순전하고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될 때 사회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다양성을 지닌 사람들이 인정받는 사회가 아니라, 성별의 차별과 같은 편향적 태도를 부추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잃는 것이 있습니다. 마이클샌델이 『완벽에 대한 반론』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생명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여러 선택적 기회들에 대하여 우리는 더 많은 '책임‘을 미래세대를 향해져야 할 뿐 아니라, 자연적이고 우연적으로 주어지는 것들에 대한 '감사‘를 잃을 우려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반드시 옳고 그름의 사안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지만, 만약 성별선택이 허용가능한 사회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권장할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참고문헌

“정자 골라서 딸, 아들 선택......논란의 기술 나왔다”(2023.03.26.), 한겨레, 곽노필기자,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10851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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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박수경) 등록일2024.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