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장생의 신약 개발 꿈
4번 염색체의 비밀을 찾아라
놀랄 만한 건강을 유지한 채 1백세를 넘기는 백세인의 신비가 바로 인체 내 4번 염색체 속 유전자에 있는 것으로 미국 연구팀에 의해 밝혀졌다. 또 4번 염색체를 장수형으로 바꿔주는 장수 신약이 개발되고 있다.
4번 염색체는 인체 세포마다 있는 23쌍의 염색체 중 하나다.
20세기 의학은 지난 한세기 동안 인간의 평균 수명을 두배 가량 증가시켰다.
미국 보스턴 의대에서 만난 토머스 펄 교수는 "현재 보통사람도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고 병 치료를 잘하면 누구나 85세는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건강한 생활습관이란 정상체중. 금연. 규칙적인 운동을 실천하면서 야채와 생선을 주로 먹는 식습관을 말한다. 하지만 백세인의 반열에 끼려면 이보다 15~20년을 더 살아야 한다.
과연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1세기 이상을 살게 하는가.
◇4번 염색체 추적=그 해답을 찾고자 미국 하버드 의대, MIT대 부설 화이트헤드 연구소(Whitehead Institute), 럿거스 대학 유전학 교실, 장수연구 벤처기업인 센타지네틱스 등 미국 보스턴에서 첨단 의과학 연구를 하던 학자들이 1997년부터 합심해 백세인들에 대한 유전자 연구를 시작했다.
우선 이들은 건강한 백세인(1백37명)과 그들의 90세 이상 형제.자매 등 3백8명을 찾아 유전자 분석을 했다. 그리고 4년 뒤, 초장수 백세인들이 공통적으로 4번 염색체에 특이한 유전자 변화가 있음을 드디어 알아냈다.
이 같은 획기적 발견을 하는 데는 2000년 완성된 인간유전자지도(Human Genome Project)가 큰 몫을 했다.
사람의 세포엔 부모로부터 23개씩 받은 23쌍의 염색체가 있으며 각 염색체는 유전자인 DNA를 가지고 있다. 현재 인간유전자지도를 통해 밝혀진 사람의 유전자는 3만여종이다.
첨단 장수연구의 현장인 보스턴 센타지네틱스 연구실. 장수 유전자를 이용한 노화 방지 신약개발이 한창이다.
첨단 연구실답게 유전자 실험은 대부분 로봇의 몫이다.
여기서 나온 기초 자료는 곧바로 컴퓨터에 입력돼 분석작업이 진행된다.
사람이 하는 일은 로봇과 컴퓨터를 조작하고 이들이 내놓은 자료를 해석하는 일이다. 장수 유전자 발견에 공헌한 센타지네틱스의 에린 조이스 박사는 "4번 염색체에는 50~1백여개의 유전자가 있다"며 "이중 노화를 늦추고 질병을 피해가게끔 하는 핵심 장수 유전자를 1년6개월 전부터 찾고 있다"고 들려준다.
주된 작업은 1천2백만개에 달하는 해당 유전자의 염기(鹽基)서열을 정밀 분석하는 일. 현재까지 2개의 장수 유전자를 찾아내 발표를 목전에 둔 상태다.
연구진이 장수 유전자를 찾는 최종 목적은 규명된 유전자의 세밀한 구조와 기능을 밝혀 무병장수를 도와주는 약을 개발하는 데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수명 관련 유전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장수와 직접 관련된 유전자는 크게 ▶노화를 늦추는 유전자와 ▶질병 발생을 막아주는 질병 회피 유전자로 나눌 수 있다.
즉 백세인들은 바로 4번 염색체에 이런 기능을 하는 유전자가 있는 것이다.
먼저 노화를 늦추는 장수 유전자의 존재는 백세인의 모습을 통해 쉽게 느낄 수 있다. 지금껏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살면서 독서를 즐긴다는 볼리 카바노(101).
젊은 사람들과 농담을 즐기는 그의 얼굴엔 깊은 주름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실제로 90% 이상의 백세인들이 92세까지는 젊은이와 다름없는 독립된 생활을 누리며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수 신약 개발=앞으로 개발될 장수 신약 중 하나가 바로 이 노화를 늦추는 장수 유전자와 동일한 성분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 약이 개발되면 젊은 시절부터 복용해 노화 그 자체를 더디게 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질병 회피 유전자는 죽는 순간까지 건강한 노년기를 보장해 준다.
연구팀의 토머스 펄 교수는 "사실 장수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도 병을 앓으면서 시름시름 오래 살기를 바라진 않는다"고 강조한다.
보통사람들은 대부분 질병을 앓다 어느 순간부터 주변의 간호를 몇년~십년 이상 받다가 사망한다. 하지만 질병 회피 유전자가 있는 백세인은 사망 1~2년 전까지 병 없이 건강하다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모든 장기(臟器)의 기능과 면역력이 한꺼번에 떨어져 폐렴.요로 감염 등 비교적 가벼운 병으로 세상을 마감한다.
실제로 백세인들은 대부분 치매.심장병.뇌졸중 등 노화와 함께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진 질병과 무관하게 산다. 그들은 오랫동안 사용한 기계가 별다른 고장 없이 수명이 다 돼 멈추듯 세상을 살다 가는 것이다.
개발 중인 두번째 신약은 바로 이 질병 회피 유전자와 같은 작용을 하는 제품이다.
센타지네틱스 연구팀은 이 같은 축복의 신약이 3~15년 사이에 출시될 것으로 확신한다. 장수 신약 개발의 현실화는 죽는 날까지 건강과 총명함을 지닌 채 1세기를 사는 신인류의 탄생을 의미한다.
현재 백세인이 될 확률은 0.1%다.
과연 신약 개발이 가능하다는 15년 후부턴 몇%의 신인류가 존재하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