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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의 ‘독’은 신약 후보물질의 원천?

산포로 2021. 8. 27. 13:46

독사의 ‘독’은 신약 후보물질의 원천?

 

사람이 독사에게 물리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독사의 독이 사람의 체내에 들어가면 혈액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에 의해 생명이 위험해지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최근 한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서는 국내에 서식하는 독사의 독을 인간의 혈액과 섞은 뒤에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찰하는 동영상이 공개되어 화제를 모았다. 치명적인 독사의 독액 한 방울이 인간의 혈액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담은 영상이다.

영상을 보면 커다란 살모사에게서 뽑아낸 노란색 독액을 한 울씩 여러 방울을 사람의 혈액이 담긴 유리잔에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어서 독액을 넣은 사람의 혈액을 넓은 접시로 옮겨 담는데, 혈액 일부가 그 사이에 젤리처럼 응고된 상태로 변해버린 것을 알 수 있다.

빛을 쪼여 좁고 깊은 상처 부위 지혈제로 사용

독사들이 가진 독액을 분석해 보면 대부분 혈액에 피해를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적혈구나 혈관, 또는 조직세포를 파괴하거나 혈관 안에서 응고를 일으키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으로는 중남미에 서식하는 독사인 보스롭스(Bothrops)을 꼽을 수 있다. 이 뱀의 독에는 강력한 혈액 응고 물질인 바트록소빈(Batroxobin)이 들어 있다. 바트록소빈은 현재 조기 지혈제로 사용되고 있는 성분이다.

캐나다의 웨스턴온타리오대 교수인 ‘키버트 메콰닌트(Kibret Mequanint)’ 박사와 연구진 역시 보트롭스 독사에서 강력한 혈액 응고 물질을 추출한 성과를 갖고 있다. 이들도 제약회사와 함께 추출한 혈액 응고 물질을 이용하여 지혈제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같은 바트록소빈을 활용한 지혈제임에도 불구하고 메콰닌트 교수와 연구진이 개발한 지혈제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바로 강한 빛을 받았을 때 광화학 반응을 일으켜 혈액을 순식간에 응고시킨다는 점이다.

 

‘가시광선 유도 저항성 지혈제(visible light induced bloodresistant hemostatic adhesive)’라는 복잡한 의미를 가진 이 지혈제는 원하는 부위만을 골라 신속하게 접착제로 붙이듯이 지혈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메콰닌트 교수는 “사고가 발생하여 긴급하게 지혈을 해야 할 때나, 수술 시 지속적으로 출혈을 막아야 할 때 사용하는 지혈제는 이미 개발되어 의료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라고 언급하면서 “하지만 좁으면서도 깊은 상처 부위의 출혈을 막는 지혈제는 아직 마땅한 것이 없었는데, 우리가 개발한 지혈제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기대했다.

메콰닌트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연구진이 개발한 지혈제와 레이저 포인트만 있으면 좁고 깊은 대부분의 상처를 지혈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대동맥 같은 혈관이나 간 손상은 상처가 크지 않아도 생명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데, 가시광선 유도 저항성 지혈제만 있으면 1분 안에 지혈을 마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들 연구진의 지혈제는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여러 가지 임상 시험을 거쳐 안전성을 확인해야만 한다. 그러나 ‘독도 잘 사용하면 약이 된다’라는 속담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번 사례에 대해 의료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블록버스터급 고혈압치료제 개발에 사용된 뱀독

뱀의 독을 잘 사용해서 인간에게 유용한 약품을 만든 사례는 웨스턴온타리오대 연구진이 개발한 가시광선 유도 저항성 지혈제 말고도 여러 가지 사례가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블록버스터급의 의약품으로 변신한 사례가 있으니, 바로 수많은 고혈압치료제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약품인 ‘캡토프릴(Captopril)’이다.

고혈압은 현재 전 세계 인류의 15% 정도에 해당하는 10억 명 이상이 앓고 있고, 매년 700만 명 이상이 이 질환과 연관된 병으로 목숨을 잃고 있는 난치병이다. 이 병은 다른 질병들과는 달리 국가의 경제수준과 별로 관련이 없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가난한 나라는 가난해서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까닭에 걸리고, 잘사는 나라는 너무 잘 먹고 잘 살아서 걸리기 때문에 국가별로 고르게 환자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고혈압의 진단과 치료에 기준이 되는 가이드라인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이처럼 질환 적용의 범위는 예전보다 넓어지고 있는 반면에 완치는 어렵다 보니 환자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면서 관련 약품 시장도 엄청난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규모의 고혈압 시장에서도 가장 큰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고혈압 억제제는 바로 미국의 대형 제약회사인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사가 개발한 캡토프릴이다.

캡토프릴이 뛰어난 약효 외에도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약품의 주성분이 살모사의 독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살모사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남미 대륙에 서식하는 하라라카(jararaca)는 ‘한 번 물리면 끝’이라는 별명을  살모사다. ‘한 번 물리면 끝’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남미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인 독사다.

하라라카 살모사에게 사람이나 동물이 물리면 즉시로 혈관이 이완되면서 혈압이 급격하게 낮아지면서 죽게 된다. BMS사의 연구진은 이 같은 현상에 주목했고, 살모사의 독에서 혈압을 낮추는 성분을 분리하여 이를 고혈압 억제제로 개발했다.

그 결과 연구진은 고혈압치료제의 대명사로 불리다시피하는 캡토프릴을 만드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현재 캡토프릴은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슈퍼 의약품으로 대우를 받고 있다.

김준래 객원기자 ㅣ 2021.08.26 ⓒ ScienceTimes

 

의학약학 사이언스타임즈 (2021-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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