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토픽] 뜻밖의 당(糖)으로 코팅된 일부 RNA 분자들
세포의 외막(外膜)에 돌출한 특정한 RNA에 당(糖)이 부착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새로 발견된 「당RNA(glycoRNA)」는 면역 신호전달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놀라운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세포의 표면을 장식하는 「당(糖)으로 코팅된 RNA 분자」를 발견했다.
이름하여 「당RNA(glycoRNA)」는 면역세포의 외막(外膜)에 돌출해 있으며, 거기에서 다른 분자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 2021년 5월 17일 《Cell》에 보고된(참고 1) 이 발견은 '세포가 RNA와 글리칸(glycan)─글리코시드(glycoside) 결합으로 연결된 다수의 단당류─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통설을 뒤집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건 내 평생 최대의 과학적 쇼크인 것 같다"라고 이번 연구의 저자인 스탠퍼드 대학교 부설 하워즈 휴즈 의학연구소(HHMI: Howard Hughes Medical Institute)의 캐럴린 버토지(참고 2)는 말했다. "우리가 세포생물학을 이해하는 틀에 기반할 때, '글리칸의 당'과 RNA가 서로 물리적으로 접촉하는 장소는 없다."
통상적으로, RNA는 핵(nucleus) 안에서 만들어져 세포질(cytoplasm)로 운반된 다음, 단백질을 만드는 주형(template)으로 사용된다. 지금껏 과학자들은 글리칸과 RNA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 따르면 두 개의 분자가 실제로 만나며, '당으로 코팅된 RNA'가 세포의 표면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버토지가 이끄는 연구팀의 새로운 발견은, 그녀가 2019년 출판전 서버인 《bioRxiv》에 포스팅했을 때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참고 3). 이제 그들은 「당RNA」의 새로운 물리적 위치를 보고함으로써, '당으로 코팅된 RNA'가 면역질환에서 모종의 역할을 수행할 거라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존재할 리 없는 분자
연구자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당생물학(glycobiology)"을 연구해 왔다. 많은 기능들이 있지만, 糖은 그중에서도 세포의 의사소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선행연구에서, 과학자들은 글리칸이 단백질과 지방에 부착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분자(glycomolecule)는 심지어 세균과 균류의 세포벽에도 점점이 박혀, 세포들 간의 의사소통을 돕고 숙주를 감염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지금까지 '당생물학'과 'RNA 생물학' 사이에는 겹치는 부분이 없었다. 두 분야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은 상이한 화학과 기법을 이용하여 각각 자기들의 분자를 연구했다. 이번 연구의 공저자인 라이언 플린은 박사과정에 재학하는 동안 줄곧 RNA를 연구했지만, 버토지 연구실에서 한 학생을 우연히 만날 때까지 당생물학을 접한 적이 없었다. "글리칸은 생물학에서 필수적인데, 어찌된 일인지 나는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라고 그는 술회했다. 그는 그 만남을 계기로 글리칸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플린은 2017년 포스닥 연구원으로서 버토지의 연구실에 합류했다. 그는 글리칸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RNA와 관련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심증이 굳어졌다. 예컨대 연구팀은 RNA에 결합할 수 있는 글리칸 효소를 하나 알게 되었다. 그것은 플린으로 하여금 'RNA 자체가 糖과 연결될 수 있다'는 가설을 설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글리칸은 골지체(Golgi)라는 세포구획에 상주하지만, 한 종류의 글리칸은 (RNA가 전형적으로 머무는) 세포질 안에서 돌아다닌다.
그래서 플린은 「당RNA」 사냥에 나섰다. 그는 세포 안의 글리칸에 화학적 태그를 붙인 다음, 태그된 분자들 사이에서 RNA를 찾았다. 태그된 분자들 사이에서 RNA가 발견된다는 것은, RNA와 糖을 모두 포함한 분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는 몇 달 동안 실험을 거듭했지만 번번이 허탕을 쳤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플린은 골지체에서도 「당RNA」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RNA가 거기에서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않았으므로, 골지체는 음성 대조군(negative control)─「당RNA」가 검출되지 않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음성 대조군에서 지속적으로 양성 반응이 나오는게 아닌가! 어찌된 일인지, RNA가 골지체 속의 糖과 한통속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연구팀은 골지체가 실험 도중에 오염됐다고 생각했다. "'糖이 어떻게 RNA와 물리적으로 연결될까?'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백만 개의 대답을 생각해 냈다"라고 버토지는 말했다.
'RNA 말고, 뭔가 다른 곳에서 시그널이 온다'는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플린은 생각해 낼 수 있는 실험을 모두 다 해 봤다. 그러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그가 실험실에서 배양한 모든 종류의 세포에서 「당RNA」가 검출되었다. 심지어 생쥐의 조직, 그리고 보다 최근에는 세포 표면에서도 「당RNA」가 발견되었다.
"그들은 글리칸에 의해 변형된 RNA(glycan-modified RNA)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상상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했다"라고 시카고 대학교의 HHMI 연구자인 허 촨(화학생물학; 참고 4)은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에 관여하지 않았다.
버토지와 플린은 이번 발견의 공(功)을, 두 가지 기술의 독특한 조합에 돌렸다. RNA 생물학과 당생물학의 도구 및 전문지식이 결합하여, 종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현상을 명명백백하게 드러낸 것이다. 그런 방법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의외의 결합
한편, 버토지 연구실의 연구자들은 「시알산결합 면역글로불린형 렉틴(Siglecs: sialic acid-binding immunoglobulin-type lectin)」이라는 세포 표면 단백질의 일종을 연구하고 있었다. Siglecs라는 분자는 글리칸에 결합하며, 면역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플리는 Siglecs이 새로 발견된 「당RNA」과 결합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면역계의 최전선: Siglecs을 둘러싼 장군 멍군
200만 년에 걸친 병원체의 군비경쟁은 우리의 면역계를 예리하게 만들었지만, 그와 동시에 취약하게 만들었다. 그 핵심은 세포막 외곽에 자리 잡은 시알산(sialic acid)이다.
시알산은 감염과 면역반응 모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어떤 병원체들은 시알산을 이용해 인간 세포에 침투하지만, 성공적으로 침투하기 위해서는 시알산결합 면역글로불린형 렉틴(Siglecs: sialic acid-binding immunoglobulin-type lectin)을 회피해야 한다.
Siglecs는 분자 파수꾼으로, 어떤 세포가 '인체의 일부'인지 '외계 침입자'인지 확인하기 위해 시알산을 탐지한다. 만약 손상되거나 누락된 시알산을 포착한다면, Siglecs는 면역세포를 활성화하는 신호를 보내, 염증군대(inflammatory army)로 하여금 잠재적인 침입자들을 공격하거나 손상된 세포를 청소하게 한다. 만약 시알산이 인체의 정상적인 부분인 것으로 밝혀진다면, Siglecs는 우리의 조직이 공격당하지 않도록 면역반응을 억제한다.
"Siglecs는 여러 가지 대상 중 하나였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했다. '한번 실험해 보자. 혹시 알아?'"라고 버토지는 말했다. 플린은 12가지 상이한 Siglec 분자를 테스트하여, 그중 2개가 「당RNA」에 결합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선행연구에서, Siglec 분자 중 하나가 자가면역질환인 루푸스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당RNA」과 Siglec 분자가 결합한다는 사실은, 새롭게 떠오르는 생물학의 그림에서 틈을 메울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버토지는 말했다. 버토지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그림은 다음과 같다: '糖으로 장식된 RNA가 세포의 표면에 돌출해 있다. 그 糖은 Siglec 단백질에 결합하여, 면역계로 하여금 친구와 적을 구별하게 해 준다.'
"「당RNA」이 면역계의 신호전달에 관여하는지, 만약 그렇다면 그 메커니즘이 뭔지 이해하려면 훨씬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플린은 말했다. 그는 현재 보스턴 어린이병원과 하버드 대학교 재생생물학과(stem cell and regenerative biology department)에서 자신의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당RNA」이 면역계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집중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다.
버토지에 의하면, '외견상 불가능한 것을 자유롭게 관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이번 발견의 일등공신이라고 한다. "HHMI는 바로 그런 분위기를 제공했다." 그녀는 말했다. "만약 내가 신출내기 과학자일 때 이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미국국립보건원(NIH)에 연구비 신청서를 제출했다면, 만인의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 참고문헌
1. https://www.cell.com/cell/fulltext/S0092-8674(21)00503-1
2. https://www.hhmi.org/scientists/carolyn-r-bertozzi
3. https://www.biorxiv.org/node/929458.full
4. https://www.hhmi.org/scientists/chuan-he
5.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19709
※ 출처: HHMI News https://www.hhmi.org/news/some-rna-molecules-have-unexpected-sugar-coating
바이오토픽 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
생명과학 양병찬 (2021-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