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토픽] (Nature 사설) COVID 백신의 특허권 유예(patent reprieve)를 검토할 때다
작금의 팬데믹은 업체 간의 경쟁(competition between companies)으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며,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의 보다 균등한 배분(more-equal distribution) 없이 종식될 수 없다.
▶ 1인당 2도스를 가정할 때, 지구촌 주민의 70%를 면역화하려면 약 110억 도스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 3월말 현재 86억 도스에 대한 주문이 확정되었는데, 이 정도면 외견상 괄목한 만한 성과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 그중에서 약 60억 도스의 물량은 고소득 및 중소득 국가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전 세계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가난한 나라들이 지금껏 접근한 물량은 가용백신의 1/3에 못 미친다.
이 같은 불균형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는, '잘사는 나라들'이 '비교적 소수의 백신생산 업체들'—이들 중 대부분은 잘사는 나라에 본사를 두고 있다—로부터 선주문(advance order)을 통해 상당량의 백신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의 예측에 따르면, "제조 및 공급이 더욱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을 경우, 저소득 국가의 주민들 중 유의미한 비율이 백신을 접종받으려면 최소한 2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라고 한다.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주도하는 약 100개국 모임이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에게 "COVID-19와 관련된 지적재산권(IP: intellectual-property right)의 한시적 철폐(time-limited lifting)에 동의하라"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들은 주요 백신 공급자들에게 "당신들의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보다 많은 나라들이 「'자국 국민'과 '저소득 국가 국민'들을 위한 백신 생산」을 시작할 수 있게 하라"라고 촉구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생각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일시적 지적재산권 포기(IP waiver)는 팬데믹의 종식을 앞당기는 데 일익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잘사는 나라와 제약사들은 '일시적 지적재산권 포기'를 통해 "대의(大義)를 위해 얼마간의 이윤을 포기할 의향이 있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게 될 것이다. '일시적 지적재산권 포기'를 추진하는 캠페인을 가리켜 「피플스백신(the People's Vaccine)」이라고 하며, UN의 HIV/AIDS 기구인 UNAIDS는 물론 많은 비정부기구(NGO)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피플스백신」 지지자들의 지적에 따르면, "많은 나라들이 이미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공공기금(public funding)을 통해 R&D와 선구매계약(advance purchase agreement)에 관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라고 한다. 그리고 팬데믹이 끝난 후에는 IP 보호가 재개될 거라고 한다.
▶ 그러나 제약사, 잘사는 나라, 그리고 일부 연구자들은 "일시적 특허권 유예가 백신의 제조나 공급을 반드시 앞당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전 세계의 백신제조 능력(capacity)에 여유가 있는지 불투명하다고 한다. 설사 특허권이 적용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백신의 제반요소들을 확보하고, 공장을 건설하고, 인력을 훈련하고, 관련법령을 제정하려면—백신이 공급되려면 이 네 가지가 필수적이다—1년 이상이 소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IP 유예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방안은, 제약사들로 하여금 소정의 대가를 받고 제품 설계에 대한 라이센싱을 늘리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업체들이 백신을 생산하도록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더하여, 세계보건기구(WHO)는 별도의 기관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 임무는 제약사들로 하여 자사(自社)의 백신에 대한 테크놀로지, 기술, 그 밖의 노하우를 공유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또한 제약사와 잘사는 나라들은 "이미 코백스(COVAX)라는 백신배분계획을 지원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한다. 코백스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국가의 '가장 취약한 그룹'의 20%에게 백신을 접종하기 위해) 2021년에 20억 도스라는 목표를 설정했으며, 현재 10억 도스 이상의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잉여물량의 기증을 고려하는) 잘사는 나라들 중 일부가 전 국민에게 백신을 접종할 때까지는(참고 1), 코백스가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할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주에 'IP 유예의 장점'을 언급하기 전까지, 잘사는 나라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IP 유예를 반대했었다. 그러나 잘사는 나라들의 정책변경을 이끌어낼 수 있는 한 가지 요인이 생겼으니, 여러 업체들(예: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소재 모더나)의 백신제조기술의 특허출원과 관련하여 미국 정부가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미국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는 다트머스 대학교 하노버 칼리지, 스크립스연구소와 함께, 코로나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조작하는 기술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는데, 그것이 백신의 항원을 개발하는 데 사용될 수 있었다. 일단 특허권이 부여되면, 미국 정부는 그 기술을 라이센싱하거나 특허권을 사용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IP 유예를 옹호하는 측의 주장—충분한 설득력이 있다—은 "스파이크 단백질에 대한 특허권이 글로벌 비상사태(예: 전쟁, 팬데믹)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특허권의 취지를 생각해 보자. 발명품을 불공정한 경쟁(unfair competition)으로부터 한시적으로 보호함으로써 발명자에게 금전적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여기서 핵심단어는 '경쟁'이다. 팬데믹이란 '업체들 간의 경쟁'이 아니라 '인류와 바이러스 간의 전쟁'이 벌어지는 긴급 상황이다. 따라서 전 세계 국가와 업체들은 서로 경쟁할 게 아니라, 일치단결하여 팬데믹 종식을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인류사를 되돌아보면 그런 선례가 있었다"라고 영국 리즈 대학교에서 '생명과학에 있어서 IP'를 연구하는 그레이엄 덧필드는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미국 정부는 모든 기업과 대학교들에게 "공동연구를 통해 (병사들을 감염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페니실린 생산량을 증가시켜라"라고 요구했다. 기업들은 "이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생명을 살리고 전쟁을 종식시킨다'는 대의에 종속시킬 필요성을 충분히 납득했다. "미국은 한동안 전 세계의 페니실린을 모두 생산했었다"라고 덧필드는 말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특허권 침해에 대해 시비를 걸지 않았으며, 세상을 인질로 잡고 지나친 가격을 부과하겠다는 생각을 품은 기업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IP 유예의 장점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며, 다른 나라들도 미국의 방침에 동참해야 한다. 그게 최선이 아닐 수도 있고, 백신 공급을 신속히 확대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 수도 있지만, 다음과 같은 중요한 원칙을 대변한다. "살다 보면 경쟁이 연구와 혁신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의를 위해 경쟁을 잠깐 옆으로 제쳐 놓아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 참고문헌
1.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28617&SOURCE=6
※ 출처: Nature 592, 7 (2021)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1-00863-w
바이오토픽 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포터로...
의학약학 양병찬 (2021-03-31)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29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