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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토픽] 생명의 방정식: 물리는 진화를 어떻게 형성하나

산포로 2018. 7. 24. 09:50

[바이오토픽] 생명의 방정식: 물리는 진화를 어떻게 형성하나


물리는 규칙을 만들고, 진화는 주사위를 굴린다. 외계의 생명체는 지구상의 생명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의 우주생물학자 찰스 코켈이 쓴 『생명의 방정식』의 표지에는 움직이는 무당벌레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을 보고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작고, 둥글고, 빨간색/까만색이 뒤섞인 곤충이 나뭇잎을 기어오르는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 출간된 브라이언 콕스의 『경이로운 생명』을 이미 읽었다면, 당신은 이 무심한 생물을 '복잡한 생체역학 엔진'으로 간주하고, 모든 디테일이 열역학적으로 완벽에 가깝게 갈고 닦여 작동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물리학과 생물학을 넘나드는 매혹적인 여행을 통해, 코켈은 '물리원칙이 진화의 과정을 어떻게 제한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증을 펼칠 것이다. 그는 장(章)을 거듭함에 따라 렌즈의 초점을 - 전자전달(electron transport)의 분자기구에서부터 개미군집이 형성하는 사회유기체(social organism)에 이르기까지 - 모든 수준의 생물조직에 맞춘다. 코켈은 각각의 사례에서, "그러한 구조들은 세부적으로 무한할 수 있지만, 형태적으로는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밝힌다. 만약 생물이 체스의 폰(pawn)이라면 물리는 체스의 판(board)과 룰(rule)이어서, 게임이 진행되는 과정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묘미 중 상당부분은, 저자가 제시하는 원리들의 다양함에 있다. 예컨대, 무당벌레의 물리학에 관한 장에서 코켈은 먼저 쉬운 숙제를 하나 내는데, 그 의도는 학생들에게 곤충의 속성에 대해 공부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모든 물리학 원리는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무당벌레의 발과 수직면 사이에서 작용하는 표면장력과 점성력(viscous force)에서부터, 무당벌레의 등에 나타나는 확산으로 인한 패턴형성, 그리고 물이 어는 온도에서 작은 곤충으로서 살아가는 데 작용하는 열역학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논의에는 일련의 방정식들이 수반되는데, 그것들은 평소에 한 권의 교과서에서 한꺼번에 보기 어려운 수식들이다. 코켈은 물리화학에서부터 광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하위분야의 공식들을 나란히 놓고 논의한다.


물리가 생물에 미치는 영향은 일정하지 않으며, 스케일에 따라 달라진다. 예컨대, 물 한 방울은 인간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당신이 무당벌레라면, 물의 표면장력이 잠재적인 문제로 대두된다. 왜냐하면, 등에 얹혀 있는 물 한방울이 내팽개칠 수 없는 무거운 백팩처럼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또한 작은 개미 한 마리에게, 물 한 방울은 수중감옥으로 여겨질 만큼 엄청난 것이다. 왜냐하면 물방울의 분자력은 곤충이 탈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이다.


【참고】 사이즈가 중요하다


우리는 여기서 동물의 크기와 환경이 체형을 결정하는 대조적인 사례들을 본다. 플랑크톤처럼 작은 동물들에게 중요한 요인은 물의 점성이다. 작은 세상에서는 물이 끈끈하므로, 플랑크톤들은 끈끈한 물을 헤쳐 나가도록 진화했다. 그와 대조적으로,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많은 물을 밀어내야 하는 덩치 큰 수서 동물들에게, 점성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상이한 몸집을 가진 동물들이 동일한 환경에서 서식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들이 직면한 물리학적 도전은 제각기 다르므로, 그들의 물리학적 형태도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된다.


※ 출처: 브라이언 콕스, 『경이로운 생명』, p. 129


또한 코켈은 '물리적 제한'이 상이한 DNA 시퀀스들을 동일한 아미노산으로 번역되게 하고, 아미노산들로 하여금 동일한 형태의 단백질을 형성하게 함으로써 진화를 가능케 하는 과정을 기술한다. 예컨대, 300개의 아미노산(이 정도면 평균적인 단백질의 길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으로 구성된 사슬의 모든 위치가 20개의 가능한 아미노산 중 하나라면, 얼추 계산하면 약 2 × 10^390가지 경우의 수가 나온다. 만약 각각의 사슬들이 모두 상이한 형태를 갖는다면, 진화는 두 번 다시 동일한 단백질을 탄생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물리법칙 때문에, 대부분의 단백질들이 취하는 형태는 (알파헬릭스와 베타시트의 패턴을 조합한) 매우 한정된 가짓수로 귀결된다.


저자는 모든 장(章)의 말미에서, 한때 찰스 다윈이 예찬했던 '무한한 지고(至高)의 미(美)'를 물리법칙이 어떻게 밀어붙이고/좁히고/주조(鑄造)하고/형성하고/제한하는지를 상기시킬 것이다. 이토록 집요한 코켈의 노력은, 다음과 같은 핵심주장에서 절정을 이룬다: "만약 다른 행성에 생명이 존재한다면, 그도 지구의 생명체들과 똑같은 법칙을 준수해야 한다."


코켈의 핵심주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은하에 존재하는 원자들은 다른 은하에서도 동일하게 행동할 것이므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명제는 다른 은하에서도 참이다. 첫째, 물은 다른 은하에서도 풍부한 용매다. 둘째, 탄소는 다른 은하에서도 스스로 복제하는 복잡한 분자(self-replicating complex molecule)들이 선호하는 옵션이다. 셋째, 다른 은하의 생명도 우리와 똑같은 열역학에 직면한다." 직경이 지구의 10배인 행성에 소 한 마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소는 지구에서보다 널찍하고 강한 다리가 필요하지만, 그 행성에서 진화의 필름을 다시 돌린다고 해서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생명형태'가 튀어나올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고작해야, 우리는 동일한 테마의 변주(variations on the same theme)를 감상하게 될 것이다.


코켈은 '형태와 기능 간의 관계'를 기술하는 우아한 방정식들에게 찬사를 보내며 이 책을 마무리한다: "방정식은 맥 빠진 환원주의(lifeless form of reductionism)가 아니다. 방정식은 우리에게 '물리가 생명으로 하여금 달성가능(또는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우리는 방정식을 통해서 생물계가 균형/패턴/법칙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방정식 속에서 '이 모든 물리적 제한들은 보편적임에 틀림없다'라는 용감무쌍한 주장을 펼칠 수 있다."


※ 출처: Science http://blogs.sciencemag.org/books/2018/07/16/the-equations-of-life/


바이오토픽 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포터로 활발하게 활동하...


생명과학  양병찬 (2018-07-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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