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배아, 2주 이상 배양 허용해야" 줄기세포학회 새 가이드라인 공개
전세계에서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생명과학자들이 주축인 국제줄기세포학회(ISSCR)가 실험실에서 인간 배아를 14일 이상 배양하는 것을 금지한 이른바 ‘14일 룰’을 완화하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생명윤리 논란으로 인간 배아 연구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생명과학계에서 인간 배아 연구를 둘러싼 새로운 전환점은 물론 논쟁의 물꼬가 트일 전망이다.
2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국제학술지 ‘네이처’ 등 과학 분야 주요 외신에 따르면 ISSCR은 인간 배아를 실험실에서 14일 이상 배양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채택하고 발표했다.
1979년 처음 제안된 14일 룰은 영국과 캐나다, 한국 등 최소 12개국의 생명윤리 관련 법안에 적용됐다. 미국을 포함한 일부 다른 국가들은 연구자들과 정책 당국이 활용하는 표준으로 14일 룰을 활용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실험실에서 인간 배아를 5일 이상 배양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배양 기술의 발달로 배양 기간이 점점 늘어났다. 2016년에는 인간 배아를 실험실에서 13일 동안 살아 있는 상태로 유지하는 데 성공하면서 14일 룰의 개정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번 가이드라인 발표로 전세계 생명과학자들과 정책 당국은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ISSCR의 새로운 가이드라인은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검토와 각국의 생명윤리에 관한 이해가 이뤄질 경우 인간 배아를 실험실에서 배양하는 기간을 14일 이상으로 완화할 수 있도록 한 게 주요 내용이다.
이번 가이드라인 개정에 참여한 케이시 니아칸 영국 케임브리지대 및 프랜시스크릭연구소 교수는 “이번 가이드라인 발표가 무분별한 인간 배아 연구를 확대하는 것은 아니다”며 “무책임하고 관할범위 밖의 연구는 불법이며 이번 가이드라인은 인간 배아 배양 기간을 14일 이내로 제한한 것을 대중들과의 소통을 통해 완화하는 데 적극 참여해 달라는 요청”이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14일 이상 인간 배아를 배양할 수 있다면 인간 배아 초기 발달 연구와 미토콘드리아 연구 등 다양한 생명과학 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복적인 유산과 선천적·유전질환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ISSCR 가이드라인 태스크포스(TF) 회장인 로빈 로벨-뱃지 프랜시스크릭연구소 그룹리더는 “인간 배아가 14일에서 28일 동안 발달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며 “오히려 이 기간 동안 인간 배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비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니얼 브리슨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는 “14일 룰을 완화하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과학적, 임상적 장점이 있다”면서도 “14일 이상 인간 배아를 실험실에서 배양하는 것은 한 개인의 정체성이 발달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사회와 대중들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브리슨 교수는 또 “과학자로서 단순히 인간 배아를 14일 이상 배양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을 변경하려는 것은 아니다”며 “대중들이 14일 이상 인간 배아를 배양하면서 이뤄지는 연구의 목표를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과학자와 생명윤리학자가 새로운 ISSCR 가이드라인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대니얼 설마시 미국 조지타운대 생명윤리학자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인간 배아에 대한 존경이 사라졌다”고 혹평했다.
행크 그릴리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윤리학자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지지하지만 14일 이상 배양할 수 있다는 것 외에 어느 시점까지 배양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다”고 밝혔다.
동아사이언스 (donga.com) 김민수 기자 reborn@donga.com 2021.05.27 1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