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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토픽] 호모섹슈얼리티가, 인류가 진화하는 동안 계속된 이유는?

산포로 2021. 9. 2. 10:06

[바이오토픽] 호모섹슈얼리티가, 인류가 진화하는 동안 계속된 이유는?

 

The study involved Western participants - so the next step will be to look at other populations. Stanley Dai/Unsplash, CC BY / ⓒ The Conversation

진화생물학자들에게, 호모섹슈얼리티의 유전학은 역설인 것처럼 보인다. 이론적으로, 다른 동성(同性)에게만 이끌리는 사람과 다른 동물들은 많은 생물학적 자손을 낳을 수 없을 테니, 호모섹슈얼리티의 소인(素因)을 부여하는 유전자가 미래 세대에 대물림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 간의 이끌림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으며, 연구자들은 그게 부분적으로 유전에 기인한다고 제안했다.

이제 연구자들은 수십 만 명의 사람들에게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하여  동성간 행동과 관련될 수 있는 유전적 패턴을 확인하고, 그 패턴이 이성 커플을 찾아 생식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메커니즘을 밝혔다. 저자들은 8월 23일 《Nature Human Behaviour》에 실린 논문(참고 1)에서, 이번 발견이 호모섹슈얼리티의 소인을 부여하는 유전자가 계속 대물림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다른 과학자들은 '이번 데이터가 확정적인 결론을 제공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호주 브리즈번 소재 퀸즐랜드 대학교의 브렌던 지치(진화유전학)가 이끄는 연구팀은 UK 바이오뱅크(UK Biobank), 「미국 청소년 및 성인 건강 추적연구(US National Longitudinal Study of Adolescent to Adult Health)」, 23andMe의 데이터를 이용했다. (이 세 가지 데이터에는, 참가자들의 유전체 염기서열과, 설문지를 통해 수집된 신상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그들은 '동성인 누군가와 한 번 이상 성관계를 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477,522명의 유전체를 분석한 다음, 그 유전체를 '이성과만 성관계를 한다'고 응답한 358,426명의 유전체와 비교했다. 연구팀은 젠더가 아니라 생물학적 성(性)만을 연구대상으로 삼았으며, 젠더와 '성'이 일치하지 않는 참가자는 제외했다.

[연구팀은 선행연구에서(참고 2), 한 명 이상의 동성 파트너를 보유한 사람들은 '유전체 전역에 산재하는 작은 유전적 차이의 패턴'을 공유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적이 있다. 그런 차이(변이)들 중에서 독자적으로 성적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어서, "소위 '게이 유전자'라는 것의 징후는 전혀 없다"(참고 3; 한글번역)라는 기존의 연구결과가 재확인되었다. 그러나 그런 변이들의 집합체(collection)는 하나의 작은 효과를 보이는 듯하며, 유전율(heritability)의 8%~25%를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연구팀은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60대(代)에 걸쳐 인간의 유전을 시뮬레이션했다. 그랬더니, 생존이나 생식에 어떻게든 도움이 되지 않는 한, 동성간 행동과 관련된 유전적 변이의 집합체는 궁극적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버랩되는 유전자들

지치가 이끄는 연구팀은 그런 유전적 패턴이 한 사람의 성적 파트너 수를 늘림으로써 진화적 이점을 제공할 수 있는지 여부를 테스트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이성간 성관계만 했던 참가자'들을 '본인들이 응답한 파트너의 수'별로 분류했다. 그 결과, '파트너 수가 많은 이성애자'들은, 연구팀이 '동성 파트너가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에게서 발견한 표지자(marker) 중 일부를 공유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동성 간의 만남을 가졌던 사람들은, 설문지에서 '나는 위험 감수자(risk taker)이며, 새로운 경험에 개방적이다'라고 진술한 사람들과 유전적 표지자를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동성간 행동과 관련된 유전자를 보유한 이성애자'와 '인터뷰어에게 신체적인 매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은 사람' 사이에는 약간의 유전적 오버랩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리스마나 성충동 같은 형질도 동성간 행동과 오버랩 되는 유전자를 공유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그런 형질은 데이터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므로, 그냥 추측일 뿐이다"라고 지치는 말했다.

저자들은 이번 연구의 많은 한계점들을 인정한다. 모든 참가자들은 영국이나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유럽계 혈통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데이터베이스에 수록된 설문에서는 '성적 이끌림'이 아니라 '성적 행동'을 물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태어난 나라에서 호모섹슈얼리티가 불법이거나 문화적 금기(taboo)이던 시절'에 태어났기 때문에, 동성인 타인에게 이끌리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동성간 성관계에 성공하지 못함으로써 이번 연구에서 제외되었을 것이다.

코네티컷주 뉴헤이븐 소재 예일 대학교의 줄리아 몽크(생태학, 진화생물학)는, 이러한 한계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번 연구결과를 갖고서 유전학과 성지향성에 대해 어떤 실질적 결론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에서, 성적 행동과 생식은 전통사회에서 볼 수 없었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므로 그것이 인류의 진화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추론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오늘날에는 성병이 치료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옛날보다 더 많은 파트너들과 성관계를 한다. 그리고 피임약과 불임치료의 존재는, 유전자가 제공할 수 있는 많은 생식상 이점을 무효화한다. "성(性)과 생식에 관한 한, 사람들의 행동은 문화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유전학을 파헤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약한 관련성

킹스칼리지 런던(KCL)의 카지 라만(심리학)은 이번 연구가 잘 수행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몇 가지 결론에 회의적이다. 그에 의하면, 데이터 세트가 '자신의 성적 행동을 연구자에게 드러내려는 의향─이 자체가 (유전적 데이터에 반영될 수 있는) 위험 감수 행동으로 간주될 수 있다─이 있는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고 한다. 그는 또한, 데이터를 '남녀별', 그리고 '동성 파트너만 보유한 사람'과 '이성 파트너를 가진 사람'으로 나눈 다음에는, 각 그룹의 규모가 매우 작아지므로 유전적 연관성이 매우 약해진다고 덧붙인다.

성지향성의 유전학에 관한 최초의 논문 중 몇 편을 출판한 딘 헤이머(유전학)─지금은 은퇴한 후 하와이 할레이와에 거주하고 있다─는 이번 연구에 실망하고 있다. "성지향성을 '동성 간 만남'에만 기반하여 규정하는 것은 사람을 범주화하는 유용한 방법이 아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연구팀은 심지어 올바른 사람에게 올바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헤이머가 생각하기에, 연구팀은 '새로운 기회에 대한 개방성'과 관련된 유전적 표지자를 발견했을 뿐이라고 한다. '동성 파트너를 가진 사람'과 '많은 파트너를 가진 이성애자' 사이의 유전적 오버랩이 관찰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지치에 의하면, 위험 감수는 '동성 간 만남과 관련된 표지자'와 '파트너 수와 관련된 표지자' 간의 통계적 관련성의 일부를 설명할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동성 간 경험 하나만을 성지향성의 지표로 사용한 것이 이상적이 아니었음을 인정하지만, 그건 UK 바이오뱅크가 이끌림에 대한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23andMe의 데이터를 이용한 선행연구에서, 지치는 '동성 간 성 경험을 진술한 사람'과 '동성 간 이끌림을 진술한 사람' 사이에 강력한 유전적 오버랩이 존재함을 확인한 바 있다. 이는 동일한 유전자가 두 가지 요인을 제어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헤이머도 복잡한 행동을 유전학과 관련짓는 게 지극히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연구팀이 성지향성을 연구하는 것을 반가워하고 있다. "인류 진화의 추동력임에도 불구하고, 성지향성에 대한 연구는 너무나 빈약한 게 현실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들의 문제 제기는 훌륭하며, 단지 답을 얻지 못했을 뿐이다."

 

※ 참고문헌
1. https://doi.org/10.1038%2Fs41562-021-01168-8
2. https://doi.org/10.1126%2Fscience.aat7693
3.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9-02585-6 (https://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08454&SOURCE=6)

※ 출처
1. Nature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1-02312-0
2. University of Queensland in Brisbane/ The Conversation https://theconversation.com/why-has-same-sex-sexual-behaviour-persisted-during-evolution-166571

바이오토픽 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

 

생명과학 양병찬 (2021-09-02)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34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