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토픽] CRISPR 이용한 유전자요법, 혈액장애 치료의 가능성 보여
▶ 1949년, 미국의 생화학자 라이너스 폴링은 겸상적혈구빈혈(sickle-cell anaemia)이 인체의 산소운반단백질인 헤모글로빈의 결함 때문에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그것을 "분자병(molecular disease)"이라고 처음 불렀다(참고 2).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이제, 첨단 유전학 기술 덕분에 겸상적혈구빈혈에 대한 분자치료(molecular treatment)가 가능하게 되었다.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실린 두 편의 논문에서(참고 3, 참고 4), 두 연구팀은 겸상적혈구빈혈의 근본원인을 겨냥하는 두 가지 선구적 유전자요법의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두 가지 치료법 공히 태아헤모글로빈(fetal haemoglobin)이라는 대안적 헤모글로빈의 생성을 증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 연구팀은 CRISPR–Cas9 유전체편집을 이용했는데, 그것은 「유전자편집 시스템을 이용한 유전병 치료」를 설명한 첫 번째 논문으로, 그 기술에 대한 중요한 개념검증(proof of concept)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른 연구팀은 태아헤모글로빈 유전자의 발현을 변경하는 RNA 코드를 이용했다. 두 가지 접근방법 모두, 겸상적혈구빈혈 환자의 심신을 쇠약하게 만드는 통증위기(pain crisis)라는 현상을 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훌륭한 기술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더 없이 좋은 기회다"라고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 의과대학의 르네 가너(소아과)는 말했다. "이로써 겸상적혈구빈혈 환자들에게 희망의 문이 열렸다."
두 건의 임상시험은 소수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수행되었으며, 그 효과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RNA 치료법 임상시험에 참가한 첫 번째 환자는 2년 6개월 전에 치료를 받았다). 한편, CRISPR–Cas9 접근방법은 베타지중해빈혈(β-thalassaemia)이라는 심각한 혈액장애를 치료하는 데도 사용되었는데, 그 임상시험에 참가한 환자들은 (베타지중해성빈혈 환자들이 통상적으로 필요로 하는) 수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두 가지 치료법은 전망이 매우 밝아 보인다"라고 파리 네커소아병원(Necker Children’s Hospital)에서 유전자치료를 연구하는 마리나 카바자나는 말했다. "겸상적혈구빈혈이라는 엄청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 이상의 새로운 기술이 출시되어야 한다."
▶ 겸상적혈구빈혈과 베타지중해빈혈은, 단일유전자의 변이에서 비롯된 가장 흔한 유전장애의 대표적 사례다. 두 가지 질병 모두 헤모글로빈의 구성요소인 베타글로빈(β-globin)의 생성에 악영향을 미친다. 중증 베타지중해빈혈 환자는 빈혈을 경험하며; 겸상적혈구빈혈의 경우에는 적혈구가 변형되어 엉겨 붙음으로써 혈관을 막기 때문에, 간혹 조직의 산소가 결핍되어 발작적 통증을 경험한다. 매년 전 세계에서 6만 명의 사람들이 중증 베타지중해빈혈로, 3만 명의 사람들이 겸상적혈구빈혈로 진단 받는다.
두 가지 질병 모두 골수이식을 통해 치료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적절한 공여자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 다양한 실험적 유전자접근방법들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에 EU은 진테글로(Zynteglo)라는 유전자요법을 베타지중해빈혈 치료제로 승인한 바 있다. 진테글로는 바이러스를 이용해 기능적 베타글로빈 유전자를 조혈모세포(blood-producing stem cell)에 전달한다.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소재 블루버드바이오(Blurbird Bio)는 겸상적혈구빈혈 환자를 대상으로 그와 비슷한 치료법에 대한 임상시험을 수행하고 있다.
CRISPR와 RNA 접근방법은 진테글로와 다른 경로를 밟는다. 그것들은 태아헤모글로빈의 발현을 증가시키려고 하는데, 태아헤모글로빈은 통상적으로 자궁 속의 태아에서 생성되다가 출생 직후 중단된다. 연구자들은 "태아헤모글로빈의 스위치를 다시 켬으로써, 겸상적혈구빈혈이나 베타지중해빈혈 환자의 불능화된 베타글로빈을 보상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두 연구팀은 이번 논문에서, 그게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먼저, 매사추세츠에 있는 두 업체—보스턴 소재 버텍스 파마슈티컬스(Vertex Pharmaceuticals)와 케임브리지 소재 CRISPR 테라퓨틱스(CRISPR Therapeutics)—의 연구자들은 CRISPR–Cas9을 이용하여, BCL11A라는 유전자(태아헤모글로빈의 생성을 중단시키는 데 필요한 유전자)의 한 부분을 변경했다. 이 유전자를 불능화함으로써, 연구팀은 성인의 적혈구에서 태아헤모글로빈이 다시 생성되기를 바라고 있다.
다음으로, 보스턴 소아병원의 데이비드 윌리엄스(혈액학)와 블루버드바이오의 연구팀은 RNA 단편을 이용하여, 환자의 적혈구에서 BCL11A 유전자의 스위치를 껐다.
첫 번째 연구팀은 이번 논문에서, 두 명의 참가자들(한 명은 베타지중해빈혈 환자이고 다른 한 명은 겸상적혈구빈혈 환자다)에게서 나온 데이터를 제시했다. "그러나 논문을 작성한 이후, 우리는 지금까지 총 19명의 환자들을 치료했다"고 버텍스의 최고과학책임자(CSO)인 데이비드 알트슐러는 말했다. 두 번째 연구팀은 이번 논문에서 여섯 명의 사례를 보고했는데, 그 이후 세 명의 환자를 더 치료했다고 한다.
임상시험에 참가한 베타지중해빈혈 환자들은 지금까지 수혈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있으며, 겸상적혈구빈혈 환자들은 통증위기를 호소하지 않았다고 한다. 치료법의 부작용(감염과 복통 포함)은 일시적이었으며, 치료와 관련하여 골수를 처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두 임상시험 모두에서, 연구팀들은 조혈모세포를 골수에서 채취한 후 변형하여 환자에게 다시 주입했다. 그러나 조혈모세포를 다시 주입하기 전, 약물을 이용해 남아 있는 조혈모세포들을 제거했다. 이와 같은 치료법은 어렵고 위험하며, 환자들은 골수가 회복될 때까지 감염의 위험에 직면한다. 또한 환자의 생식능력이 손상될 수도 있다. 따라서 연구팀들은 손쉽고 위험 부담이 적은 골수 처치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참고 5).
"더욱 안전한 치료법이 개발될 때까지, 두 가지 치료법은 (다른 약물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중증질환 환자에게만 사용되어야 한다"라고 런던 킹스칼리지 병원의 데이비스 리스(혈액학)는 말했다. "이번 논문들은 과학적으로 흥미롭지만, 당분간 주류 치료법으로 자리 잡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참고문헌
1. https://cen.acs.org/business/CRISPR-gene-editing-humans-appears/97/i46
2.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110/2865/543
3. https://doi.org/10.1056%2FNEJMoa2031054
4. https://doi.org/10.1056%2FNEJMoa2029392
5.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9-03601-5
※ 출처: Nature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0-03476-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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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토픽 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포터로...
의학약학 양병찬 (20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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