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고미영씨 가족들 '아버지에 쓴 편지'에 통곡
눈물 훔치던 팔순 아버지 "왜 아직 헬기가 못뜨나"
산(山)에서도 기타 즐긴 그녀 눈보라에 시신 수습 지연
만리 밖 설산(雪山)을 오르던 막내딸이 깊은 골짜기로 추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여든을 넘긴 아버지는 말을 잃었다. 막내딸이 남기고 간 마지막 편지를 받아드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11일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해발 8126m)를 정복하고 하산하다 실족한 여성 산악인 고미영(42)씨는 지난 연말 아버지 고재은(83)씨에게 보내는 편지 한 통을 본지에 기고했다. 고난을 극복하고 성공한 유명 인사와 열심히 일하는 보통사람들이 '희망편지'라는 제목 아래 저마다 따뜻한 사연을 적어 보내는 코너였다.
미영씨는 정이 듬뿍 밴 담담한 문장으로 "어렸을 적 10년 넘게 이장을 하시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새마을운동에 관해 연설하시던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고 썼다. "제가 히말라야의 장관을 보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잘 견뎌낸 건 강인한 의지와 체력을 물려준 아버지 덕분"이라며 "일년에 고작 한두 번 뵙지만 마음만은 늘 태양에 그을린 아버지의 얼굴을 생각하고 있다"고 썼다. 미영씨의 편지는 지면에 실리지 않았다. 사회를 뒤흔드는 굵직한 사건들에 묻혀 시기를 놓친 것이다.
- ▲ 지난 11일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해발 8126m) 등반 중 사망한 산악인 고미영씨의 언니 미란(오른쪽)씨와 오빠 석균씨가 13일 서울 삼전동 우덕세무법인 사무실에서 고인이 생전에 본지에 보냈던 희망편지를 읽고 있다./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고씨는 가족들이 둘러앉은 가운데 편지를 받아들었다. 그가 묵묵히 편지를 읽는 동안 정적과 숨죽인 흐느낌이 148㎡(45평) 아파트 거실을 채웠다. 편지를 다 읽은 고씨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주름진 눈가에 주르륵 눈물이 흐르자 그는 나무껍질 같은 손등으로 눈두덩을 닦았다. 그리고 다시 침묵에 잠겼다. 이날 밤 노인은 막내딸의 죽음에 대해 "왜 아직도 헬기가 못 뜨느냐"고 딱 한마디 했다.
파키스탄 수색헬기는 현지 시각 12일 낮 12시(한국 시각 오후 3시)쯤 추락지점보다 1000m 낮은 해발 5300m 지점의 눈밭에서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바라보고 누운 미영씨를 찾아냈다. 그러나 눈보라와 강풍으로 시신 수습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6·25 참전용사인 고씨는 10여년간 군 생활을 하다 육군 특무상사로 전역해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다. 6남매에게 그는 무뚝뚝하고 정 깊은 아버지였다. 고인은 그가 42세에 얻은 늦둥이였다. 여고를 졸업하고 농림부 직원이 된 딸은 서른살 때 산악에 입문했다. 노인이 막내딸을 본 것은 원정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 설날이 마지막이었다.
언니 미란씨는 이날 오후 아버지에게 전하기에 앞서 서울 송파구 삼전동 사무실에서 동생의 마지막 편지를 받아 들었다. 심호흡을 하며 읽기 시작했지만 서너 줄 만에 오열하기 시작했다.
"미영이가 원정을 떠난 뒤 베이스캠프에서 읽으라고 평소 좋아하던 대하소설과 산악잡지, 에세이집 10권을 인편에 보내줬어요. 정상에 오르기 전날 미영이가 전화로 '내일 산에 올라가니까 기도를 해달라'고 했는데 그게 마지막 통화가 될 줄은 몰랐어요."
미란씨가 동생의 편지를 읽고 있던 시점, 고씨는 막내딸이 혼자 살던 집을 둘러보고 있었다. 50㎡(15평) 남짓한 방 2개짜리 다가구주택은 금방이라도 주인이 돌아올 듯한 분위기였다. 현관에는 발등에 큼지막한 꽃 장식이 달린 빨간색 구두와 검은색 단화, 낮은 굽 달린 하얀색 샌들이 놓여 있고, 벽에는 미영씨가 원정 여행 중 베이스캠프에서 뜬 십자수 두 점이 걸려 있었다. 화장대엔 로션, 핸드크림 등 고만고만한 화장품통 10여개가 놓여 있고, 옷걸이엔 등산점퍼와 배낭이 걸려 있었다. 책꽂이엔 빛바랜 산악잡지, 등산을 소재로 한 만화, 산악 교범 200여권과 함께 취미로 즐기던 기타 교본과 중국어 회화책이 꽂혀 있었다.
고씨가 막내딸의 체취가 가득한 공간을 떠나 미란씨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가족들이 막내딸의 편지를 내밀었다. 미영씨는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후 큰오빠가 서울의 명문대에 갔을 때처럼 동네잔치를 하고 싶다"고 썼다. 그날 유쾌하게 취해 온 동네가 쩌렁쩌렁하게 딸 자랑을 할 수 있도록, 모쪼록 늙은 아버지가 내내 건강하기를 막내딸은 바랐다. 미영씨는 "다음 생신(음력 12월 27일) 때 찾아뵙겠다"는 말로 편지를 맺었다. 그녀의 소망과 약속은 이국의 차가운 눈 속에, 늙은 아버지의 가슴속에 묻혔다. 언니 미란씨 등은 고인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이르면 16일쯤 파키스탄으로 떠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