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토픽] COVID-19는 감기/인플루엔자 시즌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을 진압하기 위한 공중보건 조치들이 아이러니하게 인플루엔자와 대부분의 다른 호흡기질환들을 잠재우고 있다. 이는 광범위한 시사점을 던지는 것으로 보인다.
해마다 12월 중순이 되면, 북반구는 본격적인 감기 및 인플루엔자 시즌에 접어드는 게 상례다. 그러나 올해에는 다르다. 지금까지 수십 개 나라에서 COVID-19 팬데믹이 극성을 부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흔한 계절성 감염병이 극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SARS-CoV-2 코로나바이러스가 초래한 팬데믹은 전 세계에서 최소한 6,700만 명을 감염시켜 15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런데 그 부수적 효과로, 팬데믹과 싸우기 위해 동원된 수단들—일시적인 록다운,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개인위행 강화, 여행 제한—이 다른 흔한 호흡기질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지금은 여름철에 접어든 남반구의 경우, 계절성 인플루엔자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채 겨울철을 넘긴 바 있다. 그렇다면 북반구도 그럴 거라고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그와 정반대로, 남반구에서는 지난겨울에 몇몇 보통감기 바이러스들이 창궐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어떤 경우에는 보통감기 바이러스들이 COVID-19를 예방해 줬는지도 모른다'는 흥미로운 증거를 제시한다.
감기와 인플루엔자는 인류와 오랜 역사를 함께해 왔지만, 그것들을 초래한 바이러스들은 여전히 많은 미스터리에 휩싸여 있다. 과학자들의 바람은, 올해와 같이 혼란스러운 감기/인플루엔자 시즌에 '달갑잖은 겨울의 불청객'의 전파 및 행동에 대한 요긴한 정보—이를테면 감기/인플루엔자 바이러스들이 보건조치(health measures)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런 바이러스들끼리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정보가 장기적인 질병부담(disease burden)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얻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수많은 호흡기 바이러스에 대해 자연실험(natural experiment)을 하고 있다"라고 미국 질변통제예방센터(CDC) 산하 국립면역및호흡기질환센터(National Center for Immunization and Respiratory Diseases)의 소냐 올센(역학)은 말했다.
흐지부지된 인플루엔자. 그 이유는?
많은 나라들이 '제1차 COVID-19 파도'의 끝물에 있었고, 가장 강력한 록다운 조치가 취해졌던 지난 5월, 보건의료 종사자들은 "북반구에서 「2019-20 인플루엔자 시즌」이 갑자기 조기 종결되었다"(참고 1; 한글번역)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 이유가 뭘까? 일부 전문가들은, 병원에 가는 사람들이 줄어들어서 그렇다고 한다. 물론 그런 면도 있겠지만,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정책의 효율성을 무시할 수 없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팬데믹이 시작되었을 때 인플루엔자 양성판정률이 무려 98%나 하락한 데 반해, 병원을 방문한 사람의 수는 겨우 61%만 하락했다(참고 2). 그 결과 CDC는 미국의 「2019-20 인플루엔자 시즌」을 "중하(中下)"로 평가했다. 즉, 미국에서는 그 기간에 3,800만 명의 사람들이 인플루엔자에 걸려 22,000명이 사망했는데, 근래에 들어 낮은 수준이지만 역대급은 아니었다.
북반구에서 평년보다 빨리 막을 내린 후, 인플루엔자 시즌은 남반구에서는 거의 명함도 못 내밀었다. 2020년 4월부터 6월까지, 글로벌 COVID-19 사례가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가운데서도 남반구의 계절성 인플루엔자는 놀랍도록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호주, 칠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83,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인플루엔자 검사를 받았는데, 겨우 51명이 양성판정을 받았으니 말이다(참고 2). "우리가 알기로, 계절성 인플루엔자는 코로나바이러스보다 전파력이 낮다." 올센은 말했다. "설사 그렇더라도, 차이가 너무 난다." 결론적으로 인플루엔자의 격감은 '팬데믹에 대한 대응조치'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일부 남아메리카 국가들의 경우, COVID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인플루엔자 발병률이 낮았다"고 테네시주 멤피스 소재 성(聖)유다병원의 리처드 웨비(바이러스학)는 말했다.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모든 공을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해외여행 감소가 일익을 담당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인플루엔자는 매년 겨울 전 세계에 유행하지만, 열대지방에서는 일 년 내내 바닥권에 머문다. 이러한 행동의 밑바탕에 깔린 메커니즘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람의 이동'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인플루엔자 백신접종의 증가도 한몫했을 것이다. 예컨대 호주의 경우, 2020년 5월 20일 현재 730만 명이 인플루엔자 예방주사를 맞았는데, 2019년 같은 기간에는 450만 명이 예방주사를 맞았다. 그러나 이런 트렌트가 북반구에도 적용되는지는 확실치 않다.
미국의 경우, 인플루엔자 백신접종률은 다년간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 왔다. 2019-20년 미국인의 백신접종률은 50%를 약간 상회하는데, 이는 전년도보다 2.6% 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올해에 인플루엔자 백신을 더 맞을지 덜 맞을지는 알 수 없으며, 팬데믹의 소용돌이와 대통령의 교체를 감안할 때 더더욱 그렇다.
미지의 바이러스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올해 북반구의 인플루엔자 시즌이 매우 수월할 거라고 조심스레 전망한다. 그건 여러 면에서 희소식이다. 특히 인플루엔자와 COVID-19의 이중고에 직면한 보건의료시스템—병원에서부터 검사소에 이르기까지—의 부담을 덜어 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우리는 인플루엔자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예컨대 호주는 여러 해 동안 인플루엔자의 피해를 많이 입었지만, 이웃나라(예: 뉴질랜드)의 경우에는 발병률이 매우 낮았다. 그 이유가 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플루엔자의 계절성은 전혀 이해되지 않았으며, 인플루엔자가 세계를 여행하는 메커니즘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는 인플루엔자가 왜 겨울철 질병인지도 아직 모르고 있다"라고 웨비는 말했다. "2020년의 데이터를 갖고서 인플루엔자에 대한 의문을 푸는 것은 흥미롭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올센은 말했다. "왜냐하면 팬데믹에 대한 정책과 순응도가 나라, 주(州), 심지어 이웃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세의 변화'가 새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만약 올해에 북반구의 인플루엔자 시즌이 흐지부지된다면, 「2021년 인플루엔자 백신」에 적합한 바이러스를 예측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장기적으로 흥미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웨비의 추측에 따르면, 인플루엔자가 맹위를 떨치지 않을 경우 '덜 흔한 변이체'가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최근 수많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들이 유행해 왔다. 그들이 이번 시즌을 버틸까, 못 버틸까?" 그는 물었다. "만약 이번 시즌에 인플루엔자가 맥을 못 춘다면 바이러스의 그림이 훨씬 간단해질 수 있다. 어쩌면 그게 영속화될 수도 있다."
그와 동시에, 웨비에 의하면, 인간숙주 안에서 바이러스들 간의 경쟁이 줄어들 경우 미래의 새로운 돼지플루(swine-flu) 변이체에게 문을 열어 줄 수 있다고 한다. "매년 농업박람회 시즌에, 몇 가지 돼지플루 바이러스가 유행한다." 웨비는 말했다. 그런 바이러스를 견제하는 요인 중 하나는 자연면역(natural immunity)이다. 만약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몇 시즌 동안 꼬리를 내린다면, 돼지플루 바이러스가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를 남길 수 있다."
"장담하건대, 미래의 어느 단계에 이르면 인플루엔자가 다시 돌아와 맹위를 떨칠 것이다." 호주 그리피스 대학교의 로버트 웨어(임상역학)는 말했다. "어쩌면 몇 년 후가 될 수도 있다."
(...To be continued...)
※ 참고문헌
1.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0-01538-8 (한글번역 https://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17442&SOURCE=6)
2. https://doi.org/10.15585%2Fmmwr.mm6937a6
※ 출처: Nature 588, 388-390 (2020)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0-03519-3
텐 드럭스 : 인류의 역사를 바꾼 가장 지적인 약 이야기
최고의 저자와 최고의 번역자가 만나다 약사 출신의 번역가가 극찬한, 의약계의 실상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
www.ibric.org
바이오토픽 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포터로...
의학약학 양병찬 (2020-12-16)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254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