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호르몬 치료로 다운 증후군 환자 일상생활 돕는다
불임 치료제 투여로 인지 능력 30%까지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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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영된 TV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다운 증후군 배우 정은혜가 한지민과 쌍둥이 역할을 맡아 큰 울림을 줬다. 다운 증후군으로 태어나 겉모습이나 행동이 조금 달라도 같이 살아가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동반자임을 일깨워 준 것이다. 프랑스와 스위스 과학자들이 약물로 다운 증후군 증상을 개선할 길을 열어 이들의 일상생활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프랑스 릴대의 뱅상 프레보 교수와 스위스 로잔 대학병원의 넬리 피트라우드 교수 공동 연구진은 2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불임 치료제로 쓰는 고난드로핀 방출 호르몬(gonadotropin-releasing hormone, GnRH)으로 다운 증후군 환자의 인지 능력을 30%까지 높이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단어 기억과 도형 이해력 향상
다운 증후군은 쌍으로 있어야 하는 21번 염색체가 3개인 선천성 유전 질환이다. 특징적인 얼굴 모습과 일정한 정신 지체가 나타나지만, 교육과 치료를 통해 대부분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연구진은 약물을 통해 다운 증후군 환자의 의사소통과 학습 능력을 높여 일상생활에 더 도움을 주려고 연구를 진행했다.
고난드로핀 방출 호르몬은 생식 능력을 조절해 불임 치료에 널리 쓰이고 있다. 이 호르몬이 제대로 방출되지 않으면 불임과 후각 장애를 일으킨다. 유아와 아동의 인지 능력 발달에도 영향을 미치며 청소년기 뇌 발달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먼저 쥐에게 다운 증후군처럼 염색체 이상을 일으켰다. 쥐는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과 후각이 크게 떨어졌다. 고난드로핀 방출 신경도 제대로 생성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유전 물질인 마이크로RNA로 고난드로핀 방출 호르몬 유전자를 다시 작동시키면 후각과 기억력이 회복되는 것을 확인했다. 해당 호르몬 대체제로 사람에게 쓰는 루트렐레프를 투여하자 2주 만에 일반 생쥐처럼 사물을 기억하고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약물로 유전자 기능을 대신한 것이다.
동물 실험이 성공하자 사람 대상 시험도 진행됐다. 20~50세 다운 증후군 남성 7명에게 2시간마다 팔에 주사기와 펌프로 루트렐레프를 투여했다. 인체에서 해당 호르몬이 방출되는 주기를 맞춘 것이다. 치료 6개월 만에 남성들은 입체 도형을 그리거나 단어를 기억하는 표준 인지 능력 시험에서 점수가 10~30% 향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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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에도 도움 기대
연구진은 다운 증후군 남녀 32명을 대상으로 한 본격적인 임상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루틀렐레프와 가짜 약을 대조해 실제 약효를 입증하기로 했다. 연구진은 “부모들은 초기 임상에 참여한 아들과 이전보다 전화 통화가 더 잘 되고 길을 찾는 능력이 향상됐다고 밝혔다”며 “우리 목표는 이처럼 다운 증후군 환자의 일상생활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다른 환자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미시건 주립대의 한느 호프만 교수는 이날 사이언스에 같이 실린 논평에서 “고난드로핀 방출 호르몬의 인지 기능 향상 효과는 다운 증후군 뿐 아니라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밝혔다. 여성은 폐경 후 성호르몬 방출 이상으로 머리에 안개가 낀 듯한 인지 기능 퇴화 증상을 겪는 경우가 많다. 남성도 나이가 들면서 같은 증상을 겪는다.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리면 이런 증상이 더 심해진다.
하지만 호르몬 치료가 장기적으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브라이언 스코트코 박사는 이날 사이언스지 인터뷰에서 “고난드로핀 방출 호르몬이 지나치게 많이 방출되면 암을 유발할 수 있다”며 “이미 백혈병 위험이 높은 다운 증후군 환자에게 더 위험하다”고 밝혔다.
조선비즈 (chosun.com)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2022.09.02 0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