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률 높으면 '위드코로나' 안전할까
영국·싱가포르 등 확진자 급증 불구 치사율 낮아
1일부터 국내에서도 단계적 일상회복, 이른바 '위드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방역 수치가 완화되는 만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유행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방역당국은 백신 접종률이 높고 치사율이 낮아 위중증 환자가 많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의사들은 백신 접종률이 높은 것에만 의존할 수 없으며 코로나19 확진 여부를 알 수 있는 PCR(유전자증폭) 검사와 병상 확보, 재택치료 등 의료체계가 마비되지 않도록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덴마크 등 유럽 일부 국가들과 싱가포르, 이스라엘은 이미 수 개월 전부터 코로나19와 일상을 공존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들 국가는 높은 백신 접종률을 앞세워 방역 조치를 다소 완화했다.
방역 수준은 국가마다 다른데 싱가포르는 한국이 참고할만한 사례로 꼽힌다. 싱가포르는 지난 8월 일찌감치 백신 접종완료율 80%을 달성하고 '점진적인 코로나19와의 공존'을 시작했다. 지난달 30일 기준 싱가포르의 백신 접종완료율은 84%에 이른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지난달 초 하루 신규 확진자 수는 3000명대로 치솟았다. 지난달 27일에는 하루 확진자가 5000명 발생하면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싱가포르 인구가 약 590만 명이니 적지 않은 수치다. 싱가포르 보건당국은 다시 사적모임 인원 제한을 5명에서 2명으로 줄이고, 초등학교는 전면 원격수업 체제로 전환하는 등 일부 방역 수칙을 강화했다. 하지만 코로나19와 공존하는 정책 기조를 바꾸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옹예쿵 싱가포르 보건부장관은 지난달 24일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현재 싱가포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며 일부 백신 효과에 의문을 제기한다"면서도 "백신이 코로나19 감염을 100% 막진 못해도 위중증화와 사망 위험을 낮춰주므로 백신 접종율 제고만이 코로나19 유행을 잡을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보건당국에 따르면 싱가포르 내 코로나19 감염자 중 위중증화율은 0.3%., 치사율은 0.2%로 나타났다.
지난 7월 가장 먼저 위드 코로나를 시작한 영국은 싱가포르보다 백신 접종율이 낮지만 방역 수칙을 대폭 완화했다. 영국 보건당국은 마스크 착용을 권장할뿐 강제하지는 않고 있다. 1일 기준 인구 대비 68%가 코로나19 백신을 접종 마쳤지만 지금도 신규 확진자가 하루 4만~5만 명씩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이달 1일 영국에서 코로나19 감염에 따른 치사율은 1.56% 수준으로 낮다. 지난해 초 코로나19가 영국을 휩쓸고 지나갔을 때 최대 15%에 이르던 치사율의 10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다.
영국이나 싱가포르 사례를 비춰봤을 때 국내에서도 단계적 일상회복을 시행하면서 확진자 수가 급증할 우려가 있다. 질병관리청 역시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코로나19 신규 확진이 늘어나더라도 백신 접종률을 어느 정도 끌어올린 덕분에 위중증환자는 적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는 10월 중순 백신 접종률 70%를 달성하며 코로나19 유행 규모가 감소세에 접어 들었다. 하지만 10월 말부터 확진자가 다소 늘었다. 방역당국은 지난달 28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백신 접종률이 많아졌지만 사적모임이 많아지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잘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치사율은 0.78%다.
국내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률이 능사가 아니며 4차 대유행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방역 수칙을 일부 완화해 자칫 5차 대유행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27일 '위드 코로나 시행에 따른 준비와 대책' 간담회를 열고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인한 코로나19 유행 증가와 의료대란, 의료시스템 마비 등을 우려했다.
이들은 단계적 일상회복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방역 조치로 인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취약계층 등에 경제민생 피해가 누적되고 교육 결손이나 '코로나 블루' 같은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코로나19를 완전히 없애기 어려우므로 이제는 코로나19와 공존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국내는 코로나19와 건강하게 공존하기 위한 대비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염호기 의협 코로나19대책 전문위원회 위원장(인제대 서울백병원 내과 교수)은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유행이 완전히 안정기에 접어들지 않은 상황에서 위드 코로나를 시행해 5차 대유행을 염려한다"며 "폭증 시 확진자 수가 2만명까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재석 의협 코로나19 전문위원회 위원(한림대 강동성심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겨울철) 계절적 요인으로 올 12월부터 내년 1월 사이에 코로나19 유행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단계적 일상회복을 시행하기에 앞서 국내 백신 접종률을 70%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이들은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염 위원장은 "영국과 독일 등 유럽 다수 국가에서 다시 코로나19가 재유행하고 있다"며 "백신 접종률이 높아도 확진자가 생길 수 있고, 접종자의 10%가 돌파감염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단순히 백신 접종률이 높다는 이유로 위드 코로나를 추진하는 것은 정책적으로 옳은 방향은 아니"라며 "기존처럼 모임의 숫자만 조정하는 정량적인 방역은 중단하고, 합리적 과학적 원칙에 따른 정성적인 방역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코로나19 재유행으로 확진자가 급증할 경우 의료체계가 마비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며 "PCR 검사수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어려워질 텐데 응급 검사와 일상 검사로 분류해 응급 검사부터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염 위원장은 "생활치료소의 경우 실제 치료보다는 격리만 시키는 상황이고 10일이 경과하면 검사도 없이 퇴원하기 때문에 환자들의 10% 정도는 감염력이 있을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감염을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택치료도 지역의료기관과 긴밀한 협조체계가 필수적인데 아직은 준비가 미비하다”고 말했다. 병상 확보뿐 아니라 번아웃 상태인 의료진에게 과다한 업무가 주어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동아사이언스 (dongascience.com) 이정아 기자 zzunga@donga.com 2021.11.01 1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