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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산포로 2008. 2. 28. 13:42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DNA가 말해주는 존재의 의미

 
21세기 과학난제 자연에서 질서를 찾고자 한 칼 폰 린네는 1735년부터 자연의 체계(Systema naturae)라는 책을 펴내기 시작했다. 이 책에는 수많은 생물들이 린네가 세운 체계에 따라 분류되었다. 신이 만든 특별한 존재였던 인간도 호모 사피언스(Homo sapiens)라는 이름으로, 영장류 중 하나로 정리되었다. 린네는 인간을 수많은 동물 중 하나로 추락시킨 최초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린네는 당시 종교계로부터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린네가 인간이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1747년 2월, 친구에게 쓴 편지에는 “인간을 영장류 중 하나로 분류한 것이 나에게도 편한 일은 아니었네. 그러나 사람은 영장류와 아주 비슷하네.”라는 대목이 있었다.

린네가 인간의 지위를 실추시킨 덕분에 과학자들은 인간이란 과연 다른 동물과 무엇이 다른지,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저명한 인류학자인 루이스 리키는 1960년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돌로 된 도구 근처에서 인류화석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리키는 바로 도구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며 이 화석인간을 도구의 인간,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라고 이름 붙였다. 하지만 리키의 권유로 침팬지를 연구하던 제인 구달은 침팬지도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며 리키의 주장에 반박했다.

이후, 인간만이 갖는 특성으로 직립보행, 문화, 언어, 유머, 큰 뇌 등이 얘기되었다. 그러나 동물들의 세계를 알아갈수록 이들 중 어느 것도 인간만이 갖는 유일한 특성이 아님이 밝혀졌다. 침팬지는 초보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앵무새는 말하며, 일부 쥐는 신나는 일이 있으면 낄낄대며 웃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것일까? 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최근 게놈연구의 발전 덕택에 과학자들은 DNA 수준에서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지를 풀어내려고 하고 있다.

인류 진화 과정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 분명히 다른 유전정보를 갖도록 진화했다. 따라서 유전정보인 인간 게놈이 바로 인간만이 갖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게놈은 한 생물의 전체 유전자 정보로, 생물을 만드는 유전정보뿐 아니라 그 생물의 조상들이 지나온 역사의 흔적이 담겨 있다.

이런 까닭에서 게놈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유전적인 변화가 무엇인지를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들은 그동안 인류학자가 고민해온 질문인 ‘인간이 다른 동물과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 어떤 답을 해줄지 모른다. 그렇다면 게놈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그동안 무엇을 밝혀냈을까. 1995년 이후 지금까지 180가지 이상의 생명체가 게놈이 해독되었다. 대부분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이지만, 2003년 인간게놈이 완전 해독되었고 침팬지, 고릴라, 쥐, 개, 고양이 등 여러 포유류들에 대한 게놈 해독이 완료되었거나 진행 중이다.

이들 가운데 침팬지의 게놈이 유전적으로 인간의 의미를 알고자 하는 과학자들이 가장 흥미를 갖는 대상이다. 침팬지는 현존하는 생물 중에서 인간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진화생물학자인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인간은 제3의 침팬지’라고 비유했을 정도로 인간과 침팬지는 유전적으로 매우 비슷하다. 600만년 전, 인간과 침팬지는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그 뒤 각자 진화의 길을 걸어왔다. 게놈에 남겨진 인간과 침팬지의 진화과정을 통해 인간이 높은 지능과 언어능력 등 고도의 지적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를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침팬지의 게놈은 2005년 9월에 네이처지에 공개되었다. 미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이스라엘 등에서 23개 기관 67명의 연구자가 참여한 ‘침팬지 염기서열분석 컨소시엄’이 얻은 결과였다. 침팬지의 게놈분석은 인간 이외 영장류 동물로는 첫 번째였고, 포유류로는 인간을 포함해 네 번째였다. 게놈이 분석된 침팬지는 ‘클린트’라는 이름을 가진 수컷 서아프리카 침팬지로, 2004년 24살의 젊은 나이에 심장병으로 죽었다.

컨소시엄은 이 침팬지의 게놈을 해독해 인간 게놈과 비교한 결과, 이 둘의 DNA 염기서열이 약 96% 동일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유전정보인 게놈은 A, G, C, T 이렇게 네 가지 DNA 염기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과 침팬지의 게놈은 이 네 가지 염기의 수가 30억 쌍으로 비슷하다. 이들 30억 쌍을 일일이 비교해본 결과 3.9%가 달랐던 것이다.

하지만 유전정보가 들어있지 않은 정크 DNA를 빼고, 유전자로 기능을 하는 DNA만 따지면 인간과 침팬지는 고작 1.23%만 차이가 났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비슷한 유전자로 만들어진 단백질 역시 서로 아주 비슷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람과 침팬지는 단백질 한 개당 평균 두 개의 아미노산이 차이가 나타났고 29%의 단백질은 완전히 똑같았다.

이 정도의 차이는 인간과 침팬지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를 보여준다. 컨소시엄의 발표에 따르면,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유전적 차이는 인간과 생쥐 사이보다 60배나 적고 생쥐(mouse)와 쥐(rat) 사이의 차이보다 10배나 적다. 반면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적 차이는 사람과 사람 간의 차이보다 10배는 크다.

앞으로 침팬지의 게놈을 더 잘 이해하면 사람의 진화과정을 추리해낼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왜 인간은 알츠하이머병이나 에이즈에 걸리는데, 침팬지는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될 전망이다.

한편 2006년 11월, 현생인류의 사촌격인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해독되어 화제를 모았다.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은 1856년, 독일 네안데르 계곡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네안데르탈인은 35만년 전에 유럽에 나타났는데 유럽과 아시아에서 살다가 3만년 전에 갑자기 사라졌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호모 사피엔스인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의 후손인지 아닌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그러던 중 1997년,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해독되면서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은 아닐 것이라는 최초의 증거가 나왔다.

2006년 11월에는 미국과 독일의 공동연구팀이 크로아티아의 동굴에서 발견된 3만8천년 된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으로부터 DNA를 추출해 30억쌍의 염기 중 65,250쌍의 염기를 복원하고 해독한 결과를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이 공동연구팀의 분석 결과, 현재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이 99.5%가 동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처럼 네안데르탈인과 인류의 게놈이 상당히 비슷하지만, 공동연구팀은 네안데르탈인이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공동연구팀을 이끈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의 에드워드 루빈 박사는 “만약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섞였다면, 네안데르탈인이 가지는 유전자가 유럽인에게도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이번 결과에는 그런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구팀에 속하는 다른 과학자는 조금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시카고 대학의 조나단 프릿차드 교수는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간에 근친 교배했을 가능성은 완전히 배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프릿차드 교수는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약 70만년 전에 공통 조상으로부터 진화했으며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37만년 전에 갈라졌다고 주장한다.

어찌되었건 공동연구팀은 2006년에 발표할 당시, 앞으로 2년 안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할 계획이라고 했다. 올해가 바로 그 2년이 되는 해다. 사이언스지는 올해 주목할 만한 과학 분야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지도를 선정했다. 네안데르탈인과 인류는 0.5%의 게놈 차이로 인류는 진화에 살아남았고 네안데르탈인은 멸망했다. 조만간 유전자 분석을 통해 그 차이가 무엇인지가 밝혀질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인류에 대한 이해도 높아질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침팬지나 네안데르탈인의 게놈만으로 인간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인간을 낳게 한 생명의 진화과정에는 단지 침팬지나 네안데르탈인만이 관여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생명들이 인간의 진화과정에 오랜 옛날부터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인간진화의 비밀을 풀려면 침팬지 외의 다른 생명체의 게놈도 알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다른 동물들은 인간과 얼마나 차이가 날까. 유전자 차원에서 침팬지는 인간과 약 1.2% 다르다고 이미 앞에서 얘기했다. 과학자들이 그동안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침팬지 외 다른 종류의 유인원의 경우, 95-98%의 유전자가 인간과 동일하다. 쥐나 다람쥐 같은 설치류 동물의 경우는 88% 비슷하고 닭은 75% 같다.

하지만 단지 유전적으로 몇 %가 비슷하냐는 것은 인간이 왜 그렇게 특별한지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게놈 연구를 통해 얻은 여러 생물들의 유전자와 인간의 유전자를 구체적으로 비교함으로써 그 해답을 얻고자 한다.

예를 들어, 인간이 큰 두뇌를 갖도록 하는 유전자를 알아내어 다른 동물들과 비교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특별할 수 있었던 이유가 큰 뇌를 갖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오랜 옛날부터 생각했었다. 인간의 뇌는 침팬지보다 세배나 크다.

이런 까닭에 시카고대학의 브루스 란 교수는 유전학적으로 인간의 뇌 진화에 대한 연구를 해오고 있다. 인간 뇌의 진화로 인해 게놈에 어떤 흔적이 남겨져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이를 위해 뇌 기능과 관련된 유전자의 진화 역사를 조사했다. 이를 통해, 란 교수는 다른 포유류보다 영장류에서 뇌 관련 유전자가 빠르게 진화했던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가장 빠르게 진화한 것은 인간을 낳게 한 계통에서 나타났다.

한편 언어와 관련된 유전자를 대상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도 있다. 미국 워싱턴 대학의 워터스톤 교수는 언어능력의 진화와 관련된 유전자가 사람의 진화과정에서 크게 증가한 것을 발견했다. 이처럼 과학자들은 인간의 특징적인 외적 특성들로부터 이와 관련된 유전자를 찾아내어 다른 동물들과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DNA 차원에서 인간을 바라본다는 접근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DNA만으로는 인간이 왜 그렇게 큰 뇌를 가지게 되었는지, 다양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게 되었는지, 복잡한 사회를 구성하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21세기에는 유전적인 차원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박미용 기자 | pmiyong@gmail.com 2008년 02월 28일(목)
http://www.sciencetimes.co.kr/article.do?todo=view&atidx=0000023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