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토픽] 호주, 신개념의 COVID-19 백신 개발을 중단한 이유
12월 11일, 호주산 COVID-19 백신의 개발을 지원하던 기관들은 "더 이상의 개발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안전성 시험에서 후보백신을 처음 접종받은 사람들 중 일부가 의도치 않은 표적인 'AIDS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생성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뭘까? 의도한 표적인 'SARS-CoV-2의 스파이크 단백질'의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HIV 단백질의 단편'이 후보백신에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추가된 요소가 임상시험 참가자를 HIV에 감염시킬 리 만무하지만, 백신 개발자와 호주 정부는 "후보백신이 널리 보급될 경우, HIV 진단검사를 방해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백신의 효능을 측정하기 위한 대규모 임상시험을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또한 최근 다른 후보백신들의 효능이 강력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웬만한 백신을 개발해서는 승산이 없을 거라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호주산 백신의 배경에 깔린 분자클램프(molecular clamp; 참고 1)라는 기술은, 호주 퀸즐랜드 대학교(UQ)가 (여러 개의 COVID-19 후보백신을 지원하고 있는) CEPI(Coalition for Epidemic Preparedness Innovations)라는 글로벌 비영리단체의 지원을 받아 개발한 것이다. 호주 멜버른 소재 제약사인 CSL(CSL Limited)은 UQ로부터 후보백신을 개발권을 양도받아, 임상 2상과 3상을 거쳐 제조할 계획이었다.
"분자클램프는 COVID-19 후보백신 중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접근방법이다"라고 그리피스 대학교 골드코스트 캠퍼스의 애덤 테일러(바이러스학)는 말했다.
요즘 잘나가는 후보백신들과 마찬가지로, UQ-CSL 백신도 SARS-CoV-2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인체의 면역계에 제시함으로써 그에 대한 항체를 생성하게 한다. 그런데 스파이크 단백질이라는 게 그리 간단하지 않다. 스파이크 단백질은 세포를 감염시키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지만, 인간 세포의 수용체 단백질에 결합(또는 융합)하는 과정에서 접힘(folding)과 재형성(reconfiguring)을 거치게 된다. 분자클램프 접근방법은 융합전 형태(prefusion configuration)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것은 융합후 형태(postfusion form) 속에 숨어 있는 스파이크의 일부를 노출하여 더욱 강력한 항체반응을 촉발할 수 있다. 그러나 융합전 형태는 안정성이 떨어지므로, UQ의 연구팀은 그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분자클램프를 도입했다. 연구팀은 (80개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HIV의 단백질의 단편이 그 안정성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른 연구팀들은 스파이크 단백질에 변이를 도입함으로써 더욱 안정한 형태로 만드는 접근방법을 사용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HIV 단편이 자신에 대한 항체의 생성을 유도함으로써 진단검사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물론 연구팀은 HIV의 구성요소가 면역반응을 촉발할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UQ와 CSL이 온라인으로 발표한 공동성명서에 따르면(참고 2), 그 수준이 특정 HIV 검사를 방해할 정도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문제성 있는 'HIV 단백질 면역반응'을 논외로 하면, 지난 7월 216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임상시험에서, UQ-CSL 백신의 강력한 효능과 안전성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HIV 단백질에 대한 항체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임상 1상(안전성 시험)이 계속될 예정이지만, 항체의 수준은 이미 떨어지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UQ의 연구팀은 동료심사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기 위해 모든 데이터를 제출할 예정이다.
"백신을 재설계할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스케줄이 1년쯤 지연된다"라고 UQ의 폴 영(바이러스학)은 말했다. "임상 1상은 매우 고무적이었으며, 후속연구를 통해 분자클램프 기술은 장차 백신 개발의 든든한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CEPI는 따로 발표한 성명서에서(참고 3), "분자클램프라는 개념의 가능성을 아직도 신뢰하며, 이와 관련하여 UQ의 연구팀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호주의 언론에 따르면, 호주 정부는 UQ-CSL 백신 5,100만 회분의 구매 계약서에 서명했지만, 3개의 다른 백신 개발자들과도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다른 백신들이 임상 3상에서 좋은 성과를 낸 만큼, UQ-CSL가 없더라도 백신 공급에는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호주 국립대학교의 감염병 전문가 산자야 세나나야케는 말했다.
※ 참고문헌
1.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7672035/
2. https://www.uq.edu.au/news/article/2020/12/update-uq-covid-19-vaccine
3. https://cepi.net/news_cepi/cepi-statement-on-university-of-queensland-and-csl-covid-19-vaccine-candidate/
※ 출처: Science https://www.sciencemag.org/news/2020/12/development-unique-australian-covid-19-vaccine-hal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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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토픽 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포터로...
의학약학 양병찬 (20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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