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약회사 취업 설명서] 제약회사에서의 연구 2: 학계와 다른 점
지난 글에서는 약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초점을 두고 제약회사에서의 연구를 소개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학계와는 조금 다른 제약회사에서의 연구의 모습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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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협업(Collaboration)의 중요성
누군가가 제게 회사에서 일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를 묻는다면 저는 늘 협업(Collaboration)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사람마다 협업에 대한 생각, 정의, 기준 등이 다를 것입니다. 비록 주관적이지만, 저의 경험을 토대로 말했을 때, 성공적인 협업을 지속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좋은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즉, 나 스스로가 남들에게 매력적인 협업자가 됨으로써 누구든지 나와 같이 일하고 싶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저는 협업에 있어서 다음의 내용들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1) 상대방을 믿는 것(신뢰)
협업은 기본적으로 신뢰가 기초가 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나와 같이 일하는 상대방이 하는 일을 믿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학계에 있을 때는 많은 부분을 혼자서 합니다. 저도 학위를 하던 때 DNA cloning부터 해서 바이러스를 만들고 세포에 Transduction 하는 과정을 혼자서 했습니다. 동물실험을 할 때도 질병 유도부터 분석까지 모든 과정에 제 손이 닿지 않은 실험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회사에서는 각자가 맡은 역할에 따라 각자가 하는 일이 있습니다. 저는 나름 동물 실험에 필요한 많은 기술과 지식들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현재 하고 있는 일은 In vitro 실험이기 때문에 In vivo 실험은 이를 전담하는 팀에 맡겨야 합니다. 또 세포를 엔지니어링 하는 것 역시 다른 팀에서 전담으로 맡아해주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논의는 하지만 실제적인 실험은 그들에게 맡깁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얻은 상대의 데이터를 신뢰해야 합니다. 하지만 학계에서 많은 일을 스스로 하던 버릇이 남아있는 경우에 이 부분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과연 저 사람들이 이 실험을 제대로 했을까?’라는 의구심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때때로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의 실험과 실력과 데이터를 신뢰하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학계에 있는 어떤 랩들에서는, 특히 규모가 큰 랩들에서, 그 안에서 경쟁이 치열하고, 그렇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의 실험을 방해하거나, 실험을 가르쳐주지 않거나, 시약을 공유하지 않는 등의 모습들이 심심찮게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작년에 제가 있는 부서의 다른 팀에 들어온 한 사람은 어째서인지 주변 사람들을 좀처럼 믿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실험이 뭔가 안 되면 합리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약이나 세포를 다뤘던 사람부터 의심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연초에 제가 만든 Cell line 몇 개를 그 팀과 공유를 했고, 그 팀 안에서 해당 세포주들을 증식시켜서 보관한 후 실험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그 사람이 제게 연락을 하면서 의심 가득한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 내용을 듣자 하니 그 팀 안에서 세포주를 증식시켜 보관한 사람이 자신에게 일부러 혹은 실수로 다른 세포를 준 거 같고 그래서 실험이 안 된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팀에 있는 동료를 믿을 수 없으니 제가 만든 세포주를 자신에게 개별적으로 다시 보내주기를 요청했습니다. 자신과 같은 팀에 있는 동료를 못 믿고 협업을 하지 못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2) 상대의 공로를 인정하는 것
상대가 한 일에 대해 그 공로를 인정해 줄 때 흔히 Credit을 준다고 말합니다. 학계에서 발표를 하면 항상 마지막에서 Acknowledgments로 청중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또 논문을 내는 과정에 기여를 한 사람들은 공저자로 논문에 이름을 올림으로써 그들에게 Credit을 주곤 합니다. 그래서 때때로 논문에 이름이 올라가지 않는 경우 이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논문을 쓰지 않는 회사에서는 어떨까요? 다른 사람들에게 Credit을 주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회사에서는 Acknowledgments 부분을 더 신경 써야 하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한 실험을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일을 하기 때문이고, 그들에게 Credit을 주지 않는다면 결국 누구도 나와 같이 일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발표자료를 만들 때마다 해당 데이터를 얻기까지 누구의 수고가 들어갔는지를 꼭 언급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미팅 때마다 그 사람들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면 될수록 사람들, 특히 리더십들에게 그 사람들의 이름이 들리게 되고 결국 그 사람들에게 승진이나 보너스 등으로 혜택이 가게 됩니다. 또한 회사에서는 도움을 준 사람에게 포인트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고 (물론 매니저들의 승인을 필요로 합니다), 이 포인트들을 모아서 나중에 다양한 기프트카드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서로에게 Credit을 주곤 합니다. 회사에서의 연구는 절대로 나 혼자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Credit을 줌으로써 좋은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3) 상대의 요청에 빠르게 응답하는 것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할 때면 두 가지의 마음이 같이 드는 것 같습니다. 내 부탁을 빨리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과 재촉하기 미안하다는 마음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같이 일하기 싫은 사람은 요청에 대해 답이 느리거나 약속한 날짜에 요청한 일을 해내지 못하는 특징을 갖는 것 같습니다. 저는 누군가가 제게 무엇인가를 부탁하면 최대한 빨리 회신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바로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곧바로 해주겠지만, 시간이 필요하다면 언제까지 그 일을 완료해 주겠다고 답을 줍니다.
같은 프로젝트에서 저와 같이 자주 일하는 한 중국인이 있는데, 이 사람은 제가 뭔가 부탁하면 즉각적으로 해주곤 합니다. 이 사람은 제가 실험에 필요한 세포를 미리 일정에 맞게 준비해 주곤 하는데, 한 번은 정말 미안하게도 퇴근 30분 전에 급하게 일정을 변경하게 되면서 얼려둔 세포를 녹이고 배양을 시작하는 것을 부탁해야만 했습니다. 저도 제 매니저가 얼른 가서 부탁하라고 해서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꽤나 부담스러운 부탁임에도 제 부탁을 들어주었고, 덕분에 변경된 일정에 맞춰 실험이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 역시도 이 사람의 부탁을 잘 들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빚을 서로에게 지고 서로 빚을 갚다 보면 좋은 협업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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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돈의 중요성
학계에 있을 때는 돈을 아껴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많았습니다. 시약을 쓰더라도 최대한 아껴 쓰고, 다른 연구실에서 빌릴 수 있는 것들은 빌려서 쓰고, 씻어서 쓸 수 있는 것들을 씻어서 다시 쓰고, 만들어 쓸 수 있는 것들은 만들어 쓰면서 돈을 아꼈고, 가끔은 이런 부분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제약회사에서도 돈이 중요하고, 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러나 다른 점은 회사가 돈을 벌어야 돼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제약회사에서의 연구는 철저히 돈이 되는 약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그러려면 현재 진행하고 있는 파이프라인이 궁극적으로 약이 될 수 있을지, 약이 되었을 때 돈을 벌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미팅들이 여러 차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리더십은 이 프로젝트를 중단해야 하는지 계속 투자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하고, 그 결정에 필요한 근거들을 만드는 것이 제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정해진 시간 안에 필요한 데이터를 만드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학계에서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쓸 때는 시간에 대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회사에서는 무한정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회사는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다른 이유지만 회사에서도 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3. 실험 결과에 대한 부담감
학계에 있을 때는 실험 하나하나에 대한 부담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차이를 줄 것으로 기대했던 조건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을 때, 결국 해당 내용이 논문으로 될 수 없을 때, 가설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 이런 다양한 상황에서 논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실험 결과에 대한 부담감이 컸던 것 같습니다.
제약회사에서도 물론 제대로 된 실험 결과를 도출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험을 통해 얻은 결론을 통해 반드시 논문을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험의 결과가 가설과 맞든지 다르든지 큰 부담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가설이 틀렸다면 그 틀린 것을 빨리 알려줘서 해당 프로젝트가 중단된다면 오히려 잘 된 것이고, 제가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학위 과정 중에 일어난다면 참 힘듭니다. 또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누군가가 먼저 논문으로 내기라도 한다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적어도 논문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에 실험 결과에 대해 부담감을 적게 느끼고, 결국 실험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안 되는 거라면 최대한 빨리 안 되는 이유를 보여줄 때 오히려 칭찬과 박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4. 마무리
저는 감사하게도 정말 재미있게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반복적인 실험들도 있지만, 적절한 비율로 기초적인 연구도 하고 있어서 학계에서의 흥미로운 연구의 맛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학계를 떠나 제약회사로 온 이유들 중 하나는 실제적으로 약을 만들고 질병을 치료하는 것에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계에서의 연구를 절대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만, 학계에서의 연구가 실제로 약이 되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게다가 내가 논문으로 낸 것이 실제로 약이 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반면, 회사에서 하는 연구는, 비록 이미 상당 부분 검증된 내용이라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을 수 있으나, 실제적인 약 개발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조금 더 체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학위를 마치고 혹은 포닥을 마치고 제약 회사에 취직하는 것을 준비하고 계시는 분들께는 꼭 협업에 대한 열린 마음과 자세를 가지시기를 당부드립니다. 큰 회사일수록 작은 것들도 분업화가 되어있어서 내가 할 수 있지만 상대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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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제약회사김박사(필명)) 등록 2024.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