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토픽] 경계를 넘나드는 진화적 군비경쟁: 바이러스에게 무기를 빌려 기생벌과 싸우는 나방과 나비
▶ 나방과 나비는 오랫동안 두 가지 치명적인 위협의 희생자였다. 하나는 기생벌(parasitic wasp)이고 다른 하나는 바이러스인데, 이 둘은 오랫동안 숙주인 인시목(Lepidoptera) 곤충—나비나 나방류를 포함하는 곤충강(綱)의 한 목. 성충의 네 날개는 작은 인편(鱗片)으로 덮여 있다—을 놓고 다퉈 왔다. 그런데 새로운 연구에 의하면, 어떤 바이러스는 자신의 무기를 감염된 나방과 나비에게 제공하며, 때로는 그들의 유전체에 ‘기생벌을 죽이는 단백질을 코딩하는 유전자(genes to make parasite-killing protein)’를 장착한다고 한다.
많은 종류의 벌과 파리들은 자신들의 알을 다른 곤충의 몸속에 낳음으로써 애벌레들에게 먹이와 '안전한 성장터'를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숙주의 목숨을 앗아간다. 그러나 나방과 나비가 선호되는 숙주이기는 하지만, 어떤 종(種)들—이를테면 조밤나방(armyworm), 거세미(cutworm), 배추흰나비(cabbage butterfly)—은 기생벌 일당—Cotesia vanessae이나 C. kariyai—에게 특이한 방식으로 저항한다.
(1) 자세한 내막을 밝히기 위해, 일본 도쿄농공대학(東京農工大学)의 곤충학자 나카이 마도카(仲井まどか)가 이끄는 연구팀은 북부밤나방 애벌레(northern armyworm)를 흔한 폭스바이러스(pox virus)에 감염시킨 다음, 미성숙 곤충을 다양한 기생벌에게 노출시켰다. 그 결과,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애벌레들은 기생벌에게 굴복한 데 반해, 감염된 애벌레—그리고 그들의 혈장(plasma)—는 예쁜가는배고치벌(basket-cocoon parasitoid, 학명: Meteorus pulchricornis)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기생벌을 살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연구팀은 감염된 조밤나방 애벌레에서 두 개의 단백질을 동정했는데, 그것은 포식기생자살해인자(PKFs: parasitoid killing factors)라고 불리며 기생벌에게 독성을 발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PKF라는 단백질이 바이러스에서 조밤나방 애벌레에게 수직으로 전달(horizontally transmitted PKF)되었음을 시사한다.
(2) 다음으로, 스페인 발렌시아 대학교의 살바도르 에레로(곤충병리학)가 이끄는 연구팀은 '곤충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와 '나방/나비 숙주'가 모두 PKF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시목 곤충의 계통수(family tree)를 분석한 결과, PKF를 코딩하는 유전자는 여러 번에 걸쳐 바이러스에서 인시목 곤충으로 전달(horizontal gene transfer)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당신을 죽이지 않는 것은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라고 에레로는 말했다. "바이러스 감염에서 살아남은 곤충은 그런 유전자 중 하나를 획득했다. 그리하여 이제는 그 유전자를 이용하여 다른 적(敵)인 기생벌에게 대항할 수 있게 되었다."
☞ 진화적 군비경쟁에 의한 형질의 진화
A: 1:1 관계에 의한 형질진화 모델
B: 숙주와 기생자와 바이러스 사이의 복잡한 3자관계가 유전자수평이동을 통해 형질진화를 초래하는 모델
(3) 기생벌을 죽인 주인공이 PKF라는 단백질임을 증명하기 위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오카나간 캠퍼스의 데이비드 테일먼(분자생물학)이 이끄는 연구팀은 버사밤나방 애벌레(bertha armyworm)를 두 개의 바큘로바이러스(MacoNPV-A, MacoNPV-B)에 감염시켰다. 그랬더니, 감염된 애벌레는 가루진디벌(braconid wasp, 학명: C. vanessae)의 유충에게 효과적으로 저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자신의 유전자로 PKF를 만들 수 있는 파밤나방 애벌레(beet armyworm)도 가루진디벌의 유충을 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이 파밤나방 애벌레의 (PKF를 코딩하는) 유전자를 녹아웃시켰더니, 더 많은 기생벌들이 살아남았다. 이는 PKF가 벌을 죽인 범인임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이상의 연구결과를 7월 29일 《Science》에 발표했다(참고 1).
PKFs가 기생벌을 살해하는 메커니즘을 알아내기 위해, 연구자들은 가루진디벌의 유충을 파밤나방 애벌레에게 노출시키고, 파밤나방 애벌레의 혈장을 바이러스에 감염시켰다. 그런 다음 노출된 기생벌 세포들의 DNA 단편과 신호전달 분자를 분석해 보니, PKF가 기생벌의 세포들에게 자멸사(apoptosis)를 유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3자의 상호작용(A)과 PKF의 상쇄작용(B~D)
A: 나방은 기생벌과 바이러스의 공통숙주이며, 기생벌과 바이러스는 경쟁관계이다.
B: 건강한 기생벌 유충(위)와 PKF 때문에 죽은 유충(아래).
C: PKF가 작용한 기생벌의 세포. 특수한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세포자멸사(apotosis)를 일으킨 세포는 녹색으로 보인다(오른쪽 사진).
D: PKF의 발현을 저해하면, 기기생벌 유충의 사망률이 감소한다.
(4) "세 연구팀은 조금씩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여 동일한 유전자들에 도달했다. 연구결과를 종합하니, 「다양한 병원체·기생벌·숙주 사이에서 벌어지는 광범위한 생물학적 군비경쟁(biological arms race)」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스토리가 완성되었다. 알고 보니, 숙주는 바이러스를 끌어들여 기생벌에게 강력히 저항하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테일먼은 말했다. 캐나다 서스캐처원 대학교와 한국 국립안동대학교의 연구팀도 이번 연구에 참여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흥미로운 반전(twist)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PKF를 보유하는 바이러스 중 하나 이상이 예쁜가는배고치벌을 통해 나방/나비에게 전염되므로, 바이러스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기생벌 유충을 선택적으로 보호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것은, 비록 PKF가 인시목 곤충들을 도와주지만 일부 기생벌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 "이번 연구를 계기로, 연구자들은 나방/나비가 생물농약(biological control agent)—농작물과 숲을 해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는 기생포식자—에게 종종 저항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라고 에레로는 말했다. 그러나 테일먼에 의하면, 이러한 진화적 군비경쟁(evolutionary arms race)의 복잡성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많은 의문을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예컨대 테일먼이 이끄는 연구팀은 아직까지 '일부 바이러스가 PKF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고 다른 바이러스는 그렇지 않은 이유'를 알지 못한다. 또한 '모든 PKFs가 동일한 방식으로 작용하는지' 여부도 수수께끼다.
"내 생각에, 이번 연구는 하나의 훌륭한 출발점이다"라고 조지아 대학교에서 기생충-숙주 상호작용(parasite-host interaction)을 연구하는 마이클 스트랜드(곤충학)는 논평했다. "연구자들은 새로운 단백질들을 동정함으로써, 향후 수행될 중요한 연구의 길을 열었다." 세 연구팀은 이러한 바이러스-숙주-기생벌 상호작용(virus-host-parasite interaction)이 야생에서 전형적으로 일어나는지 여부를 밝히기 위한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PKF의 특이적인 표적(specific target)을 밝혀내고, 다른 유전자들도 그와 비슷한 독성 작용을 하는지 여부를 연구할 계획이다(참고 2).
※ 참고문헌
1.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73/6554/535
2. https://www.sciencemag.org/news/2021/07/deadly-viruses-help-moths-and-butterflies-fight-parasitic-wasps
※ 출처:
1. 東京農工大学 https://www.tuat.ac.jp/outline/disclosure/pressrelease/2021/20210729_01.html
2. University of Valencia https://www.uv.es/uvweb/biology/en/news/discover-a-new-group-viral-genes-protect-insects-parasites-1285923198745/Novetat.html?id=1286211076999
3. University of Saskatchewan https://news.usask.ca/articles/research/2021/caterpillars-borrow-weapons-from-viruses-in-battle-against-parasitic-wasps-usask-research.php
바이오토픽 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
생명과학 양병찬 (2021-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