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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으로 안된다" 규제까지 뜯어고치는 '일본의 바이오 드라이브'

산포로 2024. 8. 26. 09:42

"돈만으로 안된다" 규제까지 뜯어고치는 '일본의 바이오 드라이브'

재팬 바이오 인베이전 JAPAN INVASION

"돈만으로 안된다, 임상 능력 키워야" PDMA 작심발언 이유는?
자국서도 나오는 '규제 강화' 첨단의료법
제약 위기감 속, 바이오는 신산업 동력·안보로 간다

 

 

일본이 '바이오'에 승부를 걸었다. 최근 추이는 심상치 않다. 해외를 향해문을 열었다. 규제까지 바꿔가며 '신약개발의 땅'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 새 경쟁자가 등장한만큼 우리 역량을 더 크게 집중시켜야 할 때다. '기초 연구력은 일본에 뒤져도, 응용력은 앞선다'는 우리 스스로 자평은 얼마나 견고하고 지속가능한 것인가. 히트뉴스는 '재팬 바이오 인베이전' 시리즈를 통해 일본의 동향을 살펴보고, 타산지석 삼으려 한다.

 

(상) 일본은 왜, 바이오를 선택했나
(중) 한중 향해 달려드는 일본 CDMO 
(하) 규제 갈라파고스 탈출 선언한 일본

 

일왕이 헌법을 반포할 때 당시를 그림으로 기록한 신황거어태정전헌법발포식지도. 출처=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일본 사회 개혁의 움직임은 반대파의 저항을 크게 부릅니다. 하지만 영국과 러시아의 패권 다툼인 '그레이트 게임'을 비롯해 세계 정세가 심상치 않게 흐르면서 자국 내 개화의 움직임은 더욱 커집니다. 결국 정부가 발을 맞추면서 조세제도부터 관료체계, 교육에 이르기는 모든 과정을 뜯어고치고 서양식 체계에 몸을 맡깁니다. 그렇게 마무리지어진 '메이지 유신’은 이는 결국 우리에게 37년간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주는 계기로 이어집니다.

 

일본 식약처장의 '임상시험' 개혁 작심 발언

허가심사 서류마저 '영어 병용'을 선택했다

 

이 기사에서 먼저 전해야 할 내용은 지난 2월 후지와라 야스히로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PMDA) 이사장의 발표입니다.

 

일본의 회기는 일반적으로 4월 시작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2월에 나온 이 발표는, 우리로 따지면 식약처장이 직접 나와 '올해의 정책'을 직접 발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신약개발 능력 향상을 지향하는 과제와 대책'이라는 이 발표 자료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임상과 규제를 큰 폭으로 개혁하겠다는 내용입니다.

 

후지와라 이사장은 '드럭 로스'의 관점에서 일본의 신약개발 능력은 아쉬움 점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중 중요하게 여긴 부분은 약사(법) 규제 환경과 개발환경입니다. 그리고 정부의 논점 두 개 중 하나로 '외부의 혁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를 지적합니다. 일본 내 의약품 시장은 임상 개발을 위한 세계적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꾸준히 공적 연구비를 통해 투입하며 신약 개발에 나섰지만 자국 내 신약개발 능력을 유지하고 회복하는 것은 부족한 상태입니다. 이 과정에서는 세계에서 통용되는 임상시험의 결과를 기업이 빠르게 얻는 동시에 국제적으로 선별되는 개발 환경을 양성하기는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먼저 영어를 언급합니다. 일본 내 임상 의료기관에서의 계약과 식약당국의 허가심사서류는 그동안 일본어로만 가능했는데 이를 영어 변용으로 허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일본 의료기관의 임상 부담으로 작용했던 CRO, SMO와 계약 과정 비용을 평균 산정할 방침입니다. 또 의학 및 간호학 등의 졸업 전후 임상 관련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데이터 과학자 및 생물 관련 통계 인재의 대학입학 증원도 늘릴 예정입니다. 여기에 일본인 대상 임상이 반드시 필요한 일부 약품에는 이 기준을 없애는 방안도 전합니다. 말 그대로 '글로벌'로 가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최근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마찬가지로 기업이 원하는 실용화 관점에서의 규제 전환을 추진하는 것과 동시에 상대적으로 일본 규제 당국에서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던 IT화와 비즈니스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BPR)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물론 해외 규제당국 내 거점을 설치하는 등의 정보 획득도 가속화한다는 것이 후지와라 이사장의 설명입니다.

 

기준에 가로막혀 신약 2/3이 '재팬 트라이얼 패싱'

대학 연구진, 사업 위해 자국 떠나

 

후지와라 이사장이 임상 규제 체계를 개선한다고 발표한 내용은 그동안 일본 당국의 정책과 다른 궤의 내용임과 동시에 그동안 있어왔던 규제 불만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해석됩니다.

 

바이오 분야에서 보면 일본은 iPS 등을 비롯해 특정 분야를 제외하고는 신규 모달리티 개발 관련 규제가 경직돼 있다는 평을 들어왔습니다. 일반적으로 신규 모달리티는 기전에 따라 높은 유효성이나 안전성을 기대할 수는 있지만 입증 수단이 한정적이거나 고비용 구조가 되는 경우가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들 신규 모달리티의 임상적 제약이 바이오기업 입장에서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후지와라 이사장의 드럭 로스 문제입니다. 실제 지난 2020~2023년 7월까지 미국 및 유럽 등에서 하가받은 신규 모달리티 적용 의약품은 총 41개인데 정작 일본에서 허가를 받은 제품의 건수는 22개, 절반 수준에 불과합니다. 특히 항체의약품은 미국 허가 7건 중 2건에 불과합니다.

 

허가에 앞선 임상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 집니다. 신규 모달리티 제품 임상 71건 중 24건, 즉 3분의 1이 일본을 패싱하는 것입니다. 그나마 개발 중인 43건 중에서도 11건은 일본에서도 늦은 임상이 진행 중입니다. 하나 더 보겠습니다. 2023년 7월 기준 전세계 약물 중 후기 임상 즉 3상 혹은 3상 이후 신청중인 전체 의약품은 137건인데 이 중 일본에에서 임상 자체가 시작되지 않은 약은 68% 수준에 달합니다. 임상 자체를 하지 않으니 해외 혁신 신약의 3분의 2 이상이 허가 과정 자체를 포기하는 셈입니다. 국내에서 약가 문제로 다투는 사례들은 뉴스에 자주 언급된다지만, 전세계 의약품 시장 3위의 국가가 임상 과정부터 '재팬 패싱'을 당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 문제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일본제약협회 내 의약품산업정책연구소가 2019년 11월 발간한 일본에서 국제 공동 시험 협업 관련 현황을 정리한 내용에 그 단서가 나옵니다. 해외 기업이 일본 기업을 끼지 않고 직접 임상을 하는 비율은 86.2%에 달합니다. 일본 지사가 해외 기준나머지 14%가 조금 못되는 수치만이 일본 제약사 혹은 CRO 등과 의료기관에서 임상을 진행한다는 뜻입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2018년 기준이지만 2003년 약 40%에 달했던 공동 임상 비율이 2018년 12.6%까지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2022년 일본제약협회의 2022년 7월 보고서로 넘어가겠습니다. 해외 기업분류별 임상 미승인 현황을 보면 2016~2020년까지 제약기업의 임상 승인 건수는 16건, 미승인 건수는 19건 수준이었습니다. 제약업을 지속해온 해외 유력 제약사마저 임상 미승인 사례가 절반이 넘을 정도입니다. 즉 임상을 쉽게 허가해주지 않던 일본 식약당국의 신중한 태도가 오히려 '재팬 트라이얼 패싱'(일본 임상 포기 현상)을 낳았다는 지적은 이 때문에 나옵니다.

 

지난해 나왔던 사례를 하나를 언급해보겠습니다. 게놈 편집에 필요한 'CRISPR-Cas9'는 2012년 개발됐지만 표적 범위 이상을 절단하는 '오프 타깃 효과'가 문제가 돼왔습니다. 규슈대학교와 나고야대학교 연구진은 게놈 편집툴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연구 중 핵염기 중 하나인 '사이토신'을 유도 물질에 첨가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Cas9 효소 활성을 단계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인데 연구 결과에 따르면 표적 위치의 정확도는 기존 기술 대비 19배, 안전성은 1800배, 유전자변형 안정성은 3000배 향상했습니다. 정 유전자 치료제의 프로그래밍 과정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기에 해당 연구는 학계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연구진은 결국 미국이 아닌 일본에서 임상을 하기로 결정하고 사업체를 미국 델라웨어에 세웠습니다.관련 기술을 입증할 가이드라인이 일본에서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당 기술을 사용한 신청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자국 과학자들이 미국으로 떠나버린 셈입니다. 실제 홋카이도대학 얀구진에 따르면 CRISPR-Cas9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의 임상 시험은 2023년 당시까지 총 75건 진행됐는데 그 중 미국이 33건, 중국이 24건 등을 기록했습니다. 일본은? 한 건도 없습니다. 유전자 치료 분야에서 우리보다 앞서나간다며 여러 언론이 대서특필한 것이 부화뇌동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의 결과입니다.

 

실제 일본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iPS 등 일본에서 개발한 기술과 이를 활용한 치료법의 임상 및 치료 환경은 비교적 빠르게 구축되는 반면 그렇지 않은 기술의 경우 상대적으로 그 속도가 느리거나 없는 경우가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심의 과정에서 연구가 가로막히는 연구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이미 2013년 유전자 치료 등 신기술을 사용키로 한 재생의료안전법과 약사법 개정 공포하고 2014년부터 시행됐지만 관련 법안은 업계 내에서는 산업화 과정보다는 규제 강화와 안전성에만 초점을 뒀다는 지적과 일맥상통합니다.

 

일각에서는 신규 모달리티 임상 등의 문제를 일본 내 여러 약화사건으로 찾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금은 돌고돌아 미쓰비시다나베파마에 속해있는 일본 녹십자의 '약해 에이즈 사건’입니다. 1980년대 일본 녹십자가 만든 혈우병 치료제 안에 외국 공혈자의 HIV바이러스가 함유돼 있었는데 불활성화가 되지 않은 비가열 제제였던 탓에 제품이 유통된 일본, 프랑스 등에서 혈우병 환자들이 집단적으로 HIV에 감염된 것입니다. 실제 약 1982~1986년에만 일본 혈우병 환자 5000여명 중 2000명이 직간접적으로 에이즈로 인해 목숨을 잃습니다. 

 

분명히 이로 인한 긍정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일본이 이후 갈라파고스식 규제를 넘어 ICH의 가이드라인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임상의 책임을 기업에게 지우고 국가는 벽을 통해 게이트키핑의 역할만 하다보니 신기술 규제와 산업 진흥 관점에서는 다소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지난 바이오USA에서 왕윤종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3차장(사진 중앙)이 박정태 바이오의약품협회 부회장(사진 오른쪽)의 브리핑을 듣고 있다. / 사진=박성수 기자

 

PDMA의 반성 이유, 업계에서 나왔다

바이오 싸움, 결국 경제와 안보 대결

 

한국경제인협회 급에 속하는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는 2023년 자국 바이오경제 실현을 위한 제언을 통해 미국과 같은 바이오 대전환 정책을 펴달라고 제언한 바 있습니다.

 

이 중 레드바이오 분야에서 제언한 여섯 가지 조항 중 두 개가 바로 '재생의료제품 등에 관한 법률 및 규정의 국제 조화와 임상시험 환경의 개선'입니다. 여기에 그린바이오 분야에서도 '식품 및 의약 품 분류 규제체계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을 던지며 정부가 금전적 지원뿐만 아니라 개발 과정에서의 규제 지원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게이단렌이 '바이오'를 콕 찝어 이야기한 데에는 그만큼 세계 시장에서 일본 산업계가 힘을 쓸 수 없을지 모르겠다는 위기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일본 정부가 2019년 내각 차원의 전략을 수립하며 2030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바이오경제를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잡았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기가 어려웠다는 평입니다.

 

여기에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광풍에서 미국 정부가 천문학적인 금액과 함께 보건당국과 기업이 함께 발을 맞춰 1년여만에 백신과 치료제를 연달아 승인하는 '케미'를 통해 일본 내 기업을 향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경제적 그리고 안보적 이유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실제 일본 바이오경제의 다소 지지부진한 모습은, 최근 자국내 제약업계의 모습과 함께 비춰보면 전체 헬스케어 분야에서 '새 먹거리 찾기'에서 위기감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4~6월 기준 일본 의약품 시장은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 기준 2조8169억엔을 기록했습니다.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0.8% 성장한 것이지만 성장률은 점차 감소하고 있습니다. 실제 2023년 4~6월 기준 4%대, 7~9월 기준 5%까지 치솟았던 전체 시장은 직전 분기 3%대 초반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0 8%까지 가라앉았습니다. 그 원인으로 업계에서는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약가과 의약품 특허 만료로 인한 경쟁 구도 등을 삼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반대로 일부 필수의약품 및 혁신적 의약품 외에는 약가 인하를 방어할 기전이 마땅치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를 반영하는 것이 바로 구조조정입니다. 일본에서는 올해에만 다케다약품, 쿄와하코기린, 스미토모파마, 미쓰비시다나베등이 ERP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점차 둔화되는 성장률 속에서 고정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 보이는데 그만큼 바이오를 통한 성장 동력이 중요해진 시점입니다.

 

여기에 의약품 자체가 안보로 작용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입니다. 의약품 부족 사태와 경제적 파급력을 통한 가치는 각 국가 입장에서는 국부는 물론 시장에서 국가의 위치를 결정할 정도의 수준의 위상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다시 한 번 1편에서 나온 기시다 총리의 신약개발 문제를 다시 정리해봅니다. 신약을 개발하는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투자 기반 정리와 제조 인프라 그리고 규제에 이르는 모든 흐름은 결국 경제성장은 물론 기술을 통해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자국의 새로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수많은 국가가 노력하면서도 그동안 소위 글로벌 빅파마와 그들을 보유한 미국과 유럽에 기대야만 하는 상황에서 수많은 나라가 머리를 조아리듯 이들을 '영접'해야만 했습니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는 최근 수 년에 걸쳐 이같은 상황을 맞이해왔습니다. 바이오 소재, 부품, 장비(소부장) 문제를 시작으로 코로나19가 3년간 세계를 강타하던 때 모두 미국, 중국, 일본 등과 조금은 아쉬운 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소부장 분야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세계에서 수위권 내로 코로나19 치료제인 '렉키로나'와 백신 '스카이코비원'을 후발이라도 만든 저력이 있습니다. 세 편에 걸쳐 앞에 서있는 제약 강자 일본이 뒤에서 바이오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쫓아온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미래를 향한 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한편 <히트뉴스>는 오는 8월 말부터 9월까지 제약바이오 분야의 다양한 기업과 클러스터, 단체를 만납니다. 제약을 향한 약가인하부터 일본 기업이 자사의 오픈이노베이션을 어떻게 이끌고 있는지 그리고 최근 바이오특화단지와 함께 다시 주목받는 클러스터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취재하겠습니다.

 

히트뉴스(hitnews.co.kr) 이우진 기자 입력 2024.08.26 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