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왜 과학기술에 관심을 갖나?
한국연구재단 석학인문강좌
과학기술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듦과 동시에 의혹과 불안 또한 제공하고 있다. 과학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여러 가지 영향들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과학사회학(sociology of science)은 이미 1930년대에 탄생했다. 그렇다면 사회학자가 과학기술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문학의 대중화와 진흥을 목적으로 교육과학기술부가 후원하고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일곱 번째 강좌가 지난 15일 광화문 서울 역사박물관 강당에서 열렸다. 윤정로 KAIST 사회학 교수는 ‘사회 속의 과학기술’을 주제로 ‘사회학자, 왜 과학 기술에 관심을 갖는가?’라는 내용의 강의를 시작했다.
▲ 윤정로 KAIST 사회학 교수 ⓒScience Times
현대문명의 중추, 그러나 의혹과 불안도 제기
과학과 기술은 현대문명의 중추적인 요소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가져온 심대한 변화는 자명해 보이고, 미래에는 그 변화의 속도와 폭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과학기술은 정치, 경제, 종교, 교육 등 거시적인 사회구조에도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쟁점과 문제들이 과학기술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문제 해결에 필요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대안을 창출하기 위해서도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개입이 필수적이다. 이번 강연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마주치는 문제와 사례를 중심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과학기술이 우리의 삶과 사회에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성찰해 실천적 대안을 모색했다.
치열한 국제 경쟁이 심화되면서 과학기술이 국가경쟁력의 핵심요소라는 인식은 전 세계의 상식이 됐다. 과학기술 혁신이 가속화되면서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국가들이 과학기술 혁신 역량을 제고하고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기술에 대한 의혹과 불안,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과학기술이 개인의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 점점 다양하고 중대한 사회 문제와 갈등, 정책 결정의 핵심에 자리 잡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에 다시 논란이 된 원자력 발전소의 운용 문제를 비롯해 황우석 교수 사태, 광우병 사태, 4대강 사업 논란 등 비근한 사례들이 많다. 과학기술이 산업경쟁력이나 국가경쟁력 제고의 수단으로서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의 복지와 삶의 질, 문화, 환경 등의 다양한 측면과 맺고 있는 연관성과 역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광범위한 사회 구성원들이 과학기술의 성격과 의미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사회적 번영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도록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데 기본적이고 중요한 기반이 된다. 1950년대 후반 영국의 물리학자 출신 작가인 스노우(Charles P. Snow)는 ‘두 문화’(two cultures)라는 용어로써 과학기술과 인문학 사이에 간극이 확대되는 현상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두 문화 사이에 진지한 대화와 이해의 노력 부족으로 발생한 상대방에 대한 무지와 오해, 반목은 현대사회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봤다. 한국 사회에서도 ‘두 문화’ 사이의 간극이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무관심, 오해, 편견을 갖거나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듯한 경향도 나타난다.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점(利點)뿐만 아니라 문제점에 대해서 균형 잡힌 판단을 내리고 사회적 합의를 이뤄나가야 한다.
과학사회학의 성립과 성과
사회학자들이 과학기술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역사가 비교적 짧다. 1935년 로버트 머튼(Robert K. Merton, 1910-2003)이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17세기 영국의 과학, 기술과 사회(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in Seventeenth Century England)’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한 것이 본격적인 효시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에 이미 역사, 철학 분야에서는 과학사, 과학철학이 전문 분과로서 정립돼 있었다.
▲ 과학사회학을 창시한 로버트 머튼 교수 ⓒ위키피디아
17세기 영국은 소위 근대 ‘과학혁명’의 진원지로서 과학기술이 비약적 발전이 있었다. 아이작 뉴턴(1642-1727), 로버트 보일 (1627-1691), 윌리엄 하비(1578-1657), 에드먼드 핼리(1656-1742) 등 기라성 같은 과학자들이 당시 영국에서 배출됐고, 광업, 항해, 군사, 직물 분야의 기술이 크게 발전했다.
머튼은 17세기 영국에서 그렇게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당시 과학기술의 발전이 청교도의 종교적 가치와 연관돼 있으며, 과학 연구의 방향이 사회경제적 요인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명제를 제시했다.
머튼은 이런 과학 특유의 규범구조와 관련지어 과학 제도와 과학자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작업을 계속했다. 예를 들면, 과학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우선권(priority)―최초의 발견자라는 공인―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과 갈등, 분쟁에 주목했다.
과학자들의 경쟁적인 행태는 사회제도로서 과학에 내재돼 있는 창의성(originality)의 가치와 공유주의의 규범으로부터 파생된 결과라고 한다. 확증된 지식의 확대라는 과학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 창의성(originality)이 대단히 중시된다.
동시에 공유주의의 규범으로 인해 과학자들은 자신의 과학적 발견에 대해서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권리가 독창성에 대한 인정, 즉 우선권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고, 극단적으로는 표절, 자료 위조, 비방 등의 일탈행위까지 야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지식사회학의 도전, 과학기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
1970년대에 들어 유럽, 특히 영국을 중심으로 과학사회학의 새로운 흐름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종래의 과학사회학이 규범과 제도 분석에 관심을 기울인 반면, 새로운 흐름은 과학 지식의 내용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지향함으로써 일반적으로 과학지식사회학(sociology of scientific knowledge, SSK)으로 불리게 됐다.
과학지식사회학 내에도 또한 분석틀과 접근방식에 있어 다양한 흐름이 존재한다. 영국 에딘버러 대학의 블로어(David Bloor)가 1976년 출판한 저서 ‘지식과 사회의 이미지(Knowledge and Social Imagery)’는 첫 문장이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지식사회학(sociology of knowledge)이 과학 지식의 내용과 특성 그 자체를 탐구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 많은 사회학자들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블로어의 생각으로는 과학 지식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학지식사회학이 제기한 이슈의 핵심은 “과학 지식은 여타의 지식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특수한 성격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즉, “과학 지식은 인식론적으로 우월한 특권을 누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김형근 객원기자 | hgkim54@naver.com 2012.09.17 ⓒ ScienceTimes
http://www.sciencetimes.co.kr/article.do?todo=view&atidx=0000066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