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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토픽] 「상아 없는 코끼리」의 진화, 그 이유는?

산포로 2021. 10. 25. 10:22

[바이오토픽] 「상아 없는 코끼리」의 진화, 그 이유는?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상아 있는 코끼리'의 선택적 밀렵(selective poaching) 때문에 '상아 없이 태어나는 암코끼리'의 수가 증가했다.

 

Tusklessness happens naturally in elephants, but it's rare. Poaching could be driving the rates of elephants being born without tusks. / ⓐ African Wildlife Foundation

모잠비크에서 수행된 「코끼리의 형질과 유전학에 대한 연구」에서, 상아를 노린 집중적 밀렵이 횡행하는 지역에 서식하는 아프리카코끼리들은 '상아 없는 코끼리(tuskless elephant)'를 향해 진화한 것으로 밝혀졌다. 10월 21일 《Science》에 실린 이번 연구(참고 1)는 코끼리 개체군의 복구 방안을 강구하는 데 시사점을 던진다.

상아 거래는 1970년대 후반 ~ 1990년대 초반 모잠비크에서 벌어진 내전(civil war)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이를 위한 밀렵은 모잠비크 「고롱고사 국립공원(Gorongosa National Park)」의 코끼리 개체군을 90% 이상 급감(急減)시켜, 한때 2,500마리였던 것이 2000년대 초반에 겨우 200마리가 되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암컷 코끼리의 약 18,5%는 태어날 때부터 상아가 없었는데, 이것은 그녀들을 밀렵에 부적당하게 만든 형질이었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 의하면, 전쟁 이후에 그 비율은 33%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린스턴 대학교 뉴저지 캠퍼스의 섀인 캠벨-스테이턴(진화생물학)이 이끄는 연구팀은 수학적 모델링 분석을 통해, 이러한 변화가 사냥압력(hunting pressure)의 결과임을 확인했다. 즉, '상아 있는 코끼리의 선택적 살해(selective killing)'가 '상아 없는 후손(tuskless offspring)의 출생 증가'로 귀결되었다는 것이다.

신속한 진화

사냥은 지금껏 '동물의 신속한 변화'를 초래하는 범인으로 비난받아 왔다. 예컨대 캐나다 앨버타에 서식하는 큰뿔양(Ovis canadensis)의 '뿔 크기'는 지난 20년간 트로피 헌팅(trophy hunting)—오락 목적의 야생동물 사냥. 잡은 동물의 신체를 박제하여 트로피처럼 만드는 데에서 나온 말—때문에 20% 감소했다(참고 2). 그리고 낚시꾼과 어부들의 관행은 일부 어종(魚種)의 크기를 줄인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맨 아래의 “코끼리와 물고기의 저항운동” 참고).

그러나, 그런 개체군들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유전적 메커니즘을 정확히 밝히기는 어려웠으며, '사냥으로 인한 진화적 압력'의 중요성을 다른 환경요인(예: 기후변화)과 비교하는 것도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그와 관련된 유전자를 찾아내기는 매우 어렵다"라고 캐나다 빅토리아 대학교의 크리스 다리몬트(보존과학)는 말했다. "수확압력(harvest pressure)이 1차적으로 중요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수많은 야생동물 관리자들은 그런 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만약 사냥이 정말로 유의미한 진화적 변화를 일으켜 '작은 동물 개체군'을 만들었다면, 본래의 형질을 복원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캠벨-스테이턴이 이끄는 연구팀의 지적에 따르면, 상아 없음(tusklessness)은 암코끼리에게만 나타나는 형질이라고 한다. 이러한 형질의 ‘내용'과 ’유전 패턴'이 시사하는 것은, 문제의 변이가 X 염색체에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 변이는 수컷에게 치명적이며, 암컷에게는 우성일 것이다(하나의 변이만으로도 상아를 없애는 데 충분하다).

 

수컷에게 치명적인 C 염색체 관련 우성 유전의 증거(evidence for X-linked dominant inheritance with male lethality)

A. 2개의 상아를 가진 엄마 코끼리에서 태어난 딸 코끼리 중 91.3%는 2개의 상아(n = 21 two-tusked, 1 tuskless, 1 one-tusked)를 갖고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상아 없는 엄마 코끼리는 거의 동일한 비율의 ‘상아 있는 딸’과 ‘상아 없는 딸’을 낳는다[n = 19 two-tusked (40.9%), 21 tuskless (44.7%), 7 one-tusked (14.9%)].

B. 상아 없는 엄마 코끼리는 편향된 자손의 성비(biased offspring sex ratio)를 나타낸다. 즉, 65.7%의 자손은 딸인데, 이는 동등한 성비(equal sex ratios)라는 영가설과 유의미한 편차를 보인다(exact binomial test, P = 0.027). 그러나 상아 있는 엄마 코끼리는 편향된 자손의 성비를 나타내지 않는다(54.2% female offspring, n = 48, P = 0.67).

 

이에 연구팀은 '상아 있는 암컷'과 '상아 없는 암컷'의 X 염색체를 뒤져, 최근 일어난 선택압의 징후를 보이는 영역을 찾아냈다. 그들은 두 개의 후보 유전자(AMELX, MEP1a)를 지목했는데, 사람의 경우 이 유전자들은 상악측절치(maxillary lateral incisor)—인간의 상아 등가물—의 성장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아 형태학에 관여하는 후보 유전자의 기능적 효과(functional effects of candidate loci on tusk morphology)

아프리카코끼리 상아의 단면도에 (a) 사기질(enamel), (b) 시멘트질(cementum), (c) 상아질(dentin), (d) 치주(periodontium), (e) 치근(root)의 해부학적 위치를 표시한 그림이다. 짙은 청색 동그라미는 후보 유전자인 AMELX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지거나 제안된 영역을 나타낸다. 밝은 청색 동그라미는 또 하나의 후보 유전자인 MEP1a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제안된다. 두 유전자 모두 치수(dental pulp; 까만색 부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연구는 '사냥이 상아 없음을 초래했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를 제시했다"라고 다리몬트는 말했다. "연구팀은 매우 설득력 높은 유전체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인간이 '지구상에서 지배적인 진화력(dominant evolutionary force on the planet)'임을 일깨우는 자명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상아 없는 암컷을 선택한 것은, 코끼리에게  다른 연쇄반응(knock-on effect)를 초래했을 수 있다. 연구팀은 코끼리의 대변을 분석하여, 상아 있는 코끼리와 상아 없는 코끼리가 각각 다른 식물을 먹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코끼리는 핵심종(keystone species)—일정 지역의 생태 군집 유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종—이므로, 그들의 식생활 변화는 풍경 전체를 바꿀 수 있다"라고 이번 연구의 공저자인 프린스턴 대학교의 로버트 프링글(생물학)은 말했다. 그리고 '상아 없음'이라는 형질은 수컷 자손에게 치명적이므로 코끼리 새끼의 수가 전반적으로 감소할 수 있는데, 이는 국립공원에서 밀렵이 중단되더라도 개체군 회복이 느려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전쟁 중에는 '상아 없음'이 유리했지만, 코끼리들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렀다"라고 프링글은 말했다.

 

【참고】 코끼리와 물고기의 저항운동

이러한 진화적 변화는 전세계 바닷속에서도 일어난다. 대부분의 낚시꾼과 어부들은 기본규칙을 따르는데, 그것은 ‘대어는 챙기고, 잔챙이는 바다에 던진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진화적 압력이며, 그물은 다윈적 선택의 강력한 매개자다.

최근의 한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두 개의 수족관에서 물벼룩을 기르며, 나흘마다 촘촘한 그물로 수족관의 물을 걸렀다. 한 수족관에서는 작은 물벼룩을 다시 물에 넣고 큰 것들을 죽였으며, 다른 수족관에서는 큰 것들을 다시 물에 넣고 작은 것들을 죽였다. 물벼룩이 몇 세대 경과하는 동안 이 같은 작업을 계속하자, 극적인 진화반응이 일어났다. 극적인 진화반응이 나타났다. 작은 물벼룩을 솎아낸 수족관에서는 물벼룩들이 빨리 성장하고 첫 생식 연령을 늦추기 시작했다. 모든 에너지와 자원을 빨리 성장하는 데 사용하는 물벼룩들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가장 유리했다. 그들은 더 나이들고, 크고, 안전해질 때까지 생식행위를 억제했다(물벼룩의 경우에도 생식행위는 시간과 자원을 많이 소모한다).

그러나 큰 물벼룩을 솎아낸 수족관에서는 진화가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물벼룩들은 서서히 성장하고, 체구가 아직 작을 때 번식을 시작했다. 그결과, ‘작은 상태를 가장 오랫동안 유지하는 물벼룩’이 가장 오래 살면서 가장 많은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했다.

이것은 예측 가능하면서도 매우 빠른 진화다. 노르웨이 대구, 왕연어(chinook salmon), 대서양연어, 참돔, 붉돔은 전 세계의 대양에서 그물의 선택압에 따라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 코끼리 밀렵꾼들이 상아가 없어지는 경향을 달갑잖게 여기는 것처럼, 어부들도 물고기가 작아지는 경향을 못마땅해 한다. 그러나 코끼리와 물고기의 저항운동은 모두 다윈법칙의 직접적인 결과일 뿐이다.

- 조너선 와이너, 『핀치의 부리』, 동아시아출판사 (2017)

 

※ 참고문헌
1. https://doi.org/10.1126%2Fscience.abe7389
2. https://doi.org/10.1073%2Fpnas.0901069106

※ 출처
1. Princeton University in New Jersey https://environment.princeton.edu/news/scientists-identify-genes-behind-tusklessness-in-african-elephants-facing-poaching-pressure/
2. Nature News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1-02867-y

바이오토픽 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

 

생명과학 양병찬 (2021-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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