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산포로紀行 백두대간 충북 괴산군 은티마을 구왕봉-희양산-시루봉-이만봉-곰틀봉-사다리재]

산포로 2010. 12. 6. 13:34

[산포로기행 백두대간 충북 괴산군 은티마을 은티재-구왕봉(877m)-지름티재-희양산(998m)-시루봉(914.5m)-이만봉(989m)-곰틀봉-사다리재 충북 괴산군 안말 종주산행]10년 12월 4일

 

* 산행구간 : 충북 괴산군 은티마을 은티재-구왕봉(877m)-지름티재-희양산(998m)-시루봉(914.5m)-이만봉(989m)-곰틀봉-사다리재 충북 괴산군 안말

* 일 시 : 2010년 12월 4일(토)

* 모임장소 및 출발시각 : 동서울터미널

* 날 씨 : 맑음(최고 6도 최저 -1도)

* 동반자 : 산악회 산우와 동반산행

* 산행거리 : 18.8km

* 산행지 도착시각 : 충북 괴산군 은티마을 오전 10시 10분 출발

* 산행후 하산시각 : 충북 괴산군 안말 오후 4시 40분 도착

* 산행시간 : 약 6시간 30분(식사 및 사진촬영시간 포함)

 

오늘부터 블로그제목인 "낭선기행"을 "산포로기행'으로 바꾸고자합니다.

 

특별한 의미보다는 예전 중국의 산을 좋아하는 시인 호인 "낭선'의 "낭선기행"보다는 서울 마포에서 태어나 산을 좋아하며 이순까지 살고 있는 나만의 호인 "산포로"의 "산포로기행"이 진정한 나를 찾고 보여주며 이끌어주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변함없는 관심과 정성어린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백두대간 구왕봉과 희양산은 전날에 왔으나 시루봉과 이만봉을 가질 못해 다시 옵니다.

역시 백두대간길에서 빼어난 풍광과 거친 암릉을 자랑하네요. 멋집니다.   

 

희양산은 그 옛날 통일신라시대를 살았던 지증대사는 희양산의 산세를 '산은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쳤는데 마치 붉은 봉황의 날개가 구름속으로 치켜 솟아 오르는듯 하였고, 물은 백 겹으로 띠처럼 둘러쳤는데 마치 이무기가 허리를 돌에 대고 누운것 같다' 고 하였으며 최치원은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을 타고 나오는 형상'이라고도 하였답니다.

 

이에 지증대사는 희양산에서 내려오는 그 기운을 누르기 위해 신라 헌강왕 5년(879년)에 봉암사를 지었답니다.

 

멋지고 유서깊으며 명찰인 천년고찰 봉암사를 품고있는 백두대간 희양산구간에 오니 우리의 신라시대 유명한 고승의 시가 떠올라 이를 올립니다.

 

送童子下山(송동자하산)             동자를 보내며

 

空門寂寞汝思家(공문적막여사가)  적막한 절간에서 집 생각 때문에

禮別雲房下九華(예별운방하구화)  승방을 하직하고 구화산을 내려가네

愛向竹欄騎竹馬(애향죽란기죽마)  죽란에서 죽마 타기 좋아하고

懶於金地聚金沙(나어금지취금사)  금지에서 금모래 모으기엔 게을렀지

添甁澗屋休招月(첨병간옥휴초월)  시냇물 병에 채우다 달 부르기 그치고

烹茗甌中罷弄花(팽명구중파농화)  그릇에 차 끓이다가 꽃 희롱도 그만두었지

好去不須頻下淚(호거불수빈하루)  잘 가거라, 부디 눈물 자주 흘리지 말고

老僧相伴有煙霞(노승상반유연하)  이 노승이야 짝이 될 노을과 안개가 있지 않느냐.

 

신라 왕손으로 태어나 24세에 출가하여 중이 된 신라 고승 교각(喬覺) 김지장(金地藏, 705~803)의 시입니다. 중국으로 들어가서 강남(江南) 구화산(九華山)에 머물렀는데 803년 여름에 함 속에 들어가 가부좌하고 죽었는데, 함 속의 얼굴이 3년을 지나도 살아 있는 것과 같았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그를 지장보살(地藏菩薩)의 화신으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데리고 있던 동자(童子)가 제 놀던 고향으로 가고 싶어 하므로 세속으로 떠나보내면서 느끼는 늙은 스님의 감회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동자를 보내는 노승은 혼자 남게 되는 쓸쓸함과 눈물까지도 감추고 있습니다. 노승의 경지에서는 노을과 안개를 벗 삼을 수 있다면, 동자는 어린마음에 제 놀던 동네에서 동무들과 죽마 타기를 그리워함이 당연한 사리이니, 불도를 닦음도 순리에 맡길 일이지 억지로 할 것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당장은 동자가 떠나는 아쉬움이 크지만 그가 순수한 본마음을 깨닫고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것을 기대하는 탈속하고 여유 있는 노승의 소망이 행간에 숨어 있습니다.

 

 

 

 

 

 

 

 

 

희양산이지요. 그 옛날 통일신라시대를 살았던 지증대사는 희양산의 산세를 '산은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쳤는데 마치 붉은 봉황의 날개가 구름속으로 치켜 솟아 오르는듯 하였고, 물은 백 겹으로 띠처럼 둘러쳤는데 마치 이무기가 허리를 돌에 대고 누운것 같다' 고 하였으며 최치원은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을 타고 나오는 형상'이라고도 하였답니다.

 

이에 지증대사는 희양산에서 내려오는 그 기운을 누르기 위해 신라 헌강왕 5년(879년)에 봉암사를 지었답니다.

 

몇장이 되진 않지만 사진에서 산세를 꼭 확인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행히 봉암사 스님들도 앞으로 백두대간 산꾼들에겐 특별히 통행을 제한하지 않고 일반 산객은 여전히 통제를 한다네요. 대간산행 표시를 부탁합니다.

사실 우리 산꾼은 산을 스님은 화두를 놓고 치열하게 전진하는 모습에선 같을 수도 있지요. 우리가 그들이요 그들이 우리입니다.

 

 

전날엔 비도 왔고 희양산에서 구왕봉으로 가는 길이어서 힘이 들지 않았지만 역산행인 오늘은 계속 험한 암릉에 가파른 로프를 타고 오르니 무척이나 힘이 듭니다. 

 

 

앞에 구왕봉과 장성봉, 악휘봉, 대야산 등 지나온 백두대간이 보입니다.

 

 

 

 

 

 

 

 

 

 

시루봉에서 왼쪽의 희양산과 오른쪽의 구왕봉의 멋진 모습을 확실하게 봅니다. 

 

 

 

 

 

백두대간은 아니지만 백화산 부근인 황학산(912m)입니다.

 

곰틀봉에서 함께 합니다. 

 

오른쪽에 다음 백두대간 산행구간인 백화산입니다. 백화산을 거쳐 이화령을 지나 소백산으로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