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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감염되는 기생충, 실험실서 배양 성공...동물실험 필요성 없애

산포로 2023. 4. 3. 09:31

사람에게 감염되는 기생충, 실험실서 배양 성공...동물실험 필요성 없애

프랑스 연구진, 유전자 교정 기술로 '톡소플라스마' 인위적 성장 성공
 
톡소플라스마의 유일한 종숙주인 고양이.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주로 고양이나 개의 분비물을 통해 사람에게 감염되는 해로운 기생충 '톡소플라스마'를 실험실에서 자라게 하는 방법이 개발됐다. 그동안 숙주인 동물의 신체 안에서 자란 기생충을 꺼내야만 연구가 가능해 실험 과정에서 동물의 희생이 불가피했다. 이 기생충은 사람에게 감염되면 근육통, 인후통 및 심할 경우 실명과 사망을 유발할 수 있어 연구 필요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신부가 감염되면 드물게 유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31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따르면 모하메드 하키미 프랑스 그르노블알프스대 연구원 연구팀은 유전자 교정 기술을 활용해 톡소플라스마를 배양하고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관련 논문은 지난 1월 의학논문사전공개 사이트 '바이오아카이브'에 발표됐다.

 

기생성 원생동물인 톡소플라스마는 인수공통전염병인 톡소플라스마증을 일으킨다. 의학계에 따르면 전세계 인구의 33%가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은 별다른 증상이 발생하지 않지만 면역체계가 약한 사람의 경우 뇌나 다른 신체 기관에 염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임신부에게 감염될 경우 드물게 유산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보고된 바 있다. 태어난 아기에게서 시력 상실, 지적 장애 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톡소플라스마는 200종이 넘는 포유류와 일부 조류에 감염되지만 종숙주로 삼는 동물은 고양잇과 동물 뿐이다. 종숙주는 기생충이 단순히 생존할 수 있는 중간 숙주가 아닌 번식까지 가능한 숙주를 뜻한다.

 

톡소플라스마의 생애주기를 연구하기 위해선 종숙주 고양이의 몸 속에서 자란 기생충을 채취해야만 했다. 연구 과정에선 고양이를 톡소플라스마에 감염시키고 실험이 끝나면 안락사 시키는 작업이 필수적이었다.

 

앞서 과학계와 동물 복지단체들은 이러한 연구 과정에 윤리적 문제를 제기했다. 실험 과정에서 고양이를 사용하지 않기 위한 연구가 이뤄지기도 했지만 비용 문제 등으로 실제 연구 현장에 적용되지는 못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사용해 톡소플라스마를 번식이 가능한 단계까지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기생충의 생존 단계에서 활성화되는 단백질의 유전자를 비활성화 시키고 생식 단계에서만 활성화되는 유전자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종속주인 고양이의 내장에만 있는 특정 성분이 없이도 연구실 배양을 통해 번식 단계의 톡소플라스마 연구가 가능해졌다는 설명이다. 

 

이번 연구는 유전자 교정 기술을 활용해 기생충의 성장단계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도 주목받는다. 레나 페르나스 독일 막스플랑크 노화생물학 연구소 연구원은 "기생충의 번식 단계에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으로 세포 생물학적으로도 멋진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를 이끈 하키미 연구원 또한 "고양이의 생명을 구하는 것 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이 기생충의 수명주기의 각 단계를 멈추거나 가속화하는 약물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아사이언스(dongascience.com)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2023.04.02 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