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키우려 '검은 배' 받아들이는 일본 "신약개발의 땅 만들겠다" 선언
재팬 바이오 인베이전 JAPAN INVASION
총리 진두지휘
산학연계·더딘 상업화·적은 투자 문제 해결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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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바이오'에 승부를 걸었다. 최근 추이는 심상치 않다. 해외를 향해문을 열었다. 규제까지 바꿔가며 '신약개발의 땅'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 새 경쟁자가 등장한만큼 우리 역량을 더 크게 집중시켜야 할 때다. '기초 연구력은 일본에 뒤져도, 응용력은 앞선다'는 우리 스스로 자평은 얼마나 견고하고 지속가능한 것인가. 히트뉴스는 '재팬 바이오 인베이전' 시리즈를 통해 일본의 동향을 살펴보고, 타산지석 삼으려 한다.
(상) 일본은 왜, 바이오를 선택했나
(중) 한중 향해 달려드는 일본 CDMO
(하) 갈라파고스 탈출 선언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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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우라가(현재 요코하마 인근) 지역에 미국이 만든 새까맣게 칠한, 철로 만든 배가 등장합니다. 커다란 배 위 사이로 뿜어져나오는 증기는 당시 나무배만을 알고 있던 일본인에게는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사건 이후 에도 막부는 시간을 끌며 이슈를 수그러트리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배는 등장 이후 일본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부릅니다. 개화파와 쇄국파의 갈등을 극으로 치닫게 했고 당시 지식인들을 토론의 장으로 끌었습니다. 결국 일본의 문호는 열렸고 우리 나라를 비롯해 아시아권 여러국가를 강제점령하고, 전쟁을 일으키며, 결국 자국의 패전까지 이어지는 군국주의를 탄생시킵니다. 그리고 훗날 역사가들은 이 사건을 '검은배(흑선, 쿠로후네)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지금 일본이 새 검은배 맞이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올해 7월 30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총리 관저에서 '신약 생태계 서밋'을 열고 '자국 제약바이오 산업 발전을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시행하겠다'는 내용을 밝혔습니다. 이 날 회의에는 우리나라의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경제산업성 관계자는 물론 주요 신약개발 관련 관계자 및 자문위원, 쇼난헬스이노베이션파크 등 국내 클러스터 운영 주체, 엔젤투자 및 주요 벤처캐피탈 관계자 등에 이어 리소좀 축적질환 환우회 등 약과 관련한 이들 다수가 참여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기사다 총리의 일성은 "일본을 신약개발의 땅"으로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앞서 '창약(신약개발)력 구상 회의'를 통해 5월 관계자들의 중지를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아진 정책 추진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자국 개발 환경을 선진국이 찾아올 정도로 구축하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사람에게 시험약물을 처음으로 투약하는 '퍼스트인휴먼(First-in-Human)' 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해외의 제약기업과 벤처캐피탈을 불러들이는 동시 기존 스타트업 및 학교내 기업의 역량을 키워 실용화까지 과정을 연속 지원하는 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약 개발 생태계를 보다 이른 단계부터 지원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어 스타트업의 민간 투자액을 2028년까지 두 배로 늘리는 동시에 기업가치 1000억원 이상 창약 스타트업을 다수 배출하는 등 생태계를 확립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일본 정부는 2025년부터 바이오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민관협의체를 만드는 한편 경제산업성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보건복지부의 위치인 후생노동성과 식품의약품안전처급 기구인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까지 다양하게 정책의 변화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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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세계 3위' 시장 여전하다는데
왜 바이오의 존재감은 희미할까
일본 바이오업계 관계자들이 정부가 이 정도 규모의 회의를 여는 일은 드문 일이라고 표현할 만큼, '일본을 신약개발의 땅'으로 만들겠다고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합성의약품 강자로 세계 3위의 제약 강국이라는 감투를 쓰고는 있지만 바이오 분야에서는 특정 분야를 제외하고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약품 시장 조사기관 아이큐비아 재팬의 자료를 보면 2023년 일본의 의약품 전체 시장 규모는 11조2806억엔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3.1% 증가했습니다. 코로나19 등에서 꺾였던 하락세가 2년 연속 상승으로 돌아섰습니다. 시장 자체만으로 단일 국가 3위의 대국입니다. 성장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매출 증가로 일본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시다 총리가 전한 세 가지 정책 가우데 두 번째와 세 번째를 관통하는 바이오 생태계를 먼저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중 먼저 생태계의 경우 구축은 소위 '잃어버린 바이오 20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비영리 싱크탱크인 Information Technology and Innovation Foundation이 2022년 발간한 보고서 이름은 일본 바이오시장이 성장하기 어려운 이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이오의약품의 경쟁력을 무너트린 일본 : 여기서 얻는 교훈이란' 이라는 도발적인 보고서를 잠깐 인용하자면 일본의 제도적 그리고 조직적인 문제가 바이오생태계 구축을 막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고서는 침체된 바이오 분야의 문제를 산학연계의 문제, 자국 내 기업가 정신을 가진 스타트업 기업 그리고 위험부담 경감을 돕지 않는 사회적 환경에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2년 전 기준이지만 일본의 대학에서 매년 개발되는 신기술 관련 라이선스는 3.9%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의 17.1%에 크게 못미치는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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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자본의 부족 역시 큽니다. 2020년 기준 일본에서 제약기업, 바이오텍 및 헬스케어텍에 투자된 전체 금액은 5억4300만달러, 우리돈 7330억원에 불과합니다. 2016년 3억2400만달러에 비하면 67%p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미국이 366억달러임을 감안하면 의약품 시장 규모에 비하면 적은 수치입니다.
같은 기간 한 개의 바이오텍이 받는 평균 투자금액을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집니다. 역시 미국은 3000만달러 선인데 비해 일본은 91만7000달러에 불과했습니다. 그 해 한국기업의 투자규모가 평균 1곳당 1000만달러였으니 채 10분의 1이 되지 않는 금액인 셈입니다.
일본 내 투자 감소의 이유는 시장 조사기관인 맥킨지앤컴퍼니가 2021년 해당 상황을 분석한 관련 보고서에서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보고서에서는 '서구 제약사들은 이노베이션 생태계를 육성하기 위해 외부 파트너와 적극 관여한 반면 일본의 기업은 이 점(투자)에서 늦어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같은 경향은 꽤 오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2004년 OECD가 발간한 의약품 관련 보고서에서는 일본 제약사들이 자사 개발 원칙을 중심으로 두고 있다는 점을 전합니다.
산업화 연구는 '존경'도 못받는다?
너무나 깊은 신약의 '데스 밸리'
또 하나는 앞서 나온 위험 부담과 책임의 문제입니다. 실제 지난해 요코하마에서 열린 바이오재팬에서 일본의 한 제약사 관계자는 "일본 기업의 경우 신중하다는 점이 양면의 칼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상업화를 위해 만드는 의약품인 만큼 라이선스 인 과정에서 기술 가능성부터 시작해 꼼꼼한 감정이 이뤄지는데, 이는 라이선스 계약에서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때로는 너무 지나친 수준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벤처캐피탈 등의 투자도 초기 기술투자에 비해 어느 정도 기술이 완숙한 기업을 고르는 경우가 많다. 투자금액은 늘어나지만 여러 회사의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더욱이 개발 과정에서 한 회사가 투자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타 회사는 '도의상' 라이선스 계약에 제한이 없는 상황임에도 (기업을) 건드리지 않는 배타성이 있는 측면도 있다"고 전합니다.
연구에서 상업화의 계단이 너무 높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국내 제약 및 바이오 관계자들이 이야기하는 중론은 '일본의 기초과학 분야 퀄리티가 상당히 높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원천기술을 제품으로 끌어오는 단계는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지난해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일본 바이오텍 관계자는 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일본에서는 선생님(의료기관 의사)들이 뛰어난 연구를 가지고 있음에도 교수 창업을 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뭅니다. 나는 '학자’라는 인식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면 기업이 반짝거리는 기술을 직접 찾아내야 합니다. 찾아낸 이후에도 역할이 나눠져 있어 여기까지는 내(의사)가, 여기부터는 기업이, 여기는 누가 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이 있습니다."
일본 정부 역시 노력을 안했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 2021년 11월 880억달러 상당의 '대학 펀드’를 설립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학내 연구개발을 가속화하는 한편 민간 부문의 기술이전을 진척시키기 위해 공적 자금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앞서 나온 ITIF 재단의 보고서에서는 이같은 이유를 한 바이오텍 대표의 입을 빌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시 50억달러 규모의 바이오 분야 스타트업 공동설립자인 스가 히데아키 도쿄대학교 교수는 해당 보고서에서 "문제의 대부분은 (학자가) 상업화를 하는 것보다 학술연구를 하는 쪽을(학자를) 더욱 높게 평가한다는 데 있다"며 "상업화를 추구하는 과학자는 기초과학자보다 존경받지 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연구에 집중하지 않는 '과욋일 하는 이’처럼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나온 연구와 상업화 과정에서 나온 바이오텍 관계자의 말과 궤를 함께 합니다.
이를 찾아내고 투자를 할 수 있는 곳은 인프라가 넓고 깊은 소위 '상위제약사'일 가능성이 높은데, 타 제약사는 배타성 문제로 원활한 교류를 하기 어렵고, 그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업 역시 초기단계 즉 '신약의 데스밸리’를 견뎌야 하는 입장에 처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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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클러스터? 아직은 글로벌 없다" 자성도
그럼에도 일본은 '계획대로' 가고 있다
대학펀드에 앞서서는 생태계 자체를 구축하기 위한 정부 안팎의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끝까지HIT>에 소개된 바 있는 '고베의료산업도시'와 지난해 전했던 '쇼난 아이파크', 2014년 연구개발을 위한 특별구역에 지정된 바 있는 도쿄 니혼바시 지역의 'LINK-J' 등은 각각 고베시, 다케다약품, 미츠이부동산이 각각 기틀을 만들었고 현재 적게는 100여개에서 많게는 300개 기업의 이상이 입주 혹은 멤버로 참여해 네트워킹 체계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들의 노력에 비해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은 더디다는 평가입니다.
실제 경제산업성 내 산업구조번의회가 2021년 2월 발표한 '제5차 산업혁명 관련 보고서 내용에서는 수도권 및 지방권 내 클러스터의 등장은 생태계를 촉진하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아직 '글로벌 바이오커뮤니티’라고 부를만한 곳이 없다고 자평합니다. 경제산업성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총 5개의 대책을 발표하는데 이 안에서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은 '국내외에서의 투자 및 인재 육성과 유치' 부문입니다.
결국 해외의 기업과 벤처캐피탈을 유치해 분위기를 개선하자는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는 앞서 나온 문제들을 상쇄하기 위함입니다. 특히 다케다 등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배타성을 보이던 업계 전반을 개선하기 위한 '턴어라운드’가 필요한 셈인 것입니다.
앞서 나온 경제산업성의 보고서는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내용 면에서 최근 몇 년간 우리 정부와 다른 부분은 크지 않아 보이지만 현재까지 이 보고서가 지적한 인재 및 해외 기업 유치 계획, 규제, 산업집적도 문제는 보고서의 흐름에 맞춰 진행 중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쿠로후네’의 상륙을 강하게 어필하는 상황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히트뉴스(hitnews.co.kr) 이우진 기자 입력 2024.08.19 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