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토픽] 장군멍군: 탁란조에 대항하여 진화한 맞춤형 장기 기억
▶ 북아메리카 전체를 통틀어 수백 종(種)의 새들이 '제 새끼'가 아니라 '남의 새끼'를 기르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들은 찌르레기(cowbird)라는 탁란조(brood parasite)의 희생자인 것이다. 찌르레기는 희생자들의 한배 알(clutch) 속에 자기의 알을 추가한 다음, 그들로 하여금 자기의 새끼를 키우게 하는 재주를 부린다. 하지만 찌르레기의 표적 중 하나인 노랑아메리카솔새(yellow warbler)의 수컷은 특별한 대응기술을 개발했는데, 그 내용인즉 '자신의 영토를 염탐하는 찌르레기가 발견되는 즉시, 알을 품는 암컷에게 경고신호를 보낸다'는 것이다. 이제 연구자들은 "암컷 노랑아메리카솔새들이 경고신호에 하루 동안 반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그들의 장기기억(long-term memory)이 지금껏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쓸만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것은 매우 정교하고 미묘한 행동반응(behavioral response)이다"라고 몬태나 대학교 미술라 캠퍼스의 에릭 그린(행동생태학)은 논평했다. "정말 멋지다. 나는 놀라움보다는 경외감(敬畏感)을 느낀다."
새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탁월한 지능을 보유한 '눈부신 과학자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예컨대, 캘리포니아덤불어치(Western scrub jay)는 자신이 겨울에 식량을 저장해 둔 장소를 기억하며, 심지어 부패하는 시기를 지속적으로 체크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새들은 특정한 유의미한 신호(meaningful call)를 기억하는, 인상적인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동물은 '영리할 필요가 있는 맥락(context)'에서 영리하다"라고 이번 연구의 공동저자인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 캠퍼스(UIUC)와 베를린 고등학술연구소(Wissenschaftskolleg zu Berlin)의 마크 하우버(동물행동학)는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에서, 노랑아메리카솔새들이 '시트(seet)'라고 알려진 '중요한 경고신호'를 기억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 수컷 노랑아메리카솔새들은 찌르레기가 근처에 있을 때만 '스타카토 리듬'의 경고신호를 발령한다. 그 소리를 들은 암컷들은 둥지로 돌아가, 정좌(正坐)한 채 부동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의미에서, 수컷의 경고신호를 "시트(seat)"라고 부르는 게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암컷들이 다음날 아침에도 그 경고를 기억하고 있는지 여부는 지금껏 미스터리였다.
그래서 UIUC의 연구팀은 캠퍼스 근처에서 27개의 노랑아메리카솔새 둥지를 발견한 후, 암컷들을 10분 동안 '고요함'과 '두 가지 소리 중 하나'에 노출시켰다. 한 가지 소리는 '시트'를 녹음한 것이고, 다른 소리는 (포식자나 경쟁자의 존재를 알릴 때 사용되는) '일반적인 경고'—이것을 칩(chip)이라고 한다—를 녹음한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연구팀은 80분(찌르레기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해뜨기 전 20분'과 '해 뜬 후 60분') 동안 노랑아메리카솔새를 관찰했다.
"해뜨기 직전 어둑어둑할 때, 새를 관찰하기가 매우 어려웠다"라고 이번 연구를 지휘한 UIUC의 셸비 로슨(행동생태학)은 말했다. "우리는 노랑아메리카솔새의 행동을 관찰하기 위해, 한 시간 동안 꼼짝하지 않고 둥지만 쳐다봤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연구팀은 새의 둥지 속에 온도계를 설치함으로써 새의 존재를 탐지했다.
연구 결과, '시트 소리를 들은 암컷 노랑아메리카솔새'들은 '아무 소리도 듣지 않은 노랑아메리카솔새'보다 둥지를 떠나는 빈도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칩 소리의 경우, 그녀들이 둥지를 떠나는 빈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상의 연구결과를 지난달 《Biology Letters》에 발표했다(참고 1). "연구가 끝난 지 16시간 후에도, 노랑아메리카솔새들은 찌르레기의 위협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했다"라고 하우버는 말했다. "그렇다면 시트 소리는 '장기기억'의 의미가 담긴 신호라고 할 수 있다."
▶ 이번 연구는 새의 장기기억 연구에 단서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찌르레기의 표적인 200여 종(種)의 새들 중에서, 「찌르레기 맞춤형 경고신호(warning call tailored to cowbird)」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것은 지금까지 노랑아메리카솔새밖에 없었다. "이번 연구에서, 그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특별한 경고신호에 담긴 정보를 '캘리포니아덤불어치의 장기기억과 비슷한 기억장치'를 이용해 저장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라고 하우버는 말했다.
로슨의 바람은, '정보가 처리되는 과정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노랑아메리카솔새들에게 다양한 소리를 들려주면서 활성화되는 뇌(腦)의 영역을 추적하는 것'이다. 예컨대, '찌르레기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와 '시트 소리를 들었을 때' 동일한 뇌 영역이 활성화될까?
※ 참고문헌
1. https://royalsocietypublishing.org/doi/10.1098/rsbl.2021.0377
※ 출처
1. Carl R. Woese Institute for Genomic Biology at University of Illinois, Urbana-Champaign https://www.igb.illinois.edu/article/referential-alarm-calls-increase-vigilance-brood-parasite-hosts
2. Science News https://www.science.org/content/article/yellow-warblers-remember-warning-calls-1-day-later-suggesting-long-term-memory
바이오토픽 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
생명과학 양병찬 (2021-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