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토픽] 전화위복(轉禍爲福): 20년 묵은 SARS의 선물?
SARS-CoV-2가 찾아오기 거의 20년 전, 그보다 더 치명적인 코로나바이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을 초래한 바이러스—가 패닉을 파종했다. 전세계에서 8,000명을 감염시켜, 감염자 중 거의 10%를 죽음으로 몰고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3년의 SARS 집단감염은 일부 생존자들에게 뜻밖의 선물을 제공한 것 같다. 《NEJM(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된 새로운 연구에 의하면(참고 1), "종전에 SARS에 걸렸던 사람들 중에서 이번에 COVID-19 백신을 접종받은 사람들은, 현재 유행하는 모든 SARS-CoV-2 변이주는 물론 (앞으로 인간에게 점프할) 다른 종(種)의 코로나바이러스까지도 물리치는, 슈퍼면역성을 획득할 수 있다"라고 하니 말이다. 그들이 보유한 가공할 만한 항체는 미래의 집단감염을 미연에 방지하는 소위 범코로나바이러스백신(pancoronavirus vaccine)을 만드는 데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싱가포르 듀크-NUS 의대(Duke-NUS Medical School)의 신규질병 전문가인 왕린파(王林发)가 이끄는 연구팀은, 최근 한 mRNA COVID-19 백신을 2회 접종받은 8명의 SARS 환자를 분석했다. 시험관 실험에서, 그들의 혈액에서 추출한 항체는 (SARS를 초래한) SARS-CoV는 물론, 초기 SARS-CoV2 주(株)까지도 강력하게 중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나아가, 그 중화항체는 SARS-CoV2의 알파·베타·델타 변이주를 거뜬히 격파하고, 그것도 모자라 (인간을 감염시킬 잠재력을 보유한) 박쥐와 천산갑에서 발견된 5가지 코로나바이러스까지도 모조리 제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사르베코바이러스(sarbecovirus)—SARS와 COVID-19의 병원체를 포함하는 코로나바이러스의 부분집합—에 대항하는 광범위 면역성(broad spectrum immunity)의 존재를 증명한 것으로, 경이롭고 매우 반가운 뉴스다"라고 듀크 대학교에서 범(凡)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연구하는 프리얌바다 아차리아(구조생물학)는 논평했다. "이번 논문은 범(凡)사르베코바이러스 백신이 가능하다는 개념증명(proof of principle)을 제시했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소위 꿈의 예방백신(dreamed of protection; 참고 2)을 개발하려고 노력하는 여러 명의 연구자들은 입을 모아, "이번 연구는 오랫동안 희망해 온 「모든 코로나바이러스에 작동하는 백신」을 향해 중요한 걸음을 내디뎠다"라고 말하고 있다.
SARS-CoV와 SARS-CoV-2는 약 80% 일치하며, 둘 다 표면단백질인 스파이크가 인간의 세포 수용체인 ACE2(angiotensin-converting enzyme 2)에 결합할 때 감염을 개시한다. 그래서 王은 올해에 다른 연구자들이 "SARS에서 회복한 사람들은 SARS-CoV가 ACE2 수용체에 결합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항체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 항체가 SARS-CoV-2에는 맥을 추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보고했을 때 깜짝 놀랐다. "내 머릿속에는 늘 이런 생각이 맴돌았다. '두 바이러스가 동일한 수용체에 결합하는데, 왜 두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사람들의 항체는 교차중화(cross neutralization)를 하지 못할까?'"라고 그는 말했다.
면역계의 B세포들은 어떤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한 꾸러미(potpourri)의 항체'를 만들지만, 실험실 테스트에서는 전형적으로 딱 하나, '가장 풍부한 B세포'의 존재를 측정할 뿐이다. "SARS 생존자들은 'SARS-CoV와 SARS-CoV-2를 모두 인식하는 B세포 집단'을 보유하고 있을 텐데, 워낙 소수파이기 때문에 발견하기가 어려울 뿐"이라고 王은 추론했다. "만약 그렇다면, COVID-19 백신이 그런 이중작용 B세포(double-action B cell)들을 자극함으로써 SARS 생존자의 면역성을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王이 이끄는 연구팀은 「COVID-19 백신을 접종받은 SARS 생존자들—이들은 모두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보건의료종사자들이다—에게서 채취한 중화항체」를 「COVID-19 백신을 접종받지 받은 SARS 생존자들에게서 채취한 중화항체」와 비교해 봤다. 또한 연구팀은 3가지 다른 그룹들(최근 COVID-19에 걸린 미접종자, COVID-19에서 회복한 접종자, SARS-CoV-2에 감염된 적이 없는 접종자)에서 채취한 항체들도 분석했다.
연구팀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방법—ACE2와 '상이한 스파이크 단백질의 수용체결합영역(RBDs: receptor-binding domains)' 간의 결합을 차단하는 항체의 능력을 테스트하는 방법—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 10가지 상이한 코로나바이러스를 모두 중화하는 코호트는 딱 하나, 「COVID-19 백신을 접종받은 SARS 생존자」밖에 없었다. 게다가 각각의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중화항체의 수준은 비교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건 초미의 관심사다"라고 워싱턴 대학교 시애틀 캠퍼스에서 범코로나바이러스를 연구하는 닐 킹(생명공학)은 말했다. "이번 연구를 계기로, 연구자들의 우선순위가 바뀔 것으로 보인다."
원대한 목표(범코로나바이러스 백신 개발)를 달성하려 노력하는 연구팀들 중 상당수는 8가지 이상의 바이러스로부터 추출한 스파이크 단백질이나 핵심적인 RBD를 결합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 따르면, 단 2개의 스파이크 단백질(또는 RBD)만 결합하더라도 그보다 '덜 원대한 목표(less ambitious goal)'—모든 사르베코바이러스를 무찌르는 백신—를 달성하는 데 충분하다는 것이 王의 생각이다. 하지만 王은 「COVID-19 백신을 접종받은 SARS 생존자」의 항체들이 탁월한 성능을 발휘하는 이유를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그것은 백신을 설계하는 데 필수적인데, 그 이유는 RBDs 자체가 원하는 면역반응을 촉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면역원(immunogen)을 설계하려면 복잡한 구조생물학적 분석(王이 이끄는 연구팀은 현재 이 작업을 하고 있다)을 통해, 항체가 RBDs의 정확히 어떤 부분에 결합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그 정보가 나오면, 연구자들은 역공학(reverse engineering)을 통해 '탁월한 항체의 생성'을 촉발하는 부분을 찾아낼 수 있다.
'가능한 SARS-CoV-2에 대한 부스터 백신'이나 '범사르베코바이러스 백신'의 개발을 위해, 王은 "최선의 면역원은 'SARS-CoV'와 '천산갑과 박쥐의 SARS-관련 바이러스'의 공통영역을 결합하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우리는 SARS-CoV-2 백신의 효능이 가능하면 멀리까지 미치기를 원한다. 그렇게 하려면, 인간의 면역계로 하여금 공통적인 중화항체(common neutralizing antibody)를 만들어 내게 해야 한다."
스크립스 연구소에서 범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고 있는 앤드루 워드(구조생물학)는 王의 연구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SARS-CoV와 SARS-CoV-2를 모두 무찌르는 면역성이 광범위한 사르베코바이러스를 무찌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는 않는다. 그는 이번 연구가 수행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에 놀라고 있다. "극소수의 SARS 생존자들로부터 채취한 혈액은 독특한 자원으로,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그는 말했다(참고 3).
王에 의하면, 이번 연구가 가능했던 것은 두 가지 요인 때문이었다고 한다. 첫째는 SARS 생존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인데, 이는 싱가포르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SARS 감염사례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들이 개발한 새로운 분석방법이다. "지금 당장 이런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실은 별로 없다"라고 그는 말했다.
※ 참고문헌
1. https://www.nejm.org/doi/full/10.1056/NEJMoa2108453
2. https://www.sciencemag.org/news/2021/04/vaccines-can-protect-against-many-coronaviruses-could-prevent-another-pandemic
3. https://www.sciencemag.org/news/2021/08/covid-19-vaccines-may-trigger-superimmunity-people-who-had-sars-long-ago
※ 출처: Duke-NUS Medical School
https://www.duke-nus.edu.sg/allnews/media-releases/new-study-boosts-hopes-for-a-broad-vaccine
바이오토픽 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
의학약학 양병찬 (2021-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