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토픽] 인간의 시각(양안시)은 언제 진화했나?
인간은 경이로운 눈을 갖고 있다. 피사체의 형태, 심도(深度), 눈부신 색깔을 감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인간이 보유한 시각의 전형적인 특징은, 양쪽 눈에서 입력된 이미지를 양쪽 뇌에서 동시에 처리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소위 양측시각투사(bilateral visual projection), 또는 양안시(binocular vision)라고 한다. 모든 포유동물들이 이러한 유형의 시각을 보유하고 있지만, 물고기는 축소된 버전(scaled-back version)의 양안시를 갖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즉, 물고기의 경우에는 한쪽 눈에서 입력된 정보가 반대쪽 뇌에만 투사된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과학자들은 양안시가 지금으로부터 3억 7,500여만 년 전, 그러니까 물고기가 육지에 상륙했을 때 등장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양안시는, 야간에 사냥과 매복(埋伏)을 하던 네발동물에게 유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추론이 사실이었을까, 아니면 과학자들의 성급한 판단이었을까?
오래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현대적인 기법을 이용해 물고기의 시각계를 연구했다(참고 1). 먼저, 그들은 두 그룹의 어류에서 11종(種)의 물고기를 선택했다. (1) 한 그룹은 현생어류의 95%를 차지하는 경골어류(teleost)인데, 3억 년 전 모든 유전체가 중복된 후 다른 물고기들과 갈라섰다. 어떤 과학자들은 경골어류가 놀랍도록 다양한 종(種)을 탄생시켰다고 생각한다. (2) 또 다른 그룹은 비경골어류(non-teleost)인데, 이들 중 일부는 살아있는 화석(living fossil)이라고 일컬어진다. 딱 봐도 고대(古代)어류처럼 보이는 비경골어류는,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경골어류보다 더 가까운 친척이다.
두 그룹 중 어느 쪽이 양안시를 보유했는지 알아내기 위해, 과학자들은 형광추적자(fluorescent tracer)를 물고기들의 눈에—양쪽 눈에 각각 다른 색깔로—주입했다. 그들은 7종의 경골어류를 테스트했는데, 그중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물 위에서 보내는) 말뚝망둥어(mudskipper)와 (수면의 위아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네눈박이송사리(largescale four-eyes)가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그들은 4종의 비경골어류를 테스트했는데, 그중에는 철갑상어(sturgeon), 스포티드가(spotted gar),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 호주산 폐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형광추적자가 주입된 지 이틀 후, 연구팀은 물고기의 뇌를 적출하여, 특별한 3D 형광현미경(3D fluorescence microscope)으로 들여다봤다. 포유동물의 경우, 양안시는 망막의 뉴런다발이 '한쪽 눈'에서 '양쪽 뇌'로 시각정보를 보낼 때 작동한다. 대부분의 경골어류에서, 뉴런다발은 한쪽 뇌—기존의 가설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반대쪽 뇌—에만 시각정보를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비경골어류는 그렇지 않았다. 즉, 그들은—포유동물과 마찬가지로—시각정보를 양쪽 뇌에 모두 보냈으며, 심지어 일부 뉴런은 생쥐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같은 쪽 뇌에)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라운 것은, 포유동물에서 '동측투사(same-sided projection)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비경골어류에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경골어류에 양안시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게 진화 초기에 등장했으며, 시기적으로 볼 때 '물고기의 상륙'보다 앞선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쯤 되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양안시가 물고기에게 도대체 무슨 이점을 제공했을까?"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비경골어류의 동측투사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찾아낼 계획이다. 그런 다음 그 유전자를 제거하여, ‘비경골어류의 시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테스트할 계획이다. 만약 그들의 연구가 성공한다면, 우리는 구시대 이론가들과 티격태격할 필요 없이, 물고기 조상들에게 직접 '인류의 시각이 진화한 과정'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배우게 될 것이다.
※ 참고문헌
1. https://science.sciencemag.org/cgi/doi/10.1126/science.abe7790
※ 출처: Science https://www.sciencemag.org/news/2021/04/ancient-fish-share-key-feature-human-vision
바이오토픽 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포터로...
생명과학 양병찬 (202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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