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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토픽] CRISPR를 이용한 유전자침묵으로 만성통증 치료

산포로 2021. 3. 12. 14:34

[바이오토픽] CRISPR를 이용한 유전자침묵으로 만성통증 치료

 

Schematic of the overall strategy used for in situ NaV1.7 repression using ZFP-KRAB and KRAB-dCas9 via the intrathecal route of administration (ROA).

▶ 옥시코돈(oxycodone) 한 알을 꿀꺽 삼키면 신경을 잠재워 통증을 가라앉힐 수 있지만, 그 약은 뇌—정확히 말하면, 탐닉을 초래하고 호흡을 억제하는 중추—안에서 다른 불청객을 만든다. 이제 생쥐를 이용한 연구에서, 통증 신호전달(pain signaling)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잠재움으로써, 눈에 띄는 부작용 없이 특정한 유형의 통증을 예방하거나 역전시킬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만약 그 접근방법이 추가적인 테스트를 통해 검증된다면, 만성통증 환자에게 아편유사제(opioid)보다 안전하고 지속적인 옵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는 한 편의 아름다운 논문을 빚어냈다"라고 애리조나 대학교에서 통증의 메커니즘과 잠재적인 치료법을 연구하는 라제시 칸나(신경화학)는 말했다. 칸나에 의하면, 드물고 치명적인 장애에 대한 유전자요법의 성공(참고 1)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통증을 치료하는 유전학적 접근방법을 탐구한 연구팀들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왜 그럴까? 그 부분적인 이유는, 「'불구를 초래하지만 영구적이거나 치명적이지 않은 질병'을 치료한답시고 '유전체를 영구적으로 바꾸는 방법'」에 대한 꺼림칙한 느낌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제시한 접근방법은 DNA 시퀀스 자체를 바꾸지 않으며, 이론적으로 가역적이다"라고 칸나는 지적했다. "내 생각에, 이번 연구는 나의 벤치마크가 될 것 같다."

▶ 손가락을 찔리거나 장(腸)에 펀치를 맞으면 통증이 발생하는데, 그 이유는 인체에 퍼져 있는 신경들이 척수를 경유하여 메시지(통증신호)를 뇌에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는 부상이 치유된 후에도 지속됨으로써 만성통증을 초래할 수 있다.

통증을 감지하는 신경은 '이온의 흐름'에 의존하여 전기신호(electrical signal)를 발사하고, 그 신호는 막(膜)에 존재하는 단백질 채널을 넘나든다. 그런 채널 중 하나는 Nav1.7인데, 그게 오작동할 경우 발생하는 놀랄 만한 통증장애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다. Nav1.7의 과잉활성을 초래하는 유전적 변이를 보유한 사람들은 타는 듯한 통증(burning pain)을 자주 경험하는 데 반해, Nav1.7을 불활성화를 초래하는 유전적 변이를 보유한 사람들은 통증을 아예 느끼지 않는다(참고 2).

"의학 교과서에서, 당신은 손가락이 없고 코가 뭉개진 사람의 사진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의 모습이 그토록 흉칙하게 된 것은, 자해를 하고서도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의 클라우디아 좀머(신경학)는 말했다.

Nav1.7는 진통제의 명백한 표적이지만, 그 채널을 차단하는 것은 매우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초기 후보약물 중 여럿이 임상시험에서 고비를 마셨다. Nav1.7 차단제가 직면한 도전 중 하나는 "Nav1.7를 차단하려다 자칫 Nav 패밀리의 유사한 채널들을 차단할 수 있는데, 그것들이 신경계나 심장 등의 다른 기관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관점을 바꿔, 세포들이 맨 처음 만드는 Nav1.7의 양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UCSD의 아나 모레노(생명공학)가 이끄는 연구팀은 "분자가위"로 유명한 유전자편집기 CRISPR를 변형했다. 그들은 절단효소인 Cas9를 변경하여, 'Nav1.7을 만드는 DNA'를 절단하지 않고 그 DNA에 결합함으로써, Nav1.7 단백질의 생성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이러한 침묵효과(silencing effect)를 극대화하기 위해, Cas9를 한 억제자(repressor)—유전자발현을 억제하는 또 다른 단백질—에 올려 태웠다.

▶ 연구팀은 변형된 Cas9 접근방법—그리고 또 다른 유전자편집 단백질인 징크핑거(zinc finger)를 이용한 유사한 접근방법—의 효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화학요법제인 파클리탁셀(paclitaxel)로 처리한 생쥐를 이용했다(파클리탁셀은 암 환자들에게 만성 신경통을 초래할 수 있다). 연구팀은 생쥐의 앞발을 가느다란 나일론섬유로 찌르는 방식으로 통증을 측정했다. 파클리탁셀은 생쥐로 하여금 앞발을 살짝 찔러도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는데, 이는 통상적인 무통자극(nonpainful stimulus)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연구팀이 척수액에 CRISPR를 주입한 지 한 달 후, 생쥐들은 파클리탁셀을 투여 받지 않은 생쥐와 거의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에 반해, 치료받지 않은 생쥐들은 여전히 나일론섬유 자극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연구팀은 이상의 연구결과를 3월 10일 《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발표했다(참고 3).

이번 접근방법은, 생쥐의 앞발에 (염증초래 분자인) 카라지넌(carrageenan)이나 (통증민감성을 증가시키는 분자인) BzATP를 주입한 후의 통증도 예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CRISPR로 치료받은 생쥐들의 다른 쪽 앞발—카라지넌으로 염증을 일으키지 않은 앞발—을 뜨거운 표면에 노출시켜 보니, 치료받지 않은 생쥐들과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무적인 현상이다. 왜냐하면 Nav1.7이 (모든 통증에 대해 '위험한 무감각'이 초래될 정도로) 완전히 침묵되지 않았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라고 모레노는 말했다. 지금까지 실시된 행동실험에서 우려되는 부작용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고, CRISPR를 주입받은 생쥐들의 운동·인지·불안수준은 변화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모레노에 의하면, CRISPR로 치료받은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고 한다. 그녀가 이끄는 연구팀은 치료받은 후 10개월 동안 '카라지넌에 노출된 생쥐‘를 연구했는데, 여전히 효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에 의하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후성유전체(epigenome)—DNA에 결합하여, 유전자발현을 조절하는 화합물—가 변화함으로써 유전자침묵 단백질의 효과가 역전될 거라고 한다.

"이번 접근방법은 매우 기발하다"라고 이오니스 파마슈티컬스(Ionis Pharmaceuticals)의 신경학 책임자인 홀리 코르다시에빅스는 말했다. 이오니스는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antisense oligonucleotide)라는 유전자 가닥을 이용하여 Nav1.7의 생성을 차단하는 진통제를 개발하고 있는데, 코르다시에빅스에 의하면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의 효과는 이번 접근방법(유전자침묵)보다 지속기간이 짧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비용이다.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만성통증과 같은 흔한 질환을 유전적 전략으로 예방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고 유니버니시칼리지런던(UCL)의 존 우드(신경행물학)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유전자요법은 지적으로 매우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특히 유전물질을 세포에 배달하는 바이러스의) 비용이 매우 많이 들기 때문에, 많은 업체들로 하여금 투자하기를 망설이게 한다."

모레노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유전자침묵 치료법은, 이미 임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유전자요법보다 '저용량'과 '저비용'으로 작동하는 치료법이다. 그녀가 염두에 둔 방법은, 순환하는 혈류(circulation bloodstream)보다는 척수주입(spinal injection)을 통해 약물을 표적세포에 정밀하게 배달하는 것이다.

또한 그녀와 협동연구자들은 자신들의 접근방법을 상품화하기 위해 나베가 테라퓨틱스(Navega Therapeutics)라는 업체를 설립했다. 나베가의 첫 번째 목표는 (Nav1.7의 과잉활성에 의해 초래되는 희귀한 유전성 통증장애인) 유전성 홍색팔다리통증(inherited erythromelalgia)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유전자침묵을 이용해 더욱 흔한 유형의 만성통증(화학요법과 당뇨병에 의해 초래되는 신경통 보함)을 치료하는 것이다. 그들은 현재 필수적인 다음 단계—비인간영장류(nonhuman primate)를 이용한 테스트—를 준비하고 있다.

 

※ 참고문헌
1. https://www.sciencemag.org/news/2017/11/gene-therapy-s-new-hope-neuron-targeting-virus-saving-infant-lives
2. https://www.sciencemag.org/news/2006/12/no-pain-sciences-gain
3. https://stm.sciencemag.org/content/13/584/eaay9056

※ 출처: Science https://www.sciencemag.org/news/2021/03/gene-silencing-injection-reverses-pain-mice

 

바이오토픽 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포터로...

 

의학약학 양병찬 (2021-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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