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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토픽] 마이크로바이옴의 타임캡슐, 분석(糞石)을 분석하라

산포로 2021. 5. 13. 14:19

[바이오토픽] 마이크로바이옴의 타임캡슐, 분석(糞石)을 분석하라

 

Paleofeces are the equivalent of a time machine. ⓒ Valentino Sudaryo & Cindy Lin 2021 / Joslin Diabetes Center

▶ 우리가 섭취하는 모든 음식물은 장(腸)에서 번성하는 풍부한 미생물의 도움으로 소화된다(참고 1). 소화 작용이 완료되면, 그 미생물들은 배설물의 일부가 된다. 이제 1,000년의 역사를 지닌 '말라붙은 배설물 더미'가 수십억 마리의 세균으로 구성된 「장내미생물 생태계(gut bacterial ecosystem)의 변천사」에 대한 통찰을 제공했다. 그들은 인간의 위생(sanitation), 가공식품, 항생제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되어 왔다.

5월 12일 《Nature》에 실린 논문에서(참고 2), 하버드 대학교 부설 조슬린 당뇨병센터(Joslin Diabetes Center)의 연구팀은 유타와 멕시코의 얕은 동굴의 배후에서 발견된 분석(coprolites)─화석화된 대변─속의 고(古) DNA를 분석한 결과를 보고했다. "그 데이터 덕분에, 과학자들은 고대의 장내미생물총(叢)을 처음으로 들여다봤다"라고 스탠퍼드 대학교의 저스틴 소넨버그(생물학)는 논평했다. "고배설물(paleofeces)은 타임캡슐이나 마찬가지다."

"재구성된 장내미생물은, 인간의 소화관이 지난 1,000여 년 동안 '대량멸종(extinction event)'을 겪으며 수십 종(種)을 잃음으로써 다양성이 상당히 감소했음을 시사한다"라고 이번 연구의 주 저자인 하버드 의대의 알렉산다르 코스틱(미생물학)은 말했다. "사라진 미생물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선행연구에서는 오늘날의 수렵채집인과 유목민들의 장내미생물을 고(古) 마이크로바이옴(ancient microbiome)의 대용물(proxy)로 사용해 왔다. 그들의 미생물 다양성(microbial diversity)은 산업사회 사람들의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데, 연구자들은 낮은 다양성(low diversity)을 「문명병(diseases of civilization)─당뇨병, 비만, 알레르기─의 높은 유병률」과 연관 지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비(非)산업사회 사람들이 고대인과 얼마나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지는 불분명했다.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하며, 현대인의 장내미생물이 변화한 시기를 알아내고, 그 원인이 뭔지를 제대로 알고 싶었다"라고 이번 연구의 공동저자인 하버드 대학교의 크리스티나 워리너(유전학)는 말했다. "식품 자체 때문일까, 아니면 가공 때문일까, 아니면 항생제 때문일까, 아니면 위생 때문일까?"

▶ 먼저, 다국적 연구자들로 구성된 발굴팀은 멕시코와 미국 남서부 주(州)에 있는 3개의 얕은 동굴에서 발견한 8개의 분석(糞石)─건조함과 안정적인 기온 덕분에 잘 보존되었다─을 분석했다. 샘플들─그중 일부는 거의 100년 전에 발굴되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었다─을 대상으로 탄소연대측정을 실시한 결과, 서기 0년부터 1,000년 전의 배설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다음으로, 몬태나 대학교 미술라 캠퍼스의 메라데스 스노(고고학)는 극소량의 배설물을 재수화(rehydration)함으로써 (선행 고배설물 분석에서 사용한 것보다) 기다란 DNA 가닥을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종전의 고(古) 장내미생물총 분석에서는, 오래된 세균의 DNA를 '주변의 토양에서 침투한 미생물의 DNA'과 분리하는 데 실패하여 난항을 겪었다"라고 이번 연구에서 DNA 분석을 담당한 조슬린 당뇨병센터의 마샤 위보우(박사과정)는 말했다. 그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손상된 DNA'와 '포유류의 소화관에 상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미생물의 시퀀스'에 집중하며, 오래된 장내미생물 종(種)을 신중히 선별했다. 그러나 고(古) DNA 중 일부는 낯설었는데, 이는 전혀 듣도 보도 못한 멸종 세균(extinct bacteria)의 것임을 시사했다.

위보우는 총 181개의 유전체를 재구성했는데, 그것들은 모두 옛것인 동시에 인간의 소화관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중 상당수는 오늘날 비산업사회 구성원들의 소화관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했는데, 그중에는 고섬유질식(high-fiber diet)과 관련된 종(種)도 포함되어 있었다. 샘플 속의 식품 부스러기를 감안할 때, 고대인들의 식사 속에는 옥수수와 콩(초기 북아메리카 농경민들의 전형적인 식량)이 들어 있는 게 틀림없었다. 유타의 한 발굴지에서 나온 샘플의 경우, 더욱 다양하고 섬유질이 풍부한 "기근기 식량(famine diet)"─한마디로 초근목피─과 메뚜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고(古) 마이크로바이옴이 오늘날의 마이크로바이옴과 현저하게 다른 점은, 예컨대 항생제 내성(antibiotic resistance)의 표지자(marker)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훨씬 더 다양했는데, 그중에는 수십 개의 알려지지 않은 종(unknown species)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교적 제한된 지리적 공간과 기간에서, 우리는 38%의 신종을 발견했다"라고 코스틱은 말했다.

예컨대 트레포네마속(Treponema) 세균의 경우, 오늘날 산업사회 구성원의 장내미생물총에는 사실상 찾아볼 수 없고, 비산업사회 구성원의 장내미생물총에서 간혹 발견될 뿐이다. 그러나 "고배설물의 경우에는 모든 지역의 샘플에서 예외 없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장내미생물의 구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식사뿐만이 아님을 시사한다"라고 코스틱은 말했다. "바라건대, 미래의 연구에서는 다양한 기간대에 걸쳐 수집된 분석(糞石)을 분석함으로써, '마이크로바이옴이 가장 크게 변화한 시기'와 '변화를 촉진한 요인'을 알아냈으면 좋겠다."

▶ 이번 발견은, 워리너와 동료들이 이번 주 초 《미국학술원회보(PNAS)》(참고 3; 한글번역)에 발표한 '훨씬 더 오래된 샘플'을 상기시킨다. 그들은  그 논문에서, 네안데르탈인과 초기인류의 치아에서 '종전에 발견되지 않은 미생물'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오래된 대변에서 수집된 새로운 데이터는, 오늘날 지구상에서 어느 누구도 '마이크로바이옴의 변화'를 피해 갈 수 없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비산업사회의 구성원들(마이크로바이옴 포함)을 우리 조상들의 대용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라고 MIT의 마티우 그루신(유전학)은 말했다.

이번 연구의 또 다른 시사점은, 최근 워낙 많은 미생물 도우미(microbial helper)들을 잃었기 때문에 인체가 이에 적응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우리가 뭘 잃었는지'에 대한 시금석을 제시했다"라고 소넨버그는 말했다.

"미국의 법(法)에서는 배설물을 인간의 유물로 간주하지 않는다. 따라서 초기 연구에서는 아무런 윤리적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라고 워리너는 말했다. 그러나 연구팀이 미국 남서부에 거주하는 수십 개 부족에게 접근했을 때, 그들 중 일부에게서 '배설물은 조상님과의 연결고리이므로 샘플을 함부로 채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논문에는 윤리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고배설물에 대한 논문에 윤리가 언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UCSD의 케올루 폭스(유전학)는 이번 연구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다. "고대인들의 소화관에 대한 통찰은 언젠가 (현대인의 마이크로바이옴을 재형성하려는) 상업적 노력에 정보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때가 되면 데이터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복잡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얼핏 보면 노폐물 같지만, 고대인의 배설물에는 DNA와 미생물의 다양성에 대한 프로파일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노다지일 수도 있다. 우리는 전혀 새로운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 참고문헌
1. https://www.sciencemag.org/news/2021/05/piles-ancient-poop-reveal-extinction-event-human-gut-bacteria
2.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1-03532-0
3. https://www.pnas.org/content/118/20/e2021655118 (한글번역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30748)

※ 출처: Joslin Diabetes Center https://www.joslin.org/about/news-media/ancient-gut-microbiomes-may-offer-clues-modern-diseases

 

바이오토픽 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

 

생명과학 양병찬 (202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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