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토픽] 연어의 나비효과: '이주 타이밍' 유전자 하나만 바뀌었을 뿐인데
봄이냐 가을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유전체 시퀀싱과 (캘리포니아주 클라마스강에 사는 인디언 부족의) 어획물 분석 결과, 다양한 개체군에 속하는 연어의 생태형(ecotype)은, 산란이동(spawning migration)의 계절성에 영향을 미치는 단순한 멘델적 다형성(Mendelian polymorphism)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졌다. 오랫동안 생태형을 구별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온 생리적·생식적 차이가, 유전자가 아니라 '여름에 머물렀던 상이한 생태계'의 환경적 영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Photo: Mark Conlin/Alamy Stock Photo) / ⓒ Science
클라마스강(Klamath River) 어귀에서 대대로 살아 온 유록(Yurok) 인디언들에게, 봄에 회귀한 왕연어(Chinook salmon; Oncorhynchus tshawytscha)는 봄의 전령사일 뿐만 아니라, 겨우내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해 주는 식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봄에 돌아오는 연어의 씨가 마르자, 유록 인디언 부족은 '「멸종위기종보호법(Endangered Species Act)」에 의거한 봄에 오는 연어 보호'를 추진하고 있다(참고 1). 그런데 새로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유전자는 '봄에 오는 연어'와 '가을에 오는 사촌'을 가르는 데 있어서 미미한 역할을 수행할 뿐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 이번 연구는 '멸종위기종 지정'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 유록(Yurok)이란 ‘강 하류의 사람들’을 뜻한다. 유록 인디언 부족은 1300년대부터 캘리포니아 해안가와 특히 클라마스강 하류에 정착한 북미대륙 원주민들이었다. 지금은 이 근처 유록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살며 연어잡이를 생업으로 하고 있다.
태평양 연안 북서부에 위치한 오리건·워싱턴·아이다호 북부의 강에는 지금껏 두 가지 종류의 「모천(母川) 회귀성 왕연어」가 풍부했으니, 하나는 '매년 3~4월 바다에서 돌아오는 부류(「봄 연어」)'고 다른 하나는 '그로부터 6개월 후에 돌아오는 부류(「가을 연어」)'다. "두 가지 연어는 엄밀히 말해서 동일한 종(種)임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차이가 있다"고 미국해양대기관리처(NOAA: 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 산하 남서부수산과학센터(Southwest Fisheries Science Center)의 에릭 앤더슨(분자유전학)은 말했다. "「봄 연어」는 작고, 지방질이 많고, 성적으로 덜 성숙하다. 또한 그들은 번식하기 위해 좀 더 상류 쪽으로 올라간다."
그런 차이의 유전학적 근거를 밝히기 위해, 앤더슨과 동료들은 캘리포니아 북부 클라마스강 어귀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유록 어민들과 팀을 꾸렸다. 그들은 4계절별로 상류로 이동하기 시작하는 총 500마리의 연어들을 분석했다. 즉, 모든 연어들의 크기를 측정하고, 지방질 함량(fattiness)과 생식상태(reproductive status)를 평가하고, DNA 샘플을 채취했다. 또한 그들은 다른 강에서도 이와 유사한 데이터를 수집했다.
선행연구에서는, "「봄 연어」와 「가을 연어」는 28번 염색체의 좁은 영역에 자리 잡은 두 개의 유전자(GREB1L과 ROCK1)가 다르다"고 보고한 바 있다. 앤더슨이 이끄는 연구팀은 한걸음 더 나아가, '두 개의 유전자와 봄/가을 형질 간의 관련성'을 확립할 요량으로 160마리의 전장유전체(whole genome)를 시퀀싱했다. "이번 연구는 독특하며, 그 결과 제시된 데이터는 인상적이다"라고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 캠퍼스의 쉴라 판살카르 투르벡(진화생물학)은 논평했다.
유전체 분석 결과, 「봄 연어」는 '제1 버전'의 유전자를 보유하는 데 반해 「가을 연어」는 '제2 버전'의 유전자를 보유하며, 그 유전자들은 지방질 함량이나 성숙도와 전혀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연구팀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지방질 함량과 성숙도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유전자 때문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보다는, 「가을 연어」가 「봄 연어」보다 6개월 후에 측정되었으며, 그 동안 바다에서 뛰어놀며 튼실해질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상의 연구결과를 10월 29일 《Science》에 발표했다(참고 2). "이번 연구의 멋진 점은, 수많은 차이들이 '타이밍' 하나로 설명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것이다"라고 UC 데이비스의 마이클 밀러(유전학)는 말했다. 그는 왕연어의 변이 유전자(참고 3)를 밝히는 데 기여했지만, 이번 연구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타이밍 하나만 바뀌었을 뿐인데, 연쇄효과를 통해 괄목할 만한 결과—일명 나비효과—가 초래된 것이다."
앤더슨에 따르면, 이번 연구에서 밝혀진 또 한 가지 사실은 '「봄 연어」와 「가을 연어」가 종종 교차교배(interbreeding)를 한다'는 것이다. 즉, DNA—그리고 이동하는 연어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교차교배를 통해 탄생한 잡종 연어는 통상적으로 봄과 가을 사이, 특히 한여름에 이주를 시작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교차교배는 "인간이 댐 공사를 통해 하천 풍경을 바꿈으로써, 많은 「봄 연어」들의 상류 이동을 가로막기 훨씬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자연적 유전자교환 과정(natural process of gene exchange)은 까마득한 옛날에 시작되었으며,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고 앤더슨은 말했다.
"어떤 면에서, 이번 연구는 '두 가지 연어를 별도의 범주로 나눠 각각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투르벡은 말했다. "어떤 연구자들은, '잡종 연어'나 '다른 강에서 도입된 「봄 연어」'에서 「봄 연어」가 재탄생할 수 있다고 제안해 왔다. 그러나 다른 연구자들은, 그런 노력을 가리켜 '불안정하거나 새로운 질병을 환경에 도입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런 방법이 바람직한 결과를 초래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라고 밀러는 말했다.
또한 투르벡에 따르면, 교차교배가 최근 급증한 것은 "댐 등을 통한 인간의 변형 때문에 「봄 연어」와 「가을 연어」가 같은 물에서 놀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덩치 큰 「가을 연어」가 「봄 연어」를 압도함에 따라, 먼저 도착한 「봄 연어」—그리고 이주의 타이밍을 지시하는 유전자 버전—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봄 연어」는 클라마스강뿐만 아니라, 태평양 연안 북서부의 다른 수계에서도 실질적으로 멸종을 향해 가고 있다"고 크레이그 터커는 말했다. 그는 카루크(Karuk) 부족—카루크란 '강의 상류 쪽, 발원지를 향하는' 사람들이란 뜻이다—에 자문을 제공하는 독립적인 생물학자로, 「봄 연어」를 보호해 달라고 청원한 인물이다.
터커는 이번 연구를 가리켜 "과학의 물을 흐린다"고 하며, 「봄 연어」 보호 운동을 가로막을까 봐 우려하고 있다. 밀러는 터커의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이번 연구의 진정한 강점은 '「봄 연어」 유전자의 중요성과 독특성은 클라마스강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한 것임을 지적한다. "이번 연구의 핵심 메시지는, 그 유전자들이 종(種) 전체에 걸쳐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 참고문헌
1.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sci/360/6389/590.full.pdf
2. https://science.sciencemag.org/cgi/doi/10.1126/science.aba9059
3. https://www.pnas.org/content/116/2/344
※ 출처: Science https://www.sciencemag.org/news/2020/10/salmon-study-sheds-light-why-fall-run-fish-are-bigger-their-spring-run-cousins
바이오토픽 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포터로...
생명과학 양병찬 (2020-11-04)
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23701&Page=1&PARA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