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투자절벽 넘었더니…'확' 바뀐 R&D 패턴에 CRO 희비
바이오 투심 회복세와 임상 CRO 실적은 큰 영향 주고받지 않아
투심 회복 불구, 비임상 CRO 실적↓…"내수의존, 해외 경쟁력 부족이 문제"
올해 상반기 국내 비상장 신약개발 업계에 유입된 투자금액이 작년 동기 대비 증가했으나, 국내 CRO(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ㆍ연구수탁업체)의 매출ㆍ영업익 실적과 디커플링(Decouplingㆍ탈동조화) 양상을 보였다. 이처럼 투자심리 회복이 국내 CRO의 실적 회복과 당분간 연동되지 못할 것으로 분석되는 가운데, 일각에선 '국내 CRO의 매출처가 해외로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끝까지 HIT> 자체 집계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동안 비상장 신약 바이오텍에 유입된 투자자금은 약 2100억원으로 전체 헬스케어 업계에 유입된 자금 약 8500억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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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율로는 예년 동기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바이오 투자 붐'이 일며 약 4000억원이 유입됐던 2021년 상반기의 절반 수준이다. 다만 작년 상반기와 비교하면 투자금액의 절대적 규모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23년 상반기에 비상장 신약 바이오텍 섹터가 유치한 약 1280억원에 비해 1.7배 가량 성장한 수치다.
올해 상반기 국내 CRO 업계의 실적은 신약개발업계 투자유치 회복세와 대부분 동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바이오텍이 유치한 투자금은 상당 부분 비임상ㆍ임상개발을 위해 CRO에 지불되므로, 바이오 투자시장과 CRO의 실적이 커플링(Couplingㆍ동조화)돼 있을 것이란 일반적인 기대를 벗어나는 결과다.
의약품 개발에 연관된 주요 CRO 업체 현황을 살펴본 결과, 임상 CRO 섹터는 양극화 현상이, 비임상 CRO 섹터는 실적 부진이 관찰됐다.
임상 CRO 섹터에 양극화 조짐?
"가격경쟁 심화, 덩치 큰 곳이 특히 유리
임상시험 용역서비스를 주요 매출원으로 삼는 씨엔알리서치, 드림씨아이에스, 클립스비엔씨 등 3개사는 작년 동기 대비 올해 상반기 매출이 증가했다. 이 중 씨엔알리서치는 영업이익이 20% 감소한 반면 드림씨아이에스는 작년 8억원 손실에 이어 올해 13억원 이익을 내며 흑자전환했으며, 클립스비엔씨는 영업손실 폭을 46%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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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들 3개사의 매출 증대는 바이오텍 투자시장 회복세와 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의 수주총액이 일괄적으로 증가하진 않았는데다, CRO의 매출은 항상 당기의 신규 수주분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씨앤알리서치의 수주총액은 작년 상반기 2662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2870억원으로 증가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현재 매출 구조는 70%가 신약개발 임상으로, 나머지 30%는 시판후 조사(Post Marketing SurveillanceㆍPMS) 혹은 관찰조사(Observation StudyㆍOS)다.
드림씨아이에스의 수주총액은 작년 상반기 441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364억원으로 감소했다. 현재 매출의 50%가량은 시판후 조사 및 관찰조사로 구성됐으며, 신약개발 임상은 약 25%를 차지한다.
분ㆍ반기보고서에 공시되는 임상 CRO의 매출은 당기에 발생한 신규 수주분이 아니라, 수주총액 중 실제로 서비스가 집행된 부분의 매출만을 반영한다. CRO 업계 관계자는 "임상 CRO의 정기 공시에 나오는 매출은 최근 1년간의 바이오 투자시장보다는 2~3년 전의 투자시장을 비춘다"며 "그 당시 계약된 임상시험들이 진행되면서 특정 마일스톤을 지날 때마다 고객사로부터 입금이 진행되고, 이것이 당기 매출로 인식되는 것"이라 설명했다.
반면 같은 임상 CRO인 현대에이디엠바이오와 바이오인프라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감소했다. 업계에 따르면 임상 CRO를 표방하는 다수의 비상장 업체들도 같은 양상을 보이는데, 그 배경으로 가격경쟁과 약가인하 정책이 꼽힌다.
바이오텍 관계자는 "작년부터 국내 유수 CRO들이 제시하는 임상시험 견적금액이 업체 규모와 관계없이 눈에 띄게 저렴해지고 있다”며 "이 경우 퀄리티가 조금 더 보장될 것으로 보이는 대형 CRO에 시험을 맡기게 된다"고 말했다.
임상 CRO BD(사업개발)도 "타 CRO에서 제시했다는 임상시험 견적을 듣는 경우가 있는데, 판매관리비 등 원가를 제외하면 이익이 남는 금액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며 "국내 임상 CRO들이 수주할 수 있는 시험의 파이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만큼, 가격적으로 출혈경쟁을 해서라도 매출을 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체력이 뒷받침되는 대형 CRO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한 바이오인프라를 위시한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생동시험) 전문업체들은 약가인하 정책으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지난 2020년과 2021년에 각각 시행된 계단형 약가제도와 임상시험 자료 공동이용 제한(1+3 제도) 영향으로 제약사들이 CRO에 생동시험을 의뢰해 제네릭을 개발하려는 의지가 감소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지난 한 해 동안 바이오텍 투자시장이 회복세를 보인 것과 임상 CRO 업계의 실적은 단기적으로 큰 영향을 주고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임상 CRO의 실적 증가분은 대부분 수 년 전에 체결된 계약이 반영된 것이며, 하락분은 업체 간 출혈경쟁이나 약가인하제도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투심 회복에도 실적 부진했던 비임상 CRO
"바이오텍 신약개발 양상 바뀐 탓"
국내 임상 CRO들의 실적이 엇갈린 것과 달리, 비임상 CRO 업계는 대부분 실적 부진을 면치 못했다. 주요 코스닥 상장사 5개 업체 중 코아스템켐온, 에이치엘비바이오스텝, 바이오톡스텍, 디티앤씨알오는 올해 상반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작년 동기 대비 감소했으며, 증가세를 보인 곳은 우정바이오 한 곳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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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텍 투심이 회복되면 신약 비임상 개발 의뢰 건수가 함께 증가할 것'이란 업계의 종전 예상이 빗나간 양상에 대해 CROㆍ신약 바이오텍 관계자들은 "투자시장 침체의 관성으로 바이오텍의 신약개발 전략이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첫 번째 변화는 신규 파이프라인 개발 건수의 감소다.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개발하더라도 후속 개발을 위한 자금이 미래에 유입되지 못할 것이란 심리가 만연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시리즈A 단계 신약개발 바이오텍 대표는 "신규 후보물질 도출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며 "진도가 가장 빠른 리드(Lead) 파이프라인을 임상 1상에 진입시키는 것이 급선무로, 비임상 실험을 하더라도 해당 파이프라인에 한정된 것들만 진행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정은 두 번째 변화인 해외 업체 이용률 증가로 이어진다. 비임상 CRO 한 관계자는 "찰스리버(Charles River), 코반스(Covance), 우시앱텍(Wuxi Apptec) 등 메이저한 해외 비임상 CRO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GLP 독성실험 패키지를 국내사 대비 훨씬 비싸게 제공했다"며 "이젠 이들도 패키지 가격을 대폭 인하해서 국내 바이오텍에 접촉한다. 여전히 더 비싸긴 하지만, 퀄리티와 해외 임상 진입을 고려하면 해외 비임상 CRO에 마음이 더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투자 시장이 조금 살아났다 하더라도, 투자금이 넘쳐나던 2021년 당시와 바이오텍의 심리가 판이하게 다르다"며 "자금이 풍부할 때는 국내 비임상 CRO에도 많은 수의 비임상 프로젝트를 맡겨 여러 파이프라인을 개발했지만, 지난 3년간 투자가 끊기면서 '하나라도 제대로 개발하겠다'는 심리 때문에 해외 비임상 CRO를 더욱 쓰는 게 아니겠나"라고 추측했다.
내수 의존도 줄이고 독자기술 연구개발하는 건 어떤가
"기술영업 인력 부족"
바이오 투자시장의 회복에도 불구, 특히 비임상 CRO 업계가 고전하는 근본적인 이유로는 '높은 내수 의존도'와 '전문성 부족'이 거론된다. 내수에 크게 의지한 결과 국내 바이오텍 환경 변화에 실적이 좌우되는데다 해외 비임상 CRO와 경쟁 가능한 전문 기술이 부족해 가격경쟁ㆍ품질경쟁에서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국제적으로 규격화가 잘 된 편인 GLP 독성실험 패키지 혹은 non-GLP PK(Pharmacokineticsㆍ약동) 실험 등을 주로 제공하는 업체에서 빈발한다.
이러한 점에 착안해 위기에 대비하는 업체들도 있다. 일례로 비상장 비임상 업체 휴믹은 작년 한 해 매출 9억원을 뛰어넘어 올해 3분기 기준 15억원의 매출을 올린 상태다. 인간화 마우스라는 동물모델에 특히 전문화해 신약개발을 경험한 인력 위주로 연구진을 구성한 게 주효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자체 연구개발한 특정 모델과 신약개발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의뢰사의 파이프라인에 대한 개발 컨설팅이 가능해 'CDRO(Contract Development Research Organizationㆍ연구개발 위탁업체)'로 구조를 잡아나가고 있다.
키프라임리서치는 올해 상반기에 고전한 편에 속하나, '영장류 비임상 실험업체'라는 전문성을 강화하는 중이다. 회사 측에 따르면 현 매출의 60%가량이 해외발 non-GLP 영장류 PK실험과 DRF(Dose Range Findingㆍ투여용량결정)실험에서 발생한다. 영장류 개체와 벤더(Vendor) 관리에 공을 들이면서, 작년부터 지속돼 온 세계적인 영장류 수급 대란에 대응한 결과다. 회사 측 관계자는 "해외 제약ㆍ바이오텍은 비임상 실험을 맡길 때 가격보다는 퀄리티를 위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며 "작고 쉬운 실험부터 수주받아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점차 계약 규모를 키워나가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인력 부족 문제는 과제로 남아있다. 국내 상장 비임상 CRO 임원은 "독자기술 연구개발 또는 전문성 강화 후 해외발 수주를 받으려면 기술영업이 가능한 인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며 "국내 영업으로 한정한다 해도, 실험과 개발과정을 잘 이해하면서 영업 마인드까지 갖춘 인력을 찾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이어 "여기에 외국어 능력까지 갖춘 인재들은 대부분 상위 제약사나 바이오텍의 BD팀으로 가는 실정"이라며 "BD 부족도 만성화된 상태라 CRO들은 인재를 확보하기 더 어렵다"고 말했다.
히트뉴스(hitnews.co.kr) 박성수 기자 입력 2024.10.18 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