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토픽] 사회적 곤충에서 배우는 수명연장의 비결
'수명이 바뀌는 곤충'은 인간의 노화 연구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아래 동영상에 나오는 흰개미(termite) 여왕을 보고 '바쁘다'고 말하는 것은 절제된 표현이다. 그녀는 하루에 무려 2만 개의 알을 '쏟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생산성만 높은 게 아니라 수명도 길어, 그녀가 속하는 종(種)─Macrotermes bellicosus─의 여왕들은 20년 동안 살 수 있다. 그녀의 생리를 개미굴 속의 노동자들─일개미─과 비교해 보자. 일개미는 여왕개미와 혈통이 같지만, 겨우 몇 개월밖에 살지 못한다.
맡은 역할에 따라 수명이 크게 다른 사회적 곤충(social insect)은 흰개미뿐만이 아니다. 수명과 노화를 연구할 때, 연구자들은 종종 모델생물(이를테면 생쥐, 초파리, 선충류)에 집중한다. 그에 반해, (노화 행태가 '예쁜꼬마선충' 뺨칠 정도로 꿈틀거리는) 사회적 곤충의 과정을 눈여겨보는 연구자들은 극소수다.
이번에는 개미의 일종인 Platythyrea punctata를 생각해 보자. 개미굴 속의 구성원들은 동일한 DNA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식능력이 있는 개미는 약 1년 동안 살고, 일개미는 그 절반인 6개월 동안만 산다. 과학자들은 이 같은 '노화의 차이'의 배경에 도사리고 있는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다.
인디언점프개미(Indian jumping ant)의 경우, 여왕이 죽으면 일개미들끼리 '알 낳을 권리'를 놓고 결투를 벌인다. 이때 '그냥 일개미'에서 '번식 일개미(gamergate)'로 변신하는 것은 한줌의 일개미들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삶을 위한 투쟁'을 벌인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번식 일개미'는 '그냥 일개미'보다 5배나 더 오래 살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 배경에 도사리고 있는 메커니즘이 뭘까?
과학자들은 '번식 일개미'와 '다른 일개미' 사이의 흥미로운 차이점들을 많이 발견했다. 일례로, '번식 일개미'의 뇌 속에는 신경아교세포(glial cell)라는 세포가 40% 더 많다. 신경아교세포는 뉴런을 보호하고 뒷받침하는 세포인데, 초파리와 생쥐의 경우 신경아교세포의 결함이 노화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꿀벌의 경우에는, 심지어 비번식 구성원(non-breeding member)들조차 맡은 바 역할에 따라 노화가 달라진다. 젊은 일벌들은 벌집에 머물며 간호사로 일한다. 그녀들의 임무는 여왕과 새끼들을 돌보는 것이다. 몇 주 후, 그녀들은 벌떼를 먹여 살릴 식량을 수집하기 위해 과감히 세상으로 나간다. 식량수집벌(forager)들은 2주 안에 나이 들어 죽게 된다. 식량수집벌들의 '손상된 날개'야말로, 노화를 암시하는 숨길 수 없는 증거다. 그런데 엽기적인 것은, 식량을 수집하던 벌들이 벌집으로 귀환하여 간호사로 복직(復職)할 경우 노화가 갑자기 역전된다는 것이다.
복직한 간호사들은 식량수집벌들보다 비텔로제닌(vitellogenin)이 많은데, 비텔로제닌은 수명과 관련된 다목적 단백질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복직한 간호사는 같은 연령의 식량수집벌보다 학습속도가 빠르다.
흰개미 여왕의 경우, 자신만의 '젊음의 샘'을 만드는 DNA 경로를 보유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그녀의 트랜스포손(transposon) 활성이 비교적 낮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트랜스포손이란 유전체 내에서 이리저리 점프하는 DNA 조각을 말하는데, 종종 유전자를 파괴하고 변이를 초래할 수 있다. 인간에서부터 예쁜꼬마선충(C. elegans)에 이르기까지, 나이든 개체들은 종종 트랜스포손의 활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흰개미 일꾼의 경우에도 트랜스포손의 활성이 높다.
전망이 밝아 보이지만, 사회적 곤충을 이용한 노화 연구가 발전하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예컨대, 현재 수천 가지 생쥐와 초파리의 유전자가 편집되어 있지만, 개미와 벌의 경우에는 몇 가지밖에 없다. 사회적 곤충의 유전자를 모니터링하고 조작하는 방법이 발달함에 따라, 기존의 통념과 다른 '사회적 곤충의 노화 방식'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언젠가 단추만 한 크기의 '벤자민 버튼'들에게서 교훈을 얻을 날이 올 것이다.
※ 출처: Science https://www.sciencemag.org/news/2021/03/what-can-ants-bees-and-other-social-insects-teach-us-about-aging
바이오토픽 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포터로...
생명과학 양병찬 (2021-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