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토픽] 고전적 진화사례의 수수께끼를 푼 랜드마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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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가지나방(Biston betularia, peppered moth)은 다윈핀치(Darwin’s finch)와 함께 '작동하는 진화(evolution in action)'의 고전적 사례로 유명하다. 1800년대 후반 산업화된 영국에서 석탄의 검댕과 연기로 인해 나무들이 까맣게 되자, 희귀한 검은색 변종나방(carbonaria)이 시커먼 나무껍질에 적응함으로써 세(勢)를 불려, 기존의 흰색나방(typica)을 제치고 절대강자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1950년대에는 맨체스터 인근지역에 서식하는 모든 회색가지나방의 90%가 검은색으로 변했다. 이러한 현상을 산업암화(industrial melanism)라고 한다. 그러나 1970년대에 대기의 질이 개선되자 흰색나방이 다시 등장하여, 오늘날에는 검은색나방을 제압하고 전체 나방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흰색나방의 권토중래에도 불구하고, 산업암화의 스토리가 완전한 해피엔딩을 맞은 것은 아니었다. 과학자들은 수십 년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한때 희귀했던 까만날개를 유행시킨 돌연변이가 정확히 뭐였는지를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회색가지나방의 변색(變色) 원인을 밝힌 논문이 두 편 발표되어, 그간의 궁금증이 속시원히 해결되었다. 첫 번째 논문에서는 돌연변이의 '정체'와 '위치'를 정확히 밝혀내고, 두 번째 논문에서는 '나방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났던 유전자가, 일부 나비에서도 날개의 색상을 제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첫 번째 논문에서 밝혀진 돌연변이가 착색(coloration)과 관련된 유전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회색가지나방이 진화론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감안할 때, 첫 번째 연구는 랜드마크 연구라고 불러 마땅하다. 관련 돌연변이가 어떤 유전자에서 일어났는지를 알아낼 때까지, 우리는 진화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라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피터 홀랜드 박사(진화생물학)는 말했다(홀랜드 박사는 이번 연구에 관여하지 않았다).
2011년 영국 리버풀 대학교의 일릭 사케리 박사(생태유전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문제의 돌연변이가 일어난 위치를 추적하여, 일단 200킬로베이스 영역(200-kilobase region)으로 범위를 좁힌 바 있다(참고 1).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흰색나방과 검은색나방의 유전체에서 해당 부분(200킬로베이스 영역)을 시퀀싱하고 비교했다(참고 2). 그리하여 나방을 검은색으로 착색시킨 돌연변이 후보를 87가지 찾아낸 다음, 하얀나방 283마리와 검은색나방 110마리의 DNA를 대상으로 87가지 돌연변이를 일일이 확인했다.
그 결과 95%의 검은색나방이 보유한 단일 돌연변이가 하얀색나방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문제의 돌연변이는 cortex라는 유전자에서 일어났는데, 커다란 전이인자(transposable element) 하나가 점프하여 첫 번째 인트론(intron)으로 삽입된 것이었다. 그런데 cortex는 놀랍게도 초파리의 세포분열과 난자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날개의 패턴이나 색상과 관련된 유전자가 아니라, 세포분열 및 난자발달과 관련된 유전자가 나방의 색깔을 바꿨다니, 매우 놀라웠다"라고 사케리 박사는 말했다.
그런데 cortex 유전자의 영향력은 나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다른 연구팀은 독특한 날개형태를 가진 열대 독나비(Heliconius) 3종(種)을 대상으로, DNA를 비교검토해 봤다. 그 결과 그들은 cortex가 날개의 변이를 초래하는 동인(genetic driver)임을 확인했다(참고 3). 두 편의 논문은 모두 《Nature》 6월 1일호에 발표되었다.
그러나 두 연구팀 모두, cortex 유전자가 나방과 나비의 색깔을 형성하는 메커니즘을 확실히 규명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cortex의 돌연변이가 날개를 - 모자이크처럼 - 뒤덮은 미세한 비늘의 성장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빛깔이 다른 비늘들은 발달속도가 다르다. cortex 유전자는 이 발달속도의 차이를 제어함으로써, 나비의 날개패턴을 제어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두 번째 논문의 공저자인 셰필드 대학교의 니콜라 네이도 박사(진화유전학)는 말했다.
"나방과 나비의 차이를 감안할 때, 그들은 약 1억 년 동안 각각 다른 진화경로를 밟아온 것으로 보인다(참고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유전자가 나방과 나비의 날개색깔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라고 홀랜드 박사는 말했다. "다음 연구과제는 cortex의 작용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교과서에 나오는 「회색가지나방 이야기」에 추가될 것이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 참고문헌
1. http://science.sciencemag.org/content/332/6032/958
2. Ilik J. Saccheri et al., "The industrial melanism mutation in British peppered moths is a transposable element", Nature 534, 102–105 (02 June 2016) http://www.nature.com/nature/journal/v534/n7605/full/nature17951.html
3. Nicola J. Nadeau et al., “The gene cortex controls mimicry and crypsis in butterflies and moths”, Nature 534, 106–110 (02 June 2016) http://www.nature.com/nature/journal/v534/n7605/full/nature17961.html
4. http://journals.plos.org/plosone/article?id=10.1371/journal.pone.0080875
※ 출처: Science http://www.sciencemag.org/news/2016/06/landmark-study-solves-mystery-behind-classic-evolution-story
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포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풍부한 인생경험을 살려 의약학, 생명과학, 경영경제, 스포츠,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서적들을 번역 출간했다. 매주 Nature와 Science에 실리는 특집기사 중에서 바이오와 의약학에 관한 것들을 엄선하여 실시간으로 번역 소개한다.
https://www.facebook.com/OccucySesamelStreet
생명과학 양병찬 (2016-06-02 09:11)
http://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272678&Page=1&PARA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