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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토픽] 뱀은 왜 다리가 없어졌을까?

산포로 2016. 10. 24. 17:32

[바이오토픽] 뱀은 왜 다리가 없어졌을까?

 

네발달린 뱀(tetrapodophis)은 연약하지만 기능적인 사지를 갖고 있어서, 먹이를 움켜쥐거나 짝짓기를 하는 동안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 © Science

 

▶ 간혹 약간의 유전자 변이로 인해 동물의 외관이 크게 변화될 수 있다. 두 팀의 과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1억 5,000만 년 전, 오늘날 뱀의 조상들이 다리를 잃었을 때도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다. 두 팀은 뱀이 다리를 잃은 수수께끼를 밝히기 위해 각각 다른 접근방법을 사용했지만,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사지형성의 핵심 유전자 근처에 있는 DNA에 변이가 일어나, 유전자의 활성화를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들은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다른 과학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것은 '분자 수준의 변화'와 '사지의 축소 및 상실'이라는 진화적 경향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라고 네덜란드 라이든 대학교의 마이클 리처드슨 박사(발생생물학)는 말했다. "이번 연구들은 유전체의 작은 변화가 특정 형질의 커다란 변화를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라고 하버드 대학교의 제임스 행켄 박사(진화발생생물학)는 말했다.
 
파충류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뱀들은 (대부분의 육상 척추동물들이 갖고 있는) 사지가 전혀 없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1억여 년 전만 해도, 뱀은 가시적인 다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참고 1). 심지어 오늘날에도 비단뱀과 보아뱀은 몸 속에 작은 다리뼈를 갖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사지를 형성하는 분자경로'의 흔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과학자들은 1999년에 뱀의 체형이 발달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에 대한 첫 번째 단서를 얻었다. 그 당시 뱀의 배아를 연구한 플로리다 대학교의 마틴 콘 박사(진화발생생물학)는 특정 유전자의 활성패턴이 다른 파충류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성장인자를 투여해 보았다. 그 결과 뱀의 배아에서 사지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했지만, 유전체 도구가 없었기 때문에 그 이상 자세히 연구할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4년 후, 행켄과 동료들은 하나의 유전자가 도마뱀의 다리 크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이 뱀에게도 중요할 거라는 힌트를 얻었다. 그 유전자는 비디오게임 캐릭터의 이름을 따서 소닉헤지호그(sonic hedgehog)라고 명명되었다.
 
▶ 이제 '발생과정에서 유전자의 활성을 모니터링하는 방법'으로 중무장하고 '다양한 뱀과 파충류의 전유전체 염기서열'을 입수한 무장한 콘은, 대학원생 프란치스카 릴과 함께 비단뱀의 배아에서 유전자의 활성을 추적함으로써 '발생과정에서 다리가 시작되지만 완성되지 않는 이유'를 알아냈다.
 
콘과 릴은 소닉헤지호그 유전자의 활성을 제어하는 유전자 스위치(인핸서)에서 3개의 DNA가 결실된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스위치를 인핸서(enhancer)라고 하는데, 유전자 앞에 위치하며, 유전자의 활성을 제어하는 단백질이 도킹하는 부위를 말한다. 소닉헤지호그의 인핸서에서 3개의 DNA가 결실됨으로서 특정 단백질이 안착하기 어렵게 되었고, 그 결과 비단뱀의 배아발생 과정에서 유전자의  스위치가  아주 잠깐 동안만 켜진 것이다. 두 사람은 이상의 연구결과를 정리하여 10월 20일자 《Current Biology》에 발표했다(참고 2).
 
코딱지만 한 다리뼈가 있는 비단뱀은 그렇다 치고, 다리뼈가 전혀 없는 뱀들은 어떻게 된 걸까? 이에 대한 두 사람의 설명은 이렇다. "그 경우에는 인핸서에서 더욱 많은 결실이 발생하여, 애초부터 유전자의 스위치가 아예 켜지지 않았다."
 
"그들은 과거의 연구결과를 좀 더 디테일하고 세련되게 설명했다"라고 행켄은 말했다.
 
▶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의 악셀 비셀 박사(유전체학)는 비단뱀과 보아뱀을 이용하여 다리가 상실된 원인을 추적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비단뱀과 보아뱀의 유전체를 살모사와 코브라의 유전체와 비교분석했다. 살모사와 코브라는 좀 더 최근에 다리를 잃은 뱀들인데, 비단뱀이나 보아뱀보다 소닉헤지호그의 인핸서가 더 많이 결실되거나 변이된 것으로 밝혀졌다.
 
다음으로, 비셀과 동료들은 마우스를 이용한 실험에서, 변이된 소닉헤지호그 인핸서가 마우스의 사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은 CRISPR-Cas9을 이용하여, 마우스의 인핸서를 뱀의 인핸서로 대체해 보았다. 또한 마우스의 인핸서를 물고기와 인간의 인핸서로도 대체해 보았다. 그 결과 물고기와 인간의 인핸서는 마우스의 다리를 정상적으로 발생시키지만, 뱀의 인핸서는 마우스의 다리를 ‘작은 마디’로 변형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결실된 DNA를 뱀의 인핸서에 삽입한 후 마우스에게 도입하자, 마우스의 다리는 정상적으로 발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이상의 연구결과를 정리하여 10월 20일자《Cell》에 발표했다(참고 3).
 
▶ "비셀과 동료들의 논문은 아름답다. 그들은 CRISPR-Cas9을 이용하여, 기능적 유전체학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라고 콘은 극찬했다. 비셀은 콘의 논문을 일컬어, "우리가 마우스 모델을 이용하여 실험한 결과를, 뱀의 배아를 이용하여 독립적으로 확인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콘, 비셀, 행켄은 "소닉헤지호그 인핸서의 변화가 뱀의 진화 뒤에 숨은 역사를 완전히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예컨대, 다른 연구자들은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또 다른 인핸서가 뱀의 갈비뼈를 추가하고 척추를 길게 만들었다고 보고한 바 있다(참고 4). "소닉헤지호그 인핸서가 뱀의 다리를 없앤 첫 번째 단계는 아니지만, 중요한 요인인 것은 분명하다"라고 행켄은 말했다.
 
지금껏 발견된 뱀의 화석들 중 일부는 다양한 수준의 다리를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 발표된 두 편의 논문으로 인해, 뱀의 화석들을 둘러싼 오랜 논쟁을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생물학자들은 오랫동안 '사지가 있는 뱀의 화석'들을 계통수의 가지 하나에 배치하고, '사지가 없는 뱀'이 거기에서 갈라져나간 것으로 설명하려고 애써 왔다. 이는 사지가 단 한번만 상실되었다고 가정할 때 예상할 수 있는 결과다. 그러나 다리를 상실하는 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면, 그게 다시 생기는 것도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멸종한 뱀들 중 일부는 다리가 다시 생겨났을 수도 있다"라고 리처드슨은 말했다. "지난 여러 세기 동안 진화생물학자들은 '생물은 한 번 상실한 특징을 다시 진화시킬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번 연구결과를 보면, '없어진 다리가 다시 생겨날 수 있다'는 건 발생학적으로 볼 때 전혀 설득력없는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행켄은 말했다.
 
※ 참고문헌
1. http://www.sciencemag.org/news/2015/07/four-legged-snake-fossil-stuns-scientists-and-ignites-controversy
2. http://www.cell.com/current-biology/abstract/S0960-9822(16)31069-7
3. http://www.cell.com/cell/fulltext/S0092-8674(16)31310-1
4. http://www.sciencemag.org/news/2016/08/junk-dna-tells-mice-and-snakes-how-grow-backbone
 
※ 출처: Science http://www.sciencemag.org/news/2016/10/tiny-dna-tweaks-made-snakes-legless

 

바이오토픽 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포터로 활발하게 활동하...

 

생명과학 양병찬 (2016-10-24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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